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하하. X됐다. 뭐 늘상 이러니만큼 걍 시간 흘러보내면 될 일이긴 하다. 아니 X된 것이 맞긴 맞을까? 기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하리. 음악을 몸으로 느껴서 재활(?)할 수 있는 것을 내 상황에서 어떻게 비유하면 될까? 일종의 인터페이스가 바뀐 것이랄 수 있겠는데, 나의 경우에는 인터페이스만 바뀌면 해결되나? 근본적인 귀머거리(?)인 내가 바뀔 수 있을까?
아직도 내가 상대방에게 편안함이나 안정감을 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그런 걸 줘야 하나?). 걍 세상따위 망해버렷. 하고 자조하진 않으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ㅎㅎ 모든 문제를 남의 탓이라 돌려버리면 그것대로 좋긴 한데, 그렇다고 말끔해지진 않으니 문제로다. 물론 말끔해진다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평생 걸려도 알 수 없겠다.
프랭키 와일드는 그나마 복수를 해냈다.
2008년 12월 27일 토요일
X됐다, 피트 통(It's all gone, Pete Tong)
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까페(Café de los maestros)

아트선재 센터의 음향시설에서 본 것이 좀 그렇긴 하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에, 아무 때나 가도 절대 사람이 없는 그 한적함은 좋기만 하다. 도대체 어떻게 유지를 하는 것일까? 아트선재 자체가 재벌집 사모님이 운영하는 곳이니 괜찮을까? 그런 곳에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반골기질이 다분할 텐데,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극단은 같으니까.
하지만 탱고만은 좀 다를 것이다. 탱고와 삶을 분리할 수 없다(No separar el Tango de la vida.)라고 하는데, 탱고를 두고 다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뭘 분리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존경스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분리해낼 수 없다.
무력하다, 와는 좀 다른 말이다. 좋은 일 나쁜 일 구분을 하지 않으니, 무조건 다 내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한다. 행복하건, 불행하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걸 어쩌랴. 그렇다면 난 탱고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구먼. '이해'라는 말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지만 말이다.
2008년 12월 22일 월요일
사과

짤방은 영화 '사과'의 한 장면이다.
모티브라는 것, 사소한 한 가지의 행위나, 뭔가의 이미지라는 것이 전체를 좌우한다. 그런데 꼭 이유가 그것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사람 정하기 나름이니까. 사과에서 남자는 왜 여자를 떠났을까. 그리고 왜 돌아왔을까. 여자는 왜 남편과 헤어지려 했을까. 여자가 말한다.
"나 딴 남자 만나고 있어. 그것때문에 당신과 헤어지려는 건 아니지만."
정답이긴 정답이다. 여러 가지 이유때문에 결단을 내리는 것인데, 그걸 꼭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 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남자들의 특성이지. ㅎㅎㅎ 그런데 이 사과가 말하고자 함은 무엇일까? 우찌 됐건 결정을 내리는 자는 여자라는 점을 말해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권력의 이동을 풍자했을까? 분명 처음에는 이선균이 권력자였지만 갈수록 문소리가 권력자가 되는 이야기 구조라서 그러하다. 물론 그렇게 본다면 영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난, 무엇을 보았을까. 희망따위는 없어.하고 무심하게 풍경만 쳐다보는 자신을 나 자신이 그대로 지켜보고 있다. 세상에 소용이 있는 것이, 쓸모가 있는 것이 얼마나 되리.
괴롭다.
2008년 12월 18일 목요일
입사설명회

