2007년 12월 30일 일요일

Jules et Jim



까뜨린. 애틋한 이름 중 하나다. ㅎㅎ 좋아했던 여자애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애의 암호를 까뜨린으로 했던 기억이 나서다. 상당히 옛날 이야기이다. 물론 워낙에 흔한 이름이기에 여기 저기에서 그 이름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유명한 카테리나 디 메디치... ㅇ_ㅇ) 하지만 당연히, 이 영화 안의 까뜨린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리고 남자 2+여자 1라는 점에서도 생각나는 관계(!)가 있다. 내 생애에 3각 관계는 두 번 정도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쎄.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두 번의 사례 모두 결과만 따지자면 나의 승리(?) 비슷하게 돌아갔었다. 물론 지금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 잡았다고 의미가 생기랴? ㅎㅎㅎ 아니 뭐, 의미를 만들라면야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다시 돌아가서, 까뜨린의 존재가 사못 크다. 독일 남자 쥴과 프랑스 남자 짐 사이에서 까뜨린은 대단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쥴과 짐은 까뜨린을 하나의 사랑으로서, 한 명의 성모로서, 하나의 나라로서 섬겼다. 쥴의 대사에서도 나오는데, 특별히 지적이라거나 특별히 뭔가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 만큼 순수하기에, 그 만큼 줏대가 있기에 100% 여자라는 평이 있다. 까뜨린은 100% 여자였다.

그거 하나면 말 다하지 않았나? 트뤼포가 사랑했던 FANNY ARDANT도 이런 여자였을까? 즉, 하나의 성모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그녀는 무엇을 필요로 하였을까? 떠받쳐 주어야 할 남자가 필요했을까? 그렇게만 생각하면 참 측은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녀 자신은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찌질한 까뜨린에 불과했을까?

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그 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다리는 통통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의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게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속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23번째 게시




멕시코시티의 협상에 갔었다. 위 사진은 멕시코 경제부 사무관인 곤잘레스.였던가? 명함을 뒤져봐야 알 텐데 기억이 안나네. ㅎ 다음 사진은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멕시코 체제하는 동안 심심해했던 나와 말동무가 되어 준 카롤리나(중앙) 사진이다.

...이메일을 모르니 보낼 수가 없다. ㅎ

하여간 난 해외만 갔다 오면 꼭 일이 생기더라니... 어제, 오늘, 가슴의 화기(!)로 인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가슴을 손으로 막 치기까지 했었지. 도무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용히 책이나 읽을 수밖에.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Dans Paris



"Est-ce qu'il est possible, vraiment, qu'une histoire d'amour nous fasse sauter d'un pont?"

영화 첫 머리에 나오는 대사다. 처음에는 형이, 두 번째는 동생이 (아무래도 시험삼아?) 빠지기 때문에 저런 대사가 나왔다. 여기서도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거론할 수 있겠는데, 물에 빠지는 것은 세례의 의미가 있다. 인간이 나은 아이 중 제일 위대하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 세례자 요한이 한 일이 그런 것이다. 한 번 물에 빠졌다가 나오는 것. 속죄다. 부활이랄 수도 있겠다. 정화와 치유의 능력을 물이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야 그런 능력을 받아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찢겨진 심장일 것이다. 뽈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에서라도 뛰어 내려야 찢겨진, 혹은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만 말하자면, 가능하다. 다리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 고작 사랑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한 번 깨지면 고칠 수 없다. 그 때문에 참 지랄맞고 찌질해지는 거이 진짜 사랑이다. 사랑하면 좋을줄 알지? 행복하다 느낄 때는 정말 흔치 않더라. 정말...

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Paranoid Park



어차피 저 커플은 서로간의 목표가 달랐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모르고 있었다. 사내 애는 갑자기 그것을 깨닫고, 계집 애는 갑자기 그것에 와닿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왜 몰랐을까? 자신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사랑이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어디로 튀는지 알 수 없노라고 매번 쓰긴 하는데, 사실 세상에 나서 자기 것이라는 개념이 있나? 신체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오, 먹을 것은 자연에게 빌린 것이다. 사회는 국가에게 빌린 것이고. 도대체가 자기 것이 없건만, 자기 것이 있는 양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하면 좀 거창하긴 하다. 저 소년이 결국 한 사건을 통해 성장을 한다 하더라도. 저 소녀가 섹스를 통해 성장한다 하더라도. 저 둘은 앞으로도 비슷한 인생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쉽게 말해서, 성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커봤자, 무책임한 이혼남녀가 될 뿐이다. 사랑을 해봤자, 편지를 써봤자 수취인불명이다.

수취인불명. 대답 없는, 정답 없는, 기약 없는 사랑, 그리고 인생. 신은 정말로 잔혹하다.

2007년 12월 16일 일요일

Paranoid Park



위 계집애는 사내애에게 권하였다. 편지를 쓰라고. 일단 쓰라고 말이다. 그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건, 그냥 혼자 간직하건, 아니면 불애 태워버리건 그건 마음대로 할 일이라면서 편지를 쓰라고 하였다. 일종의 마음 정리, 혹은 마음 추스리기일 것이다. 물론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편지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아니, 원래부터 해결된다는 것이 있기는 할까? 제아무리 꾀를 써도, 발버둥을 쳐도, 자학을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누구나 날 떠나고, 누구나 날 안다고 이죽거렸다. 나는 헤펐고, 그녀는 엄했다. 나한테만.

그래도 편지를 써야 할까? 자기 위안일 뿐인 글이나 써대야 할까? 나는 어째서 침묵을 지킬까? 별 수 없는 사내라서일까, 아니면 일종의 허영일까? 남는 건 침묵. 그리고 침잠.

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날 가지니까 좋아?"

민재가 자기를 짝사랑하는 민수에게 던진 말이다. 민수가 바라는 것이 민재의 몸 뿐이었다면 당연히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니 좋은 건 좋은 거고, 고통스러워할 수 밖에 없을 노릇이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째서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소설가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이 사내는 어째서 자기가 가질 수 없는 여자를 좋아할까?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상대를 갖고 노는 것은 여자 뿐이다. 워낙에 사랑은 없을 때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가질 수 없는 상대에 더 큰 애착, 혹은 집착을 보이는 것이리라. 즉, "날 가지니까 좋아?"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경멸이요, 비웃음이다. 하지만 절망적이기도 하다. 나의 마음값이 바로 나왔으니까.

내 마음값이 싸구려라는 것. 비극일수도 있고 희극일수도 있다. 싸구려니까 싸구려답게 나아가게 되면 그것대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위안. 위안이 중요한가? 좌충우돌하는 행동 끝에, 애정 끝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아무 말도 할줄 모르는 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2007년 12월 6일 목요일

강원도의 힘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곳에 다시 나타난다.라는 말이 있다. 어디에서 이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 문장의 범인은 비단 사회에서 일컫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다. 모두가 철새다. 귀소본능, 귀향본능. 이런 건 모두에게 다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이 제아무리 진화해봤자 철새수준이라서일까?



