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7일 월요일

Factory Girl

원래 이 영화는 5월 말 경에 보기로 했던 영화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안 보게 되었고, 이 영화를 본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때 봤으면 어땠을까? 지금 본 것과 차이가 있을까? 차이를 분별한다는 것, 교양인의 시작이다. 그러나 교양은 멀고, 차이도 버겁다...라고 생각하면, 이건 또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애초에 내가 팩토리걸을 보고 싶어했던 이유는 뮤즈라는 존재가 하나의 소비재가 아닐까서였다. 이 생각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외국말인 뮤즈라고 하니까 더 그럴듯할까? 예술의 먹잇감은 사람일 수 밖에 없으니, 바라보는 나나, 대상이 되는 먹잇감이나 참 적적하다. 알면서도, 알고서도 빠져드는 것이 예술이다. 물론 예술 아니고서도 그렇게들 살아간다. 알고서도 저지르고, 알고서도...




그리고 지금 보아서 새로 추가된 점이 있다. 누가 나이지? 워홀? 이디? 퀸? ...시드?

워홀의 영화는 그야말로 워홀 혼자서나 봐야 할 영화로 가득하다. 당연히 이디를 먹어치운 뒤 50달러에 버린다. 이디는 워홀을 사랑하였고, 퀸도 사랑하였다. 퀸은 주저없이 이디를 버렸다. 시드는 주저하다가 이디를 버렸다. 아니 이게 뭐야. 혐오스런 이디의 일생이 되어버린 것인가? 내가 이디를 좋아하는 것은 마츠코를 좋아하는 것과 같나?

당연히 이디가 현실이었고, 어떻게 보면 절절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정말 못봐주겠지만, 한 번 보면 눈물이 날 정도의 절절함. 그런 것은 없다. 그래도 이디가 있었기에 워홀은 그 만큼 더 예술가가, 세상이 그 만큼 더 살기 좋아졌다고 보면 너무 낙관적일까. 내가 이디? 내가?

팩토리걸을 5월 말에 안 본 것에 후회는 없다. 영화를 보거나 안 보거나 사는 과정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그 짧은 세월 사이에 나는 또다시 차갑게 눈물 흘리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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