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 the past is gone, I know that. The future isn't here yet, whatever it's going to be. So, all there is, is this. The present. That's it.
존스턴이 마지막에 (아들일지도 모를) 소년에게 해 준 대사이다. 소년은 그에게 철학 한 마디를 요구했었다. 그래. 과거는 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안왔으니 어찌 될지 모른다. 남은 것은 현재 뿐이다. 네 명의 여자는 가버렸고, 앞으로 누굴 만날지는 모르나, 현재는 아무 것도 없다인가?

쥘리 델피는 이 영화에서 이름이 "셰리"다. 스펠링을 비틀어 보면 발음이 같은 불어 단어, "Chéri"는 여자가 남자 애인을 지칭할 때, 즉, "자기"라는 의미다. 델피가 분명 저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델피도 결국 존스턴의 한 모습이었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녀는 그를 떠났다. 존스턴의 한 모습은 존스턴을 떠났다.
하지만 마지막에 보면, 그 존스턴은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낳는다. 역시 현재밖에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김기덕 시간에서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제가 행복해 보이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인 이 존스턴이 돈 후안이었다니, 믿기 힘들다는 생각부터 나지만, 그의 무표정은 애써 감춘 그의 과거이자, 애쓰지 않아도 드러나는 그의 쓸쓸함일 게다. 절친한 친구 윈스턴처럼 다섯 명(!)의 아이와 단란하게 사는 편이 옳았을까? 츄리닝을 입고 혼자서 음악과 영화에 빠져 사는 그의 사생활은, 그의 감춰진 슬픔을 드러낸다.
바라는 것이 없다는 점. 바뀔 것, 바뀐 것이 없다는 점. 아들이 있건 없건, 위안이 안된다는 점. 지독하다. 그걸 모르는 채 사는 편이 나을까.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는 현재, 바로 그런 의미가 없기에 현재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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