아니 꼭 '강원도'에 가야지만 그러하지도 않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추억이오, 나쁘게 말하면 부끄러움일지니, 그것은 언제나 유령이 되어 주위를 배회한다. 게다가 그런 유령은 도처에 출몰한다. 애초에 물리적인 형태가 없으니 때와 장소를 가릴 이유도 없잖나 싶다. 여자는 사랑을 했을까?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까?

영화가 곳곳에 의도적으로 '한 명'을 쏙 빼놓는다. 처음에 여자는 친구들을 못찾아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고, 가는 길에도 금붕어 한 마리만이 떨어져 있었다. 경찰과 같이 갔던 모텔도 결국 경찰을 '쏙 빼놓는다.' 남자의 친구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혼자 교수가 되었다가, 나중에도 혼자 먼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떠버린다. 기르던 두 마리의 금붕어도 한 마리만 남는다. 도대체 여자는 무엇이었지? 남자는?

뭐, 강원도의 힘을 애둘러 사랑의 힘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애초에 실체도 없고 소유도 없으니 '강원도'와 같은 모든 명사가 들어갈 수 있는 제목이다. 슬퍼진다.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유령. 유령은 날 애잔하게 여길까?

2007년 12월 3일 월요일

오! 수정




기억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아니 뭐, 먹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만큼 기억일랑 누가 어떻게 해도 전혀 상관 없는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그래도... 세 끼를 먹고 사는 인간으로서 내게는 살 떨리는 문제이다. 화끈거리는 문제이다. 대단히 부끄러운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이 갈린다는 것. 그것이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뒤흔들기 때문이다. 나도 실제로 그런 경험을 가진 적이 있다.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었다.

기억이 같았다면 해결되었을까? 라고 한다면 그것도 애매하긴 하다. 여느 문제가 그러하듯, 이 문제 역시 정답은 없다. 역시 몸이 정직하다!라고 친다면, 바로 그것이 정답이 될 만하다.

대체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까?

2007년 12월 2일 일요일

플로피 드라이브


출장을 가는데 노트북을 받았다. 보안 시스템과의 관련때문인지, 외장 플로피 드라이브가 들어있다. 바로 위 사진에 나온 것과 똑같은 드라이브이다. 내가 플로피를 안쓰게 된 것이 거의 노트북 처음 살 때부터였으니까. 언제냐. 99년도부터이겠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끌었던 건 다른 데에 있었다. 옛날에 쓰던 플로피 디스크들이 집에 잔뜩 있다는 사실. 눈에 띄는 것만 집어 넣어 보았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안 열리는 파일이 대다수이다. 숙제 파일은 다 못열었다.

하지만 그림 파일들만은 열린다. 대단한 건 아니다. 좋아하던 만화 여신님 만화 파일이다. 내가 만든 것도 얼핏 보인다. Claris Works로 만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야 그 당시에도 맥 유저. 지금도 맥 유저. 이 얼마나 찌질한 팬덤인가. ㅎㅎ 그 때의 마음은 지금도 여전할까?

처음부터 일기적는 버릇을 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log를 본다는 것. 그것만의 의미도 있을 텐데. 뭣보다도 나 자신의 허술한 맹점에 대해 고찰할 계기가 되었을 텐데.

마음이 조금은 '덜' 아팠을 텐데. 하지만 기록을 남겨 놓았어도 절대로 다시는 못 볼, 못 들을 것이 있긴 하다. 할배쯤 되면 다시 볼 수 있으려나.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22번째 게시

나의 전공은 경제학이다. 그리고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합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합리성이란? 이기주의를 좋게 치장해주는 단어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이 때문에 평상시 나의 말은 거의 최적화되어있고, 결국은 먹고마시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따른다는 말을 쉽사리 따른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몸이 먼저 이해한다. 머리나 마음은 그 뒤다. 일단 자기가 배부르고 나야, 윤리이니 철학이니를 논할 수 있다. 홍익인간. 인내천. 철학을 논한다면 이 두 가지가 최고이리라. 그 찌질한 사랑타령도 먹고 마시는 문제가 대충이나마 해결되어야 할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시각인가라는 문제 자체도 2차적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최소한 신체욕구는 해결해 놓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입, 위장, 항문에 대해서 말이다.

웬만한, 아니, 모든 문제의 시작과 근본적인 해결은 바로 입, 위장, 항문에서 시작할 것이다.

2007년 11월 20일 화요일

21번째 게시



일요일날, 고시친구들(!)을 만났다. 막말을 일삼는 나의 성격이야 뻔하디 뻔자이고, 역시나 이야기는 연애로 흘러갔다. 평소에 똑똑하기 그지 없는, 기가 드세고 키까지 커다란 유진이는 내가 왜이리 마초스러워졌냐고 다그친다. ㅎㅎ 병현이나 임쌤은 뭐 그러려니 하는 모양. 내가 워낙에 '몸'이 정직하다는 것을 강조해서 그랬나보다. 그런데 우짜겠나. 그게 맞는 걸.

게다가 진성 마초.라고 해야 할까? 마성 마초;;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 앞이라면 내가 한 없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게 아마 염세적 마초ㅋ의 특성일 게다. 사랑에 휩싸이고 불같이 타오르면서도, 쓰레기같은 구석이 다분한 그런 놈이라서이기도 하다. 도대체가 난 모두를 버리지 못했고, 내 생각 외로 남들은 나를 자상하다 평가하지 않았다. 평가. 따위에 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남들'은 보통의 '남'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없이 유치해진다. 일부러 편지를 써보려 한 적도 적지 않다. 시도도 해 보았는데, 다음 날만 되면 내용이 왜이리 초딩 글이 되어버리는지. 그게 또 작가들처럼 부사 없는 진솔한 글이라도 나왔으면 모르겠다. 완전 토요일밤의 열기에 나오는 존 트라볼타 삘이다. 글 느낌이 그렇다. 결국 안 보낸 것이 허다하다.

그거라도 보냈어야 했을까? 사실 그래야 했으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애걸복걸 글이라도 보내야 사랑의 진실, "찌질함"을 완벽히 실천했을 텐데. 그래야 원조남들에게 바수밀다의 웃음을 지어주는 저 여주인공의 마음을 100% 이해했을 텐데.

정말 울면서 웃기고, 웃기면서 슬픈 것. 사랑. 너 참 찌질하다.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스무 번째 게시


사진은 눈보라콘 언니 로그에서 가져왔다.