어제 입사설명회를 다녀왔다. 입사...라고 하기는 뭐한데(보통 여기는 '입부'라고 하니까), 오래간만에 초롱초롱한 대딩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 앞서 발표내용들이 죄다 시험방법론과 별 관심 없을 개인이력들이 나와서 상당히 지루했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발표했는고 하니(사전에 준비한 원고는 전혀 없었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지금 하는 일과, 나의 채용에 대한 것이었다. 딱 두 가지.
그런데 그것보다는 학생들의 질문이 더 재밌다. 시험방법론에 대한 따분한 질문도 물론 있었지만, 월급이 얼마냐, 앞으로의 과정이 어떻게 되냐, 어떤 사람들이 나처럼 들어가냐의 질문은 참으로 답하기도 재밌었다. 딱딱 끊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세울 수 있는 일을, 누구나 알 만한 회사나 기관에서, 하셔야 합니다."
그거이 핵심이지 뭐. 가타부타 온갖 말을 갖다붙일 수는 있겠다만, 결국 들어가냐 안가느냐로 판가름이 일단 나고, 그 다음부터는 오로지 자기와의 대화(라고 쓰고 독백이라 읽는다) 뿐이다. 정말로 자기가 이걸 원하는지. 정말로,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말이다. 일단 일정한 수입이 확보되어야 할 수 있는 사치이기도 하다.
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Eastern Promises

영화에 나오자마자 죽게되는 14살 러시아 여자애는 시베리아에서 선진국(?) 영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서유럽이 주는 돈의 그 크기가 실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돈맛에 왔으니, 마진이 제일 큰 사업에 끌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마 이 영화의 소재(?)는 실제로 비일비재 할 것이다.
다문화주의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딱 어울린다는 얘기인데, 그런 칙칙한 얘기를 더 이상 하고싶진 않다. ㅎ (부산에도 저정도로 러시아 마피아가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서울은 조선족(중국) 조폭, 베트남 조폭, 몽고 조폭 등등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주목할 것은 저 여자와 운전수, 그리고 우두머리의 아들 정도랄까.
다만 운전수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밖에 모른다고 했었다. 나도 그런 말을 버젓이 할 수 있고 싶긴 한데, 상황이 그리 여의치는 않고 ㅎㅎ 나의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고픈데 별로 내가 입담도 없고 하니 참 고난의 연속이다. 내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이도 없는 듯 하고.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업데이트 실패 -_-

WordPress 2.7로 업데이트하다가 홈페이지 날린 듯 하다. ㅎㅎㅎ 뭐, 내용물이야 백업을 해 놓았으니 괜찮기는 할 텐데, 회사(!)에서 업데이트하지 말아야한다는 교훈을 내가 스스로 잊었던 탓이 제일 크다. 무엇보다 제일 큰 이유는, 회사의 무선인터넷 커넥션이 안정적이지가 않아서이다.
안정적이지 않은 이유는 일부러 그런 듯 하다. 다운스트림의 경우 끊이지를 않지만, 업스트림의 경우 보안상 이유때문에 일부러 막아 놓은 듯 해서 그러하다. 즉, FTP 전송을 할 때 정기적으로 계속 끊어지게 되고, 그 때문에 이어올리기를 하다가 파일 손상이 가해지게 된다. 이것이 업데이트 실패를 불러왔다고 본다.
집에 가서 다시 해 보면 될 터이다. 안 된다면... 뭐 더 고민해 봐야겠지. 아예 뒤엎고 새로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긴 방법일 터이다.
그건 그렇고... 흠흠.
2008년 12월 9일 화요일
53번째 게시

짤방은 "타인의 삶"의 한 장면.
K지배인이 다녀갔다. 원래는 C지배인이었는데, 이 양반이 마지막 인도 할 때부터 바뀌었던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C지배인과 마찬가지로 이 양반도 나와 개인적으로 친한 관계(?)가 되었다. 내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나? -.-a 유독 나하고는 별 이야기를 다 하거든. 암튼 K는 C가 내년 즈음에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면서 "회사원"과 한다고 말한다.
"평범한" 회사원이겠지요. ㅎㅎㅎ 그랬더니 왜 나한테 연락을 안하는지 궁금하다고 그런다. 아니 결혼준비까지 할 정도라면 바쁜 것이 당연하잖을까. 관계 없는 친구들에게까지 전화를 돌릴 일은 없잖을까. 심지어 난 남자니까, 라는 생각을 했다. 좀 잘해보지 그러셨어요.
허허. 분명히 C는 끌리는 면이 없잖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 업무 얘기 외에는 거의 안한 것 같기도 한데, 자주 만난 것이 사실이긴 하지.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덤벼들었겠지만, 그러하지 않았던 이유가 구체적으로 뭔지 잘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피한 것일까? 난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바로 그 때, 그 장소에 거기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그것이 좀 비겁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비겁하면 뭐 어때. 즐겁게 살고 싶을 뿐. 나의 사연은 참. 소소하게 재미난 듯 하다. 나만 그럴련지 몰라도. (웃음)
2008년 12월 7일 일요일
북극의 연인들(Los amantes del Círculo Polar Ártico)

