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은 경제학이다. 그리고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이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합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합리성이란? 이기주의를 좋게 치장해주는 단어다.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이 때문에 평상시 나의 말은 거의 최적화되어있고, 결국은 먹고마시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따른다는 말을 쉽사리 따른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몸이 먼저 이해한다. 머리나 마음은 그 뒤다. 일단 자기가 배부르고 나야, 윤리이니 철학이니를 논할 수 있다. 홍익인간. 인내천. 철학을 논한다면 이 두 가지가 최고이리라. 그 찌질한 사랑타령도 먹고 마시는 문제가 대충이나마 해결되어야 할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시각인가라는 문제 자체도 2차적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최소한 신체욕구는 해결해 놓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입, 위장, 항문에 대해서 말이다.
웬만한, 아니, 모든 문제의 시작과 근본적인 해결은 바로 입, 위장, 항문에서 시작할 것이다.
2007년 11월 2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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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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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날, 고시친구들(!)을 만났다. 막말을 일삼는 나의 성격이야 뻔하디 뻔자이고, 역시나 이야기는 연애로 흘러갔다. 평소에 똑똑하기 그지 없는, 기가 드세고 키까지 커다란 유진이는 내가 왜이리 마초스러워졌냐고 다그친다. ㅎㅎ 병현이나 임쌤은 뭐 그러려니 하는 모양. 내가 워낙에 '몸'이 정직하다는 것을 강조해서 그랬나보다. 그런데 우짜겠나. 그게 맞는 걸.
게다가 진성 마초.라고 해야 할까? 마성 마초;;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 앞이라면 내가 한 없이 약해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게 아마 염세적 마초ㅋ의 특성일 게다. 사랑에 휩싸이고 불같이 타오르면서도, 쓰레기같은 구석이 다분한 그런 놈이라서이기도 하다. 도대체가 난 모두를 버리지 못했고, 내 생각 외로 남들은 나를 자상하다 평가하지 않았다. 평가. 따위에 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남들'은 보통의 '남'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없이 유치해진다. 일부러 편지를 써보려 한 적도 적지 않다. 시도도 해 보았는데, 다음 날만 되면 내용이 왜이리 초딩 글이 되어버리는지. 그게 또 작가들처럼 부사 없는 진솔한 글이라도 나왔으면 모르겠다. 완전 토요일밤의 열기에 나오는 존 트라볼타 삘이다. 글 느낌이 그렇다. 결국 안 보낸 것이 허다하다.
그거라도 보냈어야 했을까? 사실 그래야 했으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애걸복걸 글이라도 보내야 사랑의 진실, "찌질함"을 완벽히 실천했을 텐데. 그래야 원조남들에게 바수밀다의 웃음을 지어주는 저 여주인공의 마음을 100% 이해했을 텐데.
정말 울면서 웃기고, 웃기면서 슬픈 것. 사랑. 너 참 찌질하다.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스무 번째 게시
단잠을 자는 장면들이다. 꼭 연인 사이가 아니어도 좋다. 무방비 상태로 저렇게 편안하게, 평안하게 잠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새삼 가슴이 벅차오른다. 물론 기억한다. 그러나 정말 당연스럽게도, 잠. 그 편안한 잠과 사랑은 별 관계가 없다. 이 역시 "꾸며대는"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억만 하되, 말할 수 없는, 쓸 수 없 것들도 상당히 많다. 저작권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내뱉을 수 있을까나. 그녀는 죽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이뤄진다는 것이 뭐지? 장난스럽게 "일단 덮치라"는 조언을 즐겨 하는데, 어차피 사랑은 몸이 먼저 움직여서 보이는 것이니까 그것만은 합당하다. 잠. 잠이 여기서 작용한다. 섹스를 말함이 아니다. 당신이 옆에 누워도, 옆에서 사그락거려도 자연스럽게 잠들 수 있는, 그런 호사는 쉬이 누리기 힘들다. 그게 의미하는 것이 크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일생에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어차피 몸이 피곤해지면 어떻게든 잠들 수 있겠지만. 평상시에도 그럴 수 있으리라 바라는 건 과욕일까.
그냥 그런 '사치'는 바라지 말고 살아야 할까. 어느 새, 중요한 조건이 사치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서글프구나. 역시.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열 아홉 번째 게시
생일. 고등학교/대학교 후배인 Y가 케이크를 들고 출근했었다. 빨리 온 사람들이 모여서 생일축하 파티를 하였고, 사진은 S가 찍어 주었다. 흐뭇한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고 ㅎㅎ 그저 힘 없는 미소일 따름이다. 감기 때문에 목도리 두 개를 한꺼번에 두른 차림이다. 밖에서는 숄처럼, 두르고 다닌다. 스카프를 하나 장만할까 생각도 하고 있다.
아무튼 2007년 생일까지 이렇게 수 많은 일들이 생겨날지는 2006년 생일 때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돌이켜 보면 2006년 생일 때 뭘 했는지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정말 그 때 뭐했었지? 내가 생일을 딱히 챙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아. 생일이구나'라고 한 번 탄식하여 지나가는 사람이기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농담조로 선물을 내놓아랏!이란 말만 하고 다녔겠지.
근데 이 날 밤, 까페에서 고등학교 동창 보경이를 만났던 건 정말 의외였다. 동창회.따위에 절대 안 나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졸업 이후 못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이 훨 넘었네.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점심 한 번 같이 먹기 좋을 위치이구만. 맞은 편에 내가 다니는 기관도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동창들 중 아무도 내 근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정말 소수의 몇 명 빼고는 말이다.

누가 그런 삶. 그러니까, 친구가 별다르게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늘이었던가? 아무튼 내 답변은 한결같다. 후회하지 않는다. (Je ne regrette rien.)
2007년 11월 8일 목요일
열 여덟 번째 게시
아프다는 것. 굳이 병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록 감기라 하더라도 비단 몸만 아픈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처음부터 몸은 정직하였다. 머리보다, 가슴보다, 몸 자체가 끔찍스러울만큼 정직하다.
건강하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형용사다. 좋다. 바람직하다.보다 "건강하다"가 훨씬 더 건전하기 때문이다. 아니, "건전하다"보다도 더 건전하다. 건전스럽다. 괜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건강한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인간쓰레기였냐면, 맨날 나 혼자 징징대고, 나 혼자 나자빠져버리고, 그러면서도 생각해준답시고 이것 저것 시도해 보는 못난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거다. 제아무리 내 혈액형을 아무도 못맞춘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서는 곤란하다. 아니,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제대로 건강한 관계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상한다.
늘상. 생각. 평생 그럴래?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열 일곱 번째 게시
이번에는 지독한 목감기가 찾아왔다. 감기? 감기일까? 콧물도, 기침도, 열도 없으니 감기라고 할 것 까지 있겠나 싶다. 다만 목이 상당히 많이 부었다. 생활이 너무 무절제했나? ㅎㅎ
잠을 최소한 1시, 늦으면 3시, 4시에 자는 생활이 언제부터인가 지속되고 있는데, 일단은 그것부터 끊어야 되잖을까. 밤에는 아무도 없고 어두워요. 우울해져요.라 말했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럴 때 책이나 보고 앉아 있으면 정말 염세적이 될 수밖에 없잖을까. 물론 좀 쎈 단어이긴 하다. 비슷한 뜻을 가지면서, 좀 약한 형용사가 있을 법한데, 당장 생각나는 단어는 없다. 올해 초(?), 그 날의 술자리에서 봤을 때부터 염세적이었다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당히 견디기 괴롭다. 목만 부어도 이 정도인데, 다른 곳까지 아프면 어쩔까. 나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가? 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