단잠을 자는 장면들이다. 꼭 연인 사이가 아니어도 좋다. 무방비 상태로 저렇게 편안하게, 평안하게 잠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새삼 가슴이 벅차오른다. 물론 기억한다. 그러나 정말 당연스럽게도, 잠. 그 편안한 잠과 사랑은 별 관계가 없다. 이 역시 "꾸며대는"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억만 하되, 말할 수 없는, 쓸 수 없 것들도 상당히 많다. 저작권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내뱉을 수 있을까나. 그녀는 죽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이뤄진다는 것이 뭐지? 장난스럽게 "일단 덮치라"는 조언을 즐겨 하는데, 어차피 사랑은 몸이 먼저 움직여서 보이는 것이니까 그것만은 합당하다. 잠. 잠이 여기서 작용한다. 섹스를 말함이 아니다. 당신이 옆에 누워도, 옆에서 사그락거려도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는, 그런 호사는 쉬이 누리기 힘들다. 그게 의미하는 것이 크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일생에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어차피 몸이 피곤해지면 어떻게든 잠들 수 있겠지만. 평상시에도 그럴 수 있으리라 바라는 건 과욕일까.

그냥 그런 '사치'는 바라지 말고 살아야 할까. 어느 새, 중요한 조건이 사치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서글프구나. 역시.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열 아홉 번째 게시

생일. 고등학교/대학교 후배인 Y가 케이크를 들고 출근했었다. 빨리 온 사람들이 모여서 생일축하 파티를 하였고, 사진은 S가 찍어 주었다. 흐뭇한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고 ㅎㅎ 그저 힘 없는 미소일 따름이다. 감기 때문에 목도리 두 개를 한꺼번에 두른 차림이다. 밖에서는 숄처럼, 두르고 다닌다. 스카프를 하나 장만할까 생각도 하고 있다.

아무튼 2007년 생일까지 이렇게 수 많은 일들이 생겨날지는 2006년 생일 때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돌이켜 보면 2006년 생일 때 뭘 했는지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정말 그 때 뭐했었지? 내가 생일을 딱히 챙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아. 생일이구나'라고 한 번 탄식하여 지나가는 사람이기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농담조로 선물을 내놓아랏!이란 말만 하고 다녔겠지.

근데 이 날 밤, 까페에서 고등학교 동창 보경이를 만났던 건 정말 의외였다. 동창회.따위에 절대 안 나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졸업 이후 못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이 훨 넘었네.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점심 한 번 같이 먹기 좋을 위치이구만. 맞은 편에 내가 다니는 기관도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동창들 중 아무도 내 근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정말 소수의 몇 명 빼고는 말이다.


누가 그런 삶. 그러니까, 친구가 별다르게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늘이었던가? 아무튼 내 답변은 한결같다. 후회하지 않는다. (Je ne regrette rien.)

2007년 11월 8일 목요일

열 여덟 번째 게시

아프다는 것. 굳이 병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록 감기라 하더라도 비단 몸만 아픈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처음부터 몸은 정직하였다. 머리보다, 가슴보다, 몸 자체가 끔찍스러울만큼 정직하다.

건강하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형용사다. 좋다. 바람직하다.보다 "건강하다"가 훨씬 더 건전하기 때문이다. 아니, "건전하다"보다도 더 건전하다. 건전스럽다. 괜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건강한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인간쓰레기였냐면, 맨날 나 혼자 징징대고, 나 혼자 나자빠져버리고, 그러면서도 생각해준답시고 이것 저것 시도해 보는 못난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거다. 제아무리 내 혈액형을 아무도 못맞춘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서는 곤란하다. 아니,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한 관계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상한다.

늘상. 생각. 평생 그럴래?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열 일곱 번째 게시

이번에는 지독한 목감기가 찾아왔다. 감기? 감기일까? 콧물도, 기침도, 열도 없으니 감기라고 할 것 까지 있겠나 싶다. 다만 목이 상당히 많이 부었다. 생활이 너무 무절제했나? ㅎㅎ

잠을 최소한 1시, 늦으면 3시, 4시에 자는 생활이 언제부터인가 지속되고 있는데, 일단은 그것부터 끊어야 되잖을까. 밤에는 아무도 없고 어두워요. 우울해져요.라 말했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럴 때 책이나 보고 앉아 있으면 정말 염세적이 될 수밖에 없잖을까. 물론 좀 쎈 단어이긴 하다. 비슷한 뜻을 가지면서, 좀 약한 형용사가 있을 법한데, 당장 생각나는 단어는 없다. 올해 초(?), 그 날의 술자리에서 봤을 때부터 염세적이었다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당히 견디기 괴롭다. 목만 부어도 이 정도인데, 다른 곳까지 아프면 어쩔까. 나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가? 변화?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열 여섯 번째 게시


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갈 곳이 종로 어디에 있을까? 있었다. 한 층을 다 빌렸으니, 한꺼번에 들어가서 회식(!)을 즐길 만한 곳이다. 그리고 저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표정 봐라. 취했다. 그런데 이곳은 왠지 낯이 익다. 왠지...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날짜도 기억한다. 5월 27일이었으니까. 이 술집은 같은 날, 캐쉬백을 본 후 왔던 곳이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대단히 고마웁게도 술을 파는 곳이었다. 비단 술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것으로도 여러 모로 고마운 곳이었다. ㅎ 이곳에서 여러 가지 계획이 논의되었고, 실행도 며칠 후 이뤄졌다.

일단은, 웃음. 힘 없는 웃음. 맥아리가 없는 웃음이 나온다. 10년 후, 20~30년 후의 나도 이곳을 기억할까? 물론 종로의 생리상 다른 곳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높긴 할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되새김질할까? 영원을 만용하였던 나 자신을 어리석다 여길까, 애처롭다 여길까?

뭐... 곧 있으면 꿈에 나오기도 하겠지. 괴로워 할 게다. 이유는 알아도, 처방전은 없는,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다.

2007년 10월 23일 화요일

열 다섯 번째 게시



아마 나박이 찍었던 걸로 기억. 열심히 아이포드 터치를 보는 모습이다. 장소는 동교동 삼거리 쪽, '틈'. 사실 오늘 중요한 대화가 있었다. 반사회적인 위트나 풍자에 기뻐하는 나의 모습이 변하면 좋겠다는 B의 지적이다. 그래. 그래. 미셸 우엘벡에 심취해 있으니, 정말 참. ㅎㅎㅎ

정말이지 내 주변과 내가 이렇게 동떨어진, 혹은 행성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예전에 미처 예상 못 했었다. 아니, 크리스마스 전날의 악몽을 끔찍이도 아꼈던 나의 모습과 상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기 소개 할 때 난 이렇게 말했었다. 장사 안 되는 영화와 장사 안 되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의외로 저 말을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다. 상당히 의미를 가진 말이다. 장사 안 되는 영화나 소설. 장사 안 되는 정서를 갖고 있다는 뻐김? 혹은 폭로, 고백이기 때문이다. 나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인지 의심이 가긴 한다. 사람은 변할까? 사람은 안 변해...라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행복


사실, 내가 통곡을 했던 클라이막스(?)는 바로 이 장면이엇다. 그저 편안하기만 한, 평안하기만 한, 애정이 샘솟는 장면이다. 기억은 안나지만, 대사도 기가 막혔다. 껴안고 잠드는 장면, 병원, 이 모든 것이 내 감수성을 강하게 흔들고 만 것이다. 무엇이 그리 날 울렸는지,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글쎄. 어디, 딴 데에라도 적어 놓을까? 나의 부끄러움, 쪽팔림, 애처로움이 모두 결합되어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이리라.