신혼여행은 그린랜드로!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ㅎ 농담에 가까운 발상이긴 했지만, 지금도 그린랜드나 핀란드 쪽, 북극지방을 가보고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가끔 친구들에게 희망하는 공관이 알래스카 영사관이라는 말도 하고 다니니까, 이건 진심이라 봐도 좋다. 전혀 잔소리가 없이 즉각적으로 효과를 내는 자연과 벗삼아 살고 싶거든. 내가 아무리 도시청년이긴 해도 말이다.
영화 속의 할배 오토가 부인을 핀란드로 데리고 간 것은 북극 외에도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핀란드는 2차대전 때 전혀 전쟁장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겨울전쟁(Talvisota)덕분이긴 한데, 영화 속에 나오는 게르니카 폭격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이유는 몰라도 될 것이다. 다만 그런 우연을 영화적 장치가 잘 활용했다고 보면 되는데, 북극과 연결을 지어야 할 테니 나온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춥다는 이미지와 눈이 가득찬 포스터, 실제로 추웠던 오늘 날씨가 어우러지면 어떨까. 시너지 효과가 생기긴 생기나? 우연의 힘을 믿는 이 영화대로 우연을 밀고 나아가면 될련가? 우연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닐진대 말이다.
2008년 12월 5일 금요일
52번째 게시

사진은 오로의 문앞에서 찍은 것이다. 언제 찍었는지는 까먹었다. 하여간 승기형님과 경제걱정ㅎ을 좀 하였다. 삼청동, 위험하지 않을까? 올해 1년 지나면 절반 정도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가계가 아닌 한, 종업원을 고용하는 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살아남을까?
종모형(몰딥!)이 어떻게 할지 모를 일이긴 한데, 뭐 나야 잘 되리라 생각한다. 워낙에 승기형님이 잘 운영해 오기도 하였고, 일단 커피 맛이 좋잖겠나. 광화문에서 꽤 그럴듯해 보이는 커피투어의 쥔장(?)이 앉은 상태에서(여기서부터 충격), 그것도 잡담을 하며(완죤 충격) 드립시키는 광경을 보았으니 이거 참... 이거이거 오로의 병폐인가? ㅎ 하나도 몰랐던 내게 이런 허영(?)이 생겼으니 말이다.
제너럴닥터의 커피도 맛있다. (승범이는 아마 선 상태에서 숨을 죽이고 드립시키는 걸로 알고 있다. 아니면 앞으로라도 그렇게 하도록.)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로 커피가 제일이다. 아니 어쩌다 커피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음. 커피. 커피. 마시고 싶다. 계속 마셔도 계속 마시게 되는 마약. 커피. ㅇ_ㅇ
2008년 12월 2일 화요일
Happy-Go-Lucky

나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하겠어?"라 넘길줄도 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생활을 계속 영위한다. 말은 좀 막말을 하는 게 있고, 체념과 어두운 면을 내뿜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는 밝다. 건강하다. 대단히 강건한 뿌리를 갖고 있다. 안정적이다.
...라고 생각만 한다. 포피의 긍정성은 민폐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뭐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일 테다. "피해는 안입히지 않나"는 생각을 하는 게 놀랍긴 한데, 그것대로의 의미는 다 있으니 괜찮다. 어찌됐건 다채로운 사람들이 있으니까. 좀 안쓰러운 건 운전강사 스콧. 스콧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저리 되겠지.
2008년 11월 30일 일요일
51번째 게시
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50번째 게시

두 번 연기했었다. 한 번은 GCC와의 협상때문에, 두 번째는 인도와의 협상때문이었다. 그랬더니... 5일 내내 하는 것으로 "공문"까지 날라왔다. 꼼짝 없이 가야했다. 하지만 내심, 이건 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회사를 다니게 되면 칼퇴근은 절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예비군은 칼퇴근이다. ㅎㅎ 물론 "공가" 결재를 제출하고 온 것이다.
아직 진행중이긴 한데, 내년에도 연기 끝에 이런 것을 택할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차라리 앗싸리 2박 3일 동원훈련으로 끝이면 되긴 할 텐데, 그 경우 다음 날(보통 목요일) 출근을 해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그냥 연기를 계속 시키고, 다시 연말에 출퇴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안 좋은 것은 역시 추위. 바깥에서 달달 떨고 있으니, 참 하루가 고되다. 게다가 몸이 얼어서, 산 올라가기/내려가기도 대단히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구두가 발에 배기는 것도 여전하고, 힘든 일을 하진 않지만, 역시 힘든 건 힘든 거다. 아무튼 이제 내년 한 번만 더 하면 끝난다. 이건 뭐...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 ㅎ
2008년 11월 19일 수요일
영화관

출처는 여기
눈보라콘 언니의 포스팅을 보며 생각하다.
광화문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딱 1년 전 이맘 때다. 잔뜩 흥분했던 점이, 씨네큐브와 미로스페이스(위 사진), 아트시네마에서 그리 멀지 않다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녀보니, 시간상 매일 매일은 도저히 못가겠더라. 일이 많아서.가 제일 크다. 일찍 나오지도 못하니, 평일 저녁은 참 뭘 하기가 어렵다. (1년 전과는 사못 반대다.)
그리고 올해중에 광폰지가 생겼다. 아트선재도 다시 문을 열었다. 장사 안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광화문이 최적인 시대가 되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말이다.) 그리고 모두들, 광폰지를 빼면 다 사연이 있는 곳. ㅎㅎ
나름의 사연. 아, 지겹다. 광화문이 참 좋기는 한데, 그 냄새는 매우 진하다. 뭐, 다 보담고 살아야지.
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사진의 힘

저번 주 토요일, 그러니까 8일날 여기를 갔었다. 토요일 근무를 하고 나서, 나왔더니 딱히 집에 가기 싫은지라. ㅎㅎ 성곡미술관으로 향했더랬다. 물론 카메라와 같이 가져갔다. 안그래도 H가 이 전시회 얘기를 했던 것도 있고, 나 자신이 좀 궁금해서 갔었는데, 보면 볼수록, 사진이라는 게 제일 만만하면서도 제일 머나먼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뭐, 돈 쳐들여서 비싼 장비로 하면 좀 나아지기야 할 테지만. 그냥 내 수동카메라나 예뻐해주는 편이 제일 좋을 듯 싶다.
일단 필요한 것은 생각과 집중? 정도다. 생각을 하고 찍어야 하고, 집중하면서 찍어야 한다. 돈과 수고가 들어가는 것은 맞겠지만, 원하는 퀄리티가 있다면 그 정도의 비용을 감수해야 하잖을까. 모두 다 아무렇게나 찍은 것도 아니고, 모두 다 생각 없이 그냥 찍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생각과 집중을 일부러 해서는 안된다는 점.
한 문장으로 줄여서, 결국 몸애 배여서 자연스레 찍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되시겠다. 그런 경지가 되려면 어느 정도나 찍어야 할까나. 물론 난 절대 그런 것으로 마음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도 하고, 꼭 고수가 되어야 하겠나라는 마음가짐이니 될대로 되라 심정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따로 가꾸라는 의미가 되는데...
뭐 찍다 보면 내 스타일이 나오겠지. 그리고 여담인데,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정작 난 사람에 더 관심이 많다.
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Four Eyed Monsters