퍼주기. 그래. 은희는 분명 퍼주기만 하는 년이었다. 그래서 영수가 변심을? 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반대로 영수는 제멋대로인 놈이었다. 그래서 은희가 매정히? 그것도 아니리라 생각한다. 사실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헤어지는 커플이면, 가령 누가 바람을 피워서...라는 이유라면 오히려 잠시동안만 고통스럽다 말지 않을까.

하지만 근본적인, 근원적인 폐부를 서로 알아버리고나면 그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도리가 없다. 아니, 꼭 '서로'일 필요도 없겠다. 한 쪽만 알아도 충분하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면, 헤어진다. 신비감의 문제는 아니다. 너무나 잘 알아서, 너무나 확실하기에,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떠난다.

나... 정말 참 못난 놈이다. 빌어먹을 인간 쓰레기이다.

열 네 번째 게시

그래. 일에만 집중하자. 중국 정세가 어떻느니, 중동 정세가 어떻느니. 모두 다 아는 내용이고, 듣는 사람은 뜬금 없다 여길 테지만, 내게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이것이 일이다. 앞으로... 그래. 앞으로의 내 인생, 정말 궁금해진다.

출근하는 곳이 바뀌었고, 주변 사람들도 완전히 바뀌었다. 작년에 보고 못 보았던 O도 다시 보았다. 맞어. 걔도 연수중이었지. 광화문에 들어가면, 잊고 지내던 지인 몇을 더 볼 수 있겠지.

그래. 그래. 환경이 바뀌면 뭔가 바뀌겠지. 뭔가.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열 세번째 게시



사진은 오다이바 닛코호텔, 바닷가 쪽 문(2층 테라스이다)에서 찍었다. 평소에도 많은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테라스에 잠깐 앉았을 뿐인데, 두 커플 부대(!)가 우르르 이동하는 광경을 보아서이다. 과연 저 커플은 연애결혼일까, 중매결혼일까? 연애결혼이라면 어떤 곤란한 사항을 비켜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매결혼이라면, 곤란한 사항은 웬만치 비껴갔을 것이다. 중매결혼을 한 커플의 비용은 후불제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연애결혼은 선불제?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과연 하늘과 당사자만이 알 일이다. 어떤 사연으로, 손가락 사이 사이 애정이 빠져나가는지, 당사자들은 절대로 그 시각을 모른다. 갑자기 그럴 때가 느껴지는 법. 공기가 바뀌고, 안절부절해지는 그러는 때가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비용?

글쎄. 거창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서류화까지 시켜놓지는 않았지만, 계획이라면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계획은 계획 그 상태로 묻혀져버리고 말았다. 실현할 기회를 잃었었지. 뭐,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라 해야할 판이다. 메아 쿨파. 하지만 그렇게 내 탓한다고 돌아올 계획...이라면, 글쎄.

Once를 세 번 보았다. 차츰 나아진다. 그러내 '행복'만은 두 번 보기도 힘들 것 같다.

2007년 10월 10일 수요일

Le beau mariage

치료.라는 단어를 믿지 않는다. 뭐, 애초에 내가 믿는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유머가 될 수도 있겠다만, 치료, 혹은 완치는 말이 안된다. 머리 속에서 사라져도,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뇌보다는 몸이 훨씬 정직하다.

그나마 치료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사빈은 에드몽을 사랑하게 되었고, 에드몽이 자신을 사랑하리라 확신하였다. 확신. 만큼 덜떨어진 개념도 없건만, 일단은 무조건 달렸다. 그 결과는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아니, 예견을 했을지라도, 그것은 그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예견.은 치료일까? 아니, 미리 앞서 생각하는 것인만큼, 백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지막에 사빈이 내뱉는 얼토당토 않는 말들은 무엇일까? 얼토당토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얼토당토하지 않음은 보는 관객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사빈은 치료가 안된다. 그런 말로써, 행동으로써 애써 자신을 보호하고 또 지키겠지. 그냥 두둘겨 맞을줄만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체득 못할, 납득 못할 기술이다.

2007년 10월 4일 목요일

토미카

어렸을 때, 아주 어렷을 때 이야기이다. 외할머니가 일본에 다녀오실 때마다 미니카를 사오곤 했었고, 난 그걸 갖고 놀았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많던 자동차들이 현재 어디있는지는 오리무중(아마 조카집에 있을 터)인데, 그걸 갖고 어떻게 놀았는고.하면...


백지에다가 도로를 그렸다. 자세히는 몰라도 한 15~20장 정도 도로를 그려서 한 데 이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자동차를 올려 놓고 놀았다. 일종의 심시티였던 셈이다. 사실 재밌는 부분은 자동차를 올려 놓고 씽씽 달리게 하는 것보다, 도로 설계였다.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웅장하게(!) 나타날까. 그런 고민을 하며 그렸던 거다. 내가 그린 도로는 고가도로도 갖고 있었다.

그렇게 갖고 놀았던 자동차는 대부분 '토미카'. 오다이바의 자동차 박물관에 놓여있는 것을 촬영하였다. 요새 애들은 잘 모르겟지.라고 생각하면 아저씨가 된 것일 게다.

거기에서 추억은 끝. 그 이후로는 절망만이 일생을 기다리고 잇엇다.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열 두 번째 게시

지리산 쪽 산청에 다녀왓다. 머리가 휘청휘청대는 어지러움증도(정말 심했다. 말 그대로 걷기 힘들 정도.) 의사 말로는 피곤해서란다. 원인은 잘 모르겠고, 제일 만만한 게 스트레스이니 피곤이니, 신경쓰는 것이느니 그런다. 그녀 표현을 표절할 수 밖에 없는데, ㅇ_ㅇ 내가 내린 처방은 진주 유람! ㅎㅎ 말로만 듣던 진주성. 직접 보았다. 스쿠터로 전국 다방유람을 하는 유성용씨와 만났다.

그렇게 해서, 거의 밤을 새고 이야기한 뒤 새벽에 찍은 지리산이다.



청학동이 근처에 있고, 이곳이 그리 빈농도 아니다. 젊은이도 의외로 많고, 진주 읍내로 가는 버스도 30분마다 한 대 있을 정도다. 물론 할배 할매들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공기 좋은 건 당연하고, 수도물도 그냥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병도 낫는 동네다. 마음의 병까지 고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참 많은데. 가 봤어야 했던 곳도 있었는데... 갈 수 있을련지. 언제 또 먹먹하게 만들련지.

정말이지, 자연은 말이 없건만, 보는 사람을 뒤집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

2007년 9월 28일 금요일

Once

어쩌면 이런 영화를, 아니, 이런 노래를 만들어냈을까? 아니, 굳이 몸 상태가 이상한 지금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받으며(!) 볼 영화다. 무엇보다 내게는 기억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장애물이 될, 고통밖에 못 될 기억들이다. 보는 내내 괴로워할 수 밖에. 아... 지금의 나로서는 술도 삼가해야 할진저.