과장님이 안계시니 이런 좋은 기회가 없다. ㅎㅎ 칼퇴근해서 6:30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정말 지대하거든.! 바로 미로스페이스로 가서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 왠지 좋다. 참 따듯하다. 원래는 한 커플이 자기들의 실화를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이었다.
각색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영화로 녹였기 때문이다. 이거 참, 정말 환장하게시리 좋다까지는 아니지만, 딱 미지근할 정도의 바람직함이다. 좋았다. 미투에도 썼지만 딱 캐쉬백정도의 느낌이 든 것도 그 이유이리라. 하루라도 저렇게 한 번 해볼까? 글로만? ㅎㅎㅎㅎㅎ
대번에 "뭐에요"라는 외침이 머리속에서 들려온다. -_-; 그나저나 카사베츠전에서 보고싶은 것이 꽤 있는데 다들 시간대가 안맞네...
2008년 11월 9일 일요일
멋진 하루

멋진 하루의 남자 주인공. 나를 쏙 빼어 닮았다던 남자주인공이 나를 닮았더라고 했었다. 오늘 S에게, 머 이렇게 븅신짓 하다가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면 되잖겟나라고 했다가 서로 막 웃었다. 어쩌다 왜 이렇게 됐냐면서. 아... S는 내가 한 븅신짓 중에 하나를 직접 눈앞에서 보기도 한 장본인이다.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긴 했어도 ㅎㅎ (심지어 그녀는 "맥북 에어를 안사겠어연~"이라 말했던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였다. 물론 현재 나는 맥북에어를 쓰고 있다. -_-),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싶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냥 해탈했다고 치면 될까나? 저 멋진하루의 남자도 해탈이라면 해탈.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대해 아주 해맑은 관점을 갖고 있는, 그런 해탈감을 갖고 있으니까 항상 웃으면서, 항상 애틋하게 대할 수 있...다고 봐야 할까나? 윤리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나랑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하정우의 외모를 닮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ㅇ_ㅇ
암튼 오늘은 내 생일이다. 늦어도 11월, 11월 하더니 정말로 11월에 들어서버렸다. 딱히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건만, 참 애달픈 일이 계속 터지니, 그 또한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기똥찬 사건이 11월마다 터진 건 아니지만(실제로 그런 사건이 터지는 이들이 몇이나 될랑가), 나는, 바라는 것이 있다. 해탈하지 못한 나의 모습은 여전히 욕구불만에 휩싸여 있다.
2008년 11월 3일 월요일
49번째 게시

아래, 저 아래에 있는 사진과 같은 날 찍힌 사진이다. 뭐... 늦어도 11월까지는 저러고 살게 될 것이다. 12월에는 추워서 저렇게 못살지 싶기도 한데, 그냥 혼자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 찍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ㅎㅎ 실은 지금도 가끔(?) 광화문 일대를 배회하며 사진을 눌러대고 있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쪽팔린 느낌도 없잖아 있고, 동네를 찍을 때는 CCTV가 날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도 하고, 마구마구, 눌러대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스트레스때문?
사실 영화를 보려 했었다. '사과'를 볼까, '도쿄'를 볼까 망설였는데(그렇다. 씨네큐브, 아니면 미로스페이스 되시겠다.), 그냥 둘 다 안보기로 결정내렸다. 새로운 도피처,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좀 궁금한 영화이긴 한데(사과 쪽이 더 궁금하다), 영화라면... 일단 아트선재나 더 가봐야 하잖겠음둥? 게다가 하이퍼텍 나다도 다시 문을 연 모양이다. (왜 요샌 영화관들이 자체 홈페이지보다는 네이버 까페를 선호할까 모르겠다.) 나다... 여기는 사연이 별로 없는 곳인데 ㅎㅎ (혜화동에서는 데이트를 별로 안해서 ㅋ) 집에서 바로 가는 버스도 있고 하니 더 가까이 할 법한데, 별로 가보지는 않았다.
음. 갑자기 다 귀찮아지는 느낌도 없잖은데, 잠시동안의 환희를 죽을 때까지 곱씹으며 쓸쓸히 사는 것이 인생이랄지라도,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그래서 더욱 꿋꿋이 살 거고말야. 11월. 11월...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Ma nuit chez Maud)