"Miluju tebe!"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체코어로 말한다. 저 정도야 검색하면 금방 나온다. 그런데 계속 말하지만, 사랑을 마음으로 하나? 어차피 태권브이처럼 합체가 되지 못할 몸. 말도 합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자의 말, 여자의 말 모두 외국어가 아닐련지. 똑같은 사건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기 일쑤다. 똑같은 장면도 두 사람의 뇌는 나름대로 기억과 해석을 반복한다.

남자는 못알아듣고 가르쳐달라 조른다. 여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오토바이를 가르쳐달라 조른다. 남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C'est toi qui j'aime. Ce n'est que toi qui j'aime. 아... 이거 참.

못알아듣고, 알아듣고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노래 연습을 더 할 걸 그랬다. 기타를 그 앞에서 쳐볼 걸 그랬다. 그래도 기타 코드는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하나의 바람, 희망, 꿈이었을까. 덧없다. 부질 없다. iPod까지 간헐적으로 목소리를 들려준다...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26일의 일기

기록을 해 놓아야겟다.

아침에 꾼 꿈이 문제엿다. 꿈 속에서 아이(말 그대로 아이)의 소식을 들엇다... 꿈이엇다.

Once를 보앗다. 눈물 범벅이 되면서 보았다.

2007년 9월 25일 화요일

벌써 1년

회사로 향하는 셔틀버스는 두 대가 잇다. 하나는 고려대역에서 출발하고, 다른 하나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한다. 지난 1년동안 내가 출근하는 루트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거쳣다.

  1. 2호선-6호선-고려대역
  2. 2호선-왕십리역-시내버스-고려대역
  3. 버스-압구정 성수대교-시내버스-고려대역
  4. 2호선-왕십리역-구리선-청량리역

대략 첫 번째 방법을 제일 많이 사용하다가, 올해 봄 쯤 들어서 2번부터 4번을 다 시험해 보았다. 결국은 2번과 4번을 유용하게 되었다. 취약점은 다음과 같다.

  • 2번의 경우, 버스가 안 오면 대책 없다. 30분 차 타면 다행이고, 45분 차의 경우 놓친 적이 꽤 있다.
  • 4번의 경우, 셔틀버스가 45분에 떠나므로, 평소에 어중간하게 빨리 오는 나로서는 시간을 죽여야 한다.



간단하다. 시간을 죽이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4번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겨운 청량리 풍경이다. 사진은 아침에 셔틀 버스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런 골목길을 즐겨 돌아다녔을 때는 국민학교 때 뿐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국민학교 때는 미아리 길을 지나다녔으니 정말 다를 것이 없겠다. 그래도 아침에,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보니까 또 산뜻하다. 사실 청량리 먹자골목 쪽에 이어진 곳인데, 이런 곳에서의 소주 한 잔이라면 정말 참 멋스럽다.

음. 뭐, 그렇다는 이야기. ㅇ_ㅇ~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벌써 1년

내 사원번호는 20060916이다. 9월 16일부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실제 출근은 9월 11일부터였다.) oho~에 보면 1년 전 글이 FTA 관련 회의 참가였다.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서 열린 회의였고, 난 땡땡이를 쳤다. ㅇ_ㅇ!

장소가 코엑스였는지라 메가박스 쪽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었지. 저 넥타이는 2001년 11월 9일날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다가, 기장이 나에게 준 생일선물이다. 어쩌다 저걸 맸는지 모르겠네. 옛날 사진 보다가 발견한 것인데...


이 때 내 인생은 뭐, 별다른 일도 없었고 평온했었다. 블로긴도 열심히 하던 시절이엇지. 금방 들어가자마자여서 쫌 정신없는 시절이긴 했다. 다가올 2007년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이 때 할 일이 없었던 나는 회사에서 소설, "망량의 상자"를 읽었었다. 아마 저 회의장에도 들고갔었던 기억이 난다.

망량의 상자... 참 축축한 소설.

그리고 2007년. 2007년은 도둑처럼 다가왔다가, 날 때려눕힌 채 지나가고 있다.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Loulou

이자벨 위페르를 좋아하려면, 아무래도 "레이스짜는 여인"부터 봐야 할 터인데, 그 영화는 아직까지 못 보고 있다. 기회가 안 되서일 것이다. 금번 하이퍼텍나다에서 하는 이자벨 위페르 전에서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룰루라도 보는 것이 어딘가. 게다가 동정 없는 세상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영화가 흔하지는 않다. 희망이 있어도 절망뿐인, 절망이 있어도 슬프진 않은 애매한 시기가 80년대 프랑스였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 옆길로 빠지기 쉽다. ㅎㅎ 서방세계 최초로 공산당이 여당이었을 때가 80년대 초의 프랑스 풍경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문에 바로 절망으로 바뀌기는 하는데, 그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룰루가 넬리에게 어째서 '남자'가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면...

글쎄. 이 곳을 몇 명이나 볼련지는 모르겠으나, 날 좋아한다면 이 영화도 썩 재미나게 볼 수 있을 듯 싶다. 앙드레가 어째서 넬리를 놓치는지, 어째서 앙드레가 넬리를 이해하는 듯 하면서도 못하는지, 어째서 넬리가 룰루에게 남는지. 안다. 잘 안다. 절실히 안다. 하지만 역시나 분하다. 농담처럼 넬리는 룰루가 매일 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아님을 안다. 알기 때문에 더 이해해도, 역시 이해하기 싫다.

룰루야 만사 태평.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국어로 어떻게 하면 더 번역이 잘될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I don't care도 있겠지만, I never give damn to you.도 의미가 비슷하다.

Je m'en fous, toute!

그런데 어쩌나. 말로야 그렇게 하기 쉽지. 뭐든지 사랑이 아쉬운 나로서는 뭐든 미심쩍다. 저주라면, 저주다.

2007년 9월 18일 화요일

GIA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졸리(!)와 실제 모델, 지아 카란지가 서로 정확히 닮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직후라면, 닮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물론 어차피 죽은 사람을 살려 놓은 영화이니, 유사성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지아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어째서 그녀의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는지이다.

난 정확히 무엇을 보았을까? 지아?


그러고보니 박지아 씨 이름이 본명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ㅎㅎ 본명이 아니면 또 어떤가. 그러면 더 좋다.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해 얼굴을 팔고 이름을 팔았으니, 제아무리 약에 취했다고 해도 나름대로 행복했을 것이다. 분명. 문제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남겨진 자들의 몫. 무척 까다롭다. 개인적인 호불호로 몰아가면 뭐든 간단해지지만, 그 '개인'이 당사자가 될 수 밖에 없다면, 더 이상 간단해질 수 없다. 물론 호쾌하게, 팩토리걸에 나온 '퀸'처럼 상대하면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겨진 자의 죄는 무엇일까? 평가하려 해서 죄일까, 아니면 돌봐주려 해서 죄일까?

뭘 어떻게 해도 의미가 없는 삶이니, 폭주나 극단적인 결정이 난무해도, 돌봐준다는 것. 받아준다는 것. 사랑하는 것. 축복일까, 저주일까?

남겨진 자들은 그 만큼 고통을 더 느껴야 할 테니, 제멋대로 살다간 매력 있는 신인류를 떠받들어 주어야 제맛이다. 남겨진 자. 괴롭다. 피동형 동사. 괴롭다. 괴롭다만은 능동태네.

2007년 9월 16일 일요일

열 한 번째 게시

아....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 나와 얼굴을 맞대고 차를 마시고 있는 S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하버드스타일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이었다. 커피빈에서 마키아토와 물을 갖다 놓고, 한 두 시간 앉아 있더니 다 읽을 수 있었다.

당연히 말하고 싶지가 않지. 최근엔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을 읽었고요. 그 전에는 알랭 드 보통의 "키스 전에 하는 말들"을 읽었어요. 아. 레드 제플린이 다시 그룹을 결성해서 노래를 부른다네요. 예. 전 기관이전하면 그냥 따라가고 싶어요.

그린란드에 가고 싶어요. 미국으로 간다면 단연 알래스카. 왜요? 인간들이 싫어서요.

그린란드 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시베리아는 호랑이나 곰한테 쫓길 수 있으니 좀 곤란스럽다.

음. 왜이리 공격적으로 변하였을까? 모든 것이 다 지겹기 때문이리라. 지겹고, 쓸쓸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날씨는 점차 스산해져간다.

아름다움. 아름다움만을 느끼고 싶다. 이래저래 난 친구가 없다.

2007년 9월 14일 금요일

기담



다행히도 마지막 상영을 볼 수 있었다. 장소는 씨네큐브 맞은 편에 있는 미로스페이스였는데, 우연찮게 감독과 미술감독의 간담회(!)도 있었다. 답변들을 G7카메라로 찍었었다. 맨 마지막 답변만은 디스크 용량이 모잘라서 못찍었는데, 미술감독의 이름이 나와 같더군. 신기하네. ㅇ_ㅇ

그건 그렇고, 존나게 사랑하면 저리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부터 난다. 맨 마지막 대사때문이 아니다. 에피소드 세 가지 모두 다 중심축이 지독한 사랑이라서이다. 얼마나 존나게 사랑했으면 영혼까지 결혼을 시키며, 얼마나 존나게 사랑했으면 의사 아저씨까지 데려가려 했을까? 얼마나 존나게 사랑했으면 그림자도 안보일까?

공포영화가 아니었던 거다. 귀신이 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갑작스레 시체함으로 끌고 들어가도 놀라지 않았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지아씨가 알듯 모를듯 소리를 내도 놀라지 않았다. 나비비녀로 사람을 찔러대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이 나더라. 무엇이 그들을 존나게 사랑하게 했는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존나게 하건, 시시하게 하건, 사랑은 참 쓸쓸하다.

2007년 9월 10일 월요일

Broken Flowers

Well, the past is gone, I know that. The future isn't here yet, whatever it's going to be. So, all there is, is this. The present. That's it.

존스턴이 마지막에 (아들일지도 모를) 소년에게 해 준 대사이다. 소년은 그에게 철학 한 마디를 요구했었다. 그래. 과거는 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안왔으니 어찌 될지 모른다. 남은 것은 현재 뿐이다. 네 명의 여자는 가버렸고, 앞으로 누굴 만날지는 모르나, 현재는 아무 것도 없다인가?


쥘리 델피는 이 영화에서 이름이 "셰리"다. 스펠링을 비틀어 보면 발음이 같은 불어 단어, "Chéri"는 여자가 남자 애인을 지칭할 때, 즉, "자기"라는 의미다. 델피가 분명 저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델피도 결국 존스턴의 한 모습이었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녀는 그를 떠났다. 존스턴의 한 모습은 존스턴을 떠났다.

하지만 마지막에 보면, 그 존스턴은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낳는다. 역시 현재밖에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김기덕 시간에서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제가 행복해 보이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인 이 존스턴이 돈 후안이었다니, 믿기 힘들다는 생각부터 나지만, 그의 무표정은 애써 감춘 그의 과거이자,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그의 쓸쓸함일 게다. 절친한 친구 윈스턴처럼 다섯 명(!)의 아이와 단란하게 사는 편이 옳았을까? 츄리닝을 입고 혼자서 음악과 영화에 빠져 사는 그의 사생활은, 그의 감춰진 슬픔을 드러낸다.

바라는 것이 없다는 점. 바뀔 것, 바뀐 것이 없다는 점. 아들이 있건 없건, 위안이 안된다는 점. 지독하다. 그걸 모르는 채 사는 편이 나을까.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는 현재, 바로 그런 의미가 없기에 현재일 게다.

2007년 9월 8일 토요일

열 번째 게시



Broken Flowers를 보러 아트시네마에 갔었다. 사실 세미나가 퇴근 시간을 넘기길래 일정이 엉망(?)이 되어서 간 것이었고, 실제로 브로큰 플라워를 하는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원래 일정은 CQN에 가서 이마무라 쇼헤이를 보는 것이었는데... 보지 않기로 결정내렸다. 아니 꼭 요새들어 이러는 건 아닌데, 일본 건 왠지 모르게 수준이 낮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왠지 모르게. 중요하다. 역시 서양 것들이 취향에 맞는다.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부드러운 표현이 될 터.

아무튼 그 담배 피기 명당(!) 중 하나인 옥상에서 밑을 쳐다 보았다. 저녁 8시쯤 되었으니 이미 어둑어둑해진 상태였고, 뭐가 그리들 좋은지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그 때. 그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도 옆에 아무도 없었고, 나의 G마켓 안경은 테가 상당히 두터워서 나의 눈물을 잘 가려주고 있었다.

앞을 쳐다보며 꺼이꺼이 울었는데, 이게 이게... 물론 사랑때문인 것이 맞다. 사랑을 마음으로 하나? 정말 그러한가? 사랑은 마음을 나누는가? 정말 그러한가? 싱크.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처음의 느낌을 무너뜨린 것은 몰랐던 사실일까, 알게 된 사실일까.

무엇보다... 친밀해진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희생시키는 담보일까.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이렷다. 그래서?

좋은 지적이다. 그래서? 역시나 또 다시 아이가 되어버린다. 도대체가 낙원상가는 날 왜이리 아프게 만드느냔 말이다.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오프로드

한국은 현재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어느 촌구석을 가더라도 포장되어 있다. 다만 차선은 2차선뿐이다. 가고, 오고. 그 뿐이다. 사막으로 가는 길도 그러했다. 가고, 오고. 그 뿐이다. 이따금씩 느리게 가는 차를 빠르게 앞질러 가는 것은 그 만큼의 담보를 요구하였다.

내 성격에, 느리게 가는 앞차는 추월하고본다. 도시에서는 느긋한데, 사막에서는 도저히 그게 안 되었다. 역시 사막이 날 삼켜버리잖았을까. 게다가 꼴에 위급한 상황에서도 태연해 하였다. 아니, 초연해 하였다. 초연. 나 혼자 놀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녀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별자리가 같으니 그걸 모를리 없다.

지독한 외로움을 강제로 떠안긴 셈이다. 나도 모르지 않았어. 하지만 가고. 오고. 그뿐인 길이다. 느슨했던 여행은 어느새 돌아보지 않는 길로의 여행이 되어버렸었다. 그리고 난 역시 초연해 하였다. 외로움 따따블. 난 왜 말을 못할까? 나라서일까, 남자라서일까? 질문이 곧 변명일까?



오프로드의 주인공들은 울고 웃다가 막바지로 치닫는다. 평범한 삶. 평범한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짚어내기 막막한지 이제는 안다. 아니, 이제서야 알았기에 난 죄를 지었다. 계속 죄를 짓고 있다. 이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나는, 일단 울고 보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울었다. 아렸다.


2007년 9월 3일 월요일

coffee and cigarettes

일요일 오후, 낮잠이나 잘까 하던 차에 EBS를 틀어보니 이게 웬 걸. "커피와 담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종로 스폰지 극장에서 작년 여름인가에 상영했던 것을 봤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영화는 다시 보아도 참 재밌다. 아마 "담배는 해로워" 편부터였을 것이다.



나 자신이 술과 커피를 즐겨하는데 담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금연을 혐오한다. 좀 이상하달 수도 있겠지만, 담배냄새가 고약하다거나, 싫다고 느낀 적은 별로 많지 않다. 맞담배는 아니더라도 고립된 장소에서 담배피는 그녀를 상대해줄 수 있는 자가 나이다.

맞아맞아. 그 때에도 스폰지 밑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책 읽는 것 역시 육체 건강에,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늘상 하는 일이다. 늘상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기다릴 때에는, 조바심을 가질 때에는, 그리고 설레일 때에는 언제나 그래왔다.

그런 생활이 나의 더러운 구석을 얼마나 감쳐줬는지는 헤아릴 만하지만, 그런 것. 의미가 있나? 아는 채, 모르는 채. 오늘도 커피를 끓이고 있다.

2007년 9월 2일 일요일

Dopo Mezzanotte

제목의 뜻은 말그대로 "애프터 미드나잇"이다. 그냥 "자정 후"라고 지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뭐 상관 없는 일이다. 영어로 하는 편의 어감이 더 좋았나보지. ㅇ_ㅇ

그런데 포스터에도 나오는 아래 사진에 주의를 끄는 문장이 쓰여 있다. 앙뚜안 뤼미에르가 했다는 말로서, 영화 안에 변사(이 영화에는 변사가 있다!)의 대사로도 나온다.

Il cinema è un'invenzione senza futuro.
영화는 미래가 없는 발명이다.



과연 그렇다. 쥴앤짐을 어설프게(?) 따라한 이 영화 속의 커플은 과연 미래를 염두에나 두고 있을까? 마르티노(얄궂게도 '아침'의 의미를 갖는다)가 과연 앞날을 생각하고 영화를 찍었을까?

따라서, 미래가 있는, 앞날이 있는 발명이란 존재할까?

뤼미에르가 그 점까지 염두에 두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저 말이 명언이기는 하다. 물론 '인터넷은 뜨지 못할 것이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과는 다른 의미로서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겠다. 아니, 사랑도 마찬가지이겠다. 미래를, 앞날을 생각하는 순간 사랑에서 멀어지고, 사람에서 멀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이 없으니, 우리이다. 살짝 바꾸니 이렇게 뜻이 흘륭해진다.

쓰다보니 영화와는 멀어진 글이 되어버렷다! ㅇ_ㅇ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Waitress

비행기에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봄 즈음에 애플의 트레일러 사이트에서 예고편을 보고 정말정말 궁금해 하였던 기억이 났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KAL 좌석 화면에 이 영화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다른 영화는 정말 볼 것이 없었다. 순전히 내 취향 탓이긴 하지만. :D

이 유부녀 웨이트리스와 의사 양반은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될까? 당연히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 층 더 궁금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나타내는 미국 깡촌(?), 혹은 시골에서 바쁘지 않게 그날, 그날을 감사히 여기는 위대한(정말이지 난 이들이 위대하다)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라서다. 도시에서 낳고 자라났으니 이런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



게다가 또 있다. 조 할아버지이다. 비행기에서는 성우가 한국어로 말하는 버전이어서 원어를 듣지 않았는데(당연하다. 난 한국인.), 예고편에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대사와 다른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부차적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제나와 조 할배가 서로 '친구'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끈다. 티격태격, 의견 차이, 사상의 차이 이전에 사람으로서, 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을 가질 만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다. 기적 중의 기적이다.

사랑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아니, 분명 다르긴 할 것이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강도(?)로 영화 찍자마자 살해당했으며,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딸은 감독의 딸이었다.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放逐 (익사일)

사실 총 쏠 때 담배 물고 저런 포즈가 나오기는 힘들다. 뭐 고수야 저럴 수 있겠다만, 영화에서 나오듯 자유자재로 팔을 휘두르면서 목표를 계속 맞추는 것, 혹은 주인공들처럼 깡통만 맞추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라고 쓰기에는 불경스럽다. 어디를 가야할지 모를, 무엇을 하고있는지 모를, 그래도 가야 하는 모습이 나와서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었다. 웃으면서, 그리고 썬그라스를 쓰면서.

호쾌한 영화다.

트레일러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Factory Girl

원래 이 영화는 5월 말 경에 보기로 했던 영화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안 보게 되었고, 이 영화를 본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때 봤으면 어땠을까? 지금 본 것과 차이가 있을까? 차이를 분별한다는 것, 교양인의 시작이다. 그러나 교양은 멀고, 차이도 버겁다...라고 생각하면, 이건 또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애초에 내가 팩토리걸을 보고 싶어했던 이유는 뮤즈라는 존재가 하나의 소비재가 아닐까서였다. 이 생각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외국말인 뮤즈라고 하니까 더 그럴듯할까? 예술의 먹잇감은 사람일 수 밖에 없으니, 바라보는 나나, 대상이 되는 먹잇감이나 참 적적하다. 알면서도, 알고서도 빠져드는 것이 예술이다. 물론 예술 아니고서도 그렇게들 살아간다. 알고서도 저지르고, 알고서도...




그리고 지금 보아서 새로 추가된 점이 있다. 누가 나이지? 워홀? 이디? 퀸? ...시드?

워홀의 영화는 그야말로 워홀 혼자서나 봐야 할 영화로 가득하다. 당연히 이디를 먹어치운 뒤 50달러에 버린다. 이디는 워홀을 사랑하였고, 퀸도 사랑하였다. 퀸은 주저없이 이디를 버렸다. 시드는 주저하다가 이디를 버렸다. 아니 이게 뭐야. 혐오스런 이디의 일생이 되어버린 것인가? 내가 이디를 좋아하는 것은 마츠코를 좋아하는 것과 같나?

당연히 이디가 현실이었고, 어떻게 보면 절절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정말 못봐주겠지만, 한 번 보면 눈물이 날 정도의 절절함. 그런 것은 없다. 그래도 이디가 있었기에 워홀은 그 만큼 더 예술가가, 세상이 그 만큼 더 살기 좋아졌다고 보면 너무 낙관적일까. 내가 이디? 내가?

팩토리걸을 5월 말에 안 본 것에 후회는 없다. 영화를 보거나 안 보거나 사는 과정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그 짧은 세월 사이에 나는 또다시 차갑게 눈물 흘리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좋지 않다.

2007년 8월 24일 금요일

아홉 번째 게시


Hotel Room - Edward Hopper


지극히 쓸쓸한, 자기 외에는 아무도 쳐다볼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다. 호텔 방도 그렇고, 시시각각 주변 풍경이 바뀌는 기차도 그러하며, 아예 대놓고 자기만을 응시하도록 강요하는 비행기 안도 그러하다. 고즈넉한 장소가 꼭 그런 장소가 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낙원상가 옆, 할배들이 밥을 먹으러 들어가는 그 식당도 마찬가지다. 할배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는 거칠기 그지 없는 후루룩만이 존재한다. 입담 속에는 온갖 주제가 등장한다. 여러 사람이 떠드는 곳. 혼자 떠들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은 지극한 이기심의 발로일까, 아니면 애처로운 자기 위안의 시작일까. 그저 멍하게 앞을 쳐다보며 열심히 밥을 먹고, 또 열심히 잠을 자는 모습을 내 위에 둥둥 떠 있는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다, 라고 느낀다.

이 번잡하되 소외된 공간을 같이 좋아한 것은 그 내밀함이 일치를 이룬 것이다. 평생 오기 힘든, 그런 순간이다. 다시 올 수 없을, 그런 감동이다. 소금을 넣어도 짜지 않았고, 쳐다보는 할배들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날씨도 기가막히게 좋았다.


여덟 번째 게시

صحراء

'사하라'라고 읽는다. 아랍어 뜻이 '사막'이니, 그냥 사하라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쪽 사람들이 아닌 모두는 사하라 사막이라고 부러 사막을 덧붙인다. 어차피 사하라는 비아랍인들에게는 모두 다 고유명사일 따름이다. 그렇게 신기해 보이는 에르그, 그리고 사구(沙丘)도 여기 사람들에게는 마을 풍경일 뿐이다.


어째서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발이 푹푹 빠져버리는 사막에서 내가 빠지지 않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고유명사와 일반명사를 덧붙여 말하는 이방인으로서 충분히 만족해 한다는 표시일까? 저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사진 생각뿐이었던가. 하늘을 제외한 팔방에 가득한 모래가 날 집어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발목을 넘쳐 올라온 모래가 이미 몸 속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점령당했다. 아니, 기꺼이 모른척 하였다.

약간은 웅크린 모습에서 조금은, 아니 많은 애처로움을 느낀다.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일곱 번째 게시

아래 사진은 회사 포털에 접속하면 항상 나오는 바이오 리듬이다. 오늘(8월 19일 일요일) 바이오 리듬은 다음과 같다.

감성만 유독 플러스다. ㅎㅎ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거의 매일 바이오 리듬(?)을 보긴 하는데, 이 바이오 리듬에서 플러스 수치가 나온 적은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매번 마이너스이다. 감성만 유독 플러스가 나온 것. 그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시차 탓도 있으려니, 매번 잠을 잤다가 깨어나고, 매번 접속을 했다 먹을 것 먹는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아. 고백성사도 보았다. 뭘 어쩔 줄 모르겠는 시간이다. 나 또한 모든 감각을 닫아버렸다.

2007년 8월 18일 토요일

여섯 번째 게시

지금은 한국.

가슴이 아리다.

2007년 8월 12일 일요일

다섯 번째 게시

생각해 보면 인천 공항의 커피 값이 샤를드골 공항의 커피 값보다 더 비싸다! 양의 문제를 따질 수도 있겠다만, 맛으로 따질 때 샤를드골이 훨씬 더 맛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천공항의 패배이다. ㅎ

암튼 하루만에 비행기를 갈아타는 모험은 역시나 체력의 소모를 상당히 가져온다. 그래도 지금 아침에 벌떡 일어나 이 글을 올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또 신기신기이다. 아직은 젊다 말할 수 있을게다.

고요한 아침, 아그달 거리는 한산하다. 일요일이라 그럴 테지만, 조금 있으면 카사블랑카로 간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특별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평범하고 느슨한 계획은 다 있다. 인생이 이려러니? 여행이 이려러니?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네 번째 게시

드디어 간다.

임박사님이 말했다.
"국제회의 때마다 참가하세요?"

하하... 어떻게 답하지? 뭐, 어제, 오늘 한가해서요라고 답하였다.


짤방은, 전혀 관계 없이 커피 마시러 올라온 동료들.

그러고보니 나도 웬일이냐. 생각해 보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보다는 역시 서서 직접 접촉하는 일이 더 재미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무료한 일보다는 새로운 만남이 더 흥미로워서가 아닐련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격의 없이 영어와 일어로 대화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소관한 회의가 아니었지만, 온몸으로 도왔다. ㅎㅎ

그리고 퇴근하기 직전, 짱은 내게 일을 시켰다. -_- 다행히도 그녀를 만나 맛있는 장어를 먹을 수 있었는데...

이건 좀 다른 의문인데,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 왜그리 많은 이들이 우리를 꼴아보는지(?) 모르겠다.

2007년 8월 9일 목요일

세 번째 게시



홍대 근처의 맥주집. 카메라를(카메라마저 G마크!) 산 후, 그녀가 찍어 주었다.

어쩌다 보니 셔츠만 입고 다니고 있는데, 교복입는 느낌이랄까? 그런 점이 있다. 난 고등학교 때만 교복을 입었었다. 그리고 그 때는 교복을 참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유니폼만 입으라고 하면 별로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 교복 느낌은 교복 느낌이되, 내 나름의 깔끔함이랄까? 그런 느낌도 있다.

깔끔함. 왠지 나와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더 어울린다면 어울리달까? 얌전하게 입건, 튀게 입건 넌 정말 예쁘고 깔끔하거든. 언제나 신선하달까.

흰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이틀 정도 등교(!)를 해 보았는데, 어차피 회사에서 드레스 코드갖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2007년 8월 8일 수요일

두 번째 게시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 박두순, 삶의 꽃.

첫 게시물



딴로그는 과연 있어야 하는 것일까...

있어야 한다고 방금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내가 수다장이이기도 하거니와, oho에는 못 올릴 글도 이따금씩 나오기 때문이다.

암튼 원래 내 블로그의 고향이었던 이 곳에 다시금 시작한다. 오늘, 여행가기 3일 전. 수요일, 비 많이 내리는 서울 청량리.


그리고 줄바꿈 실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