모드 집에서 하룻밤을 아무 일(?) 없이 보낸 쟝-루이는 그 다음 날 낮에 프랑수아즈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몰릴 때는 한꺼번에 몰린다?고 봐도 좋을 텐데(웃음), 이렇게 순간순간 사람이 바뀔 때가 분명 있다. 분명 영화 초반에서 보였던 쟝-루이는 소심한 천주교 신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모드와의 철학(?) 대화가 그를 하루만에 바꾸어 놓았나?
이럴 때가 가끔은 있다. 대화를 하고난 뒤, 책이나 영화를 본 뒤에 인간이 잠시나마 바뀌는 경우다. 음악은 좀 다른데, 음악의 경우는 걍 눈물지을 때가 있을 뿐, 사람이 바뀌지는 않지. 아무튼, 당신과 사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저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냥 참고 지나가버리지...
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

아트선재가 재개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재개장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예전의 아트선재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대관을 하여 영화를 상영했기 때문이다. 두어편을 본 듯 한데, 개중 하나는 '바스키아'였던 기억이 난다. 그게 한 8년 전? 9년 전? 쯤 되었을 거라. J와 함께 난데없는 삼청동(그 동네가 삼청동인지는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을 걷고 걸어서 도착한 아트선재에서 봤었다.
그러고보니 나와 생일이 같았던(왜 과거형을 쓰고 있지?) 그 J와 과연 그 영화를 보았는지도 헷갈린다. (더군다나 지금이나 그때나 난 영화를 즐겨 혼자 보는 사람이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ㅎ 하지만 머리가 크고 난 지금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쪽으로 가는 지름길도 알고 있다. 그리고 삼청동은 히로시마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은, 쌈총동" 하는 광경을 생각하니 웃기다. 어찌 됐건 불안한 여자는 힘으로 제압해야 이름을 붙이건 말건 하지.라는 것이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48번째 게시

저번 일요일 창경궁이다. 사진찍는 건 그동안 거의 혼자만 나다녔;었는데, 이걸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하니 더 좋긴 좋다. 필름 한 통을 꺼내다가 잘못 돌리는 바람;에 끝이 좀 날라갈 것 같기도 한데... 음. 살아나면 좋겠는데말여. 필름 한 통은 더 찍어서 인화 및 스캔을 맡겨야겠는데, 이번 주말에는 또 인도와의 법률검토회의가 있는지라 운신의 폭이 좁다. 그래도 사진기를 들고 다녀 볼까나. 조명이 약하면 찍기도 뭐한 나의 프락티카.
암튼 저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 찍는 자의 손놀림같아 보이는, 그런 포즈가 좋다. 사실 카메라가 좀 무거워서; 저렇게 집어야 편안하기도 한데, 나의 사진 찍기 능력이 내 마음에 들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또 가야 할 터인데...
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47번째 게시

사진은 프락티카로 찍은 오로 주전자;
언제나처럼 약속이 없으니, 일찍 나온 김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나 다 읽자는 심산으로 ORO에 갔다. 그런데 왠일인지 오늘 손님은 전혀 없네. 그래서 올드보이 형님과 커피 얘기를 나누다가, 핸드드립 시연까지 보게 되었다. 잘게 빻은? 원두는 그 만큼 바로바로 산소에 산화되기 때문에 깔때기에 놓자마자 바로 드립시켜야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100도씨까지 끓인 물을 자연 냉각시키고, 꼿꼿이 선 채로(그리고 숨을 멈춘 채로) 조금씩 조금씩 부으면 커피가 완성된다.
...라고 표현하면 간단한데, 실상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주전자를 잡는 것도 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 모든 절차에는 응당 그에 어울리는 사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커피가 산화되는 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10초 안으로 재빠르게 드립을 시켜야 한다. 주위의 물기는 제거한 채로 말이다. 그러지 않은 다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차라리 프렌치 프레스로 찍어(?) 마시는 편이 훨 나을 것이다.
알고보니 오로 커피가 맛나는 이유는 알겠는데... 다른 다방은 못가는 거 아냐? ㅇ_ㅇ; 그나마 스타벅스는 평균은 가니, 거기라도 가는 편이 낫겠다.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46번째 게시
Praktica를 매일 갖고 다니기는 버겁다. 무거워서랄 수도 있겠다만, 평일 시간대에는 도저히 조명이 있는 낮에 카메라를 갖고 다닐 수 없는 직장인의 비애;때문이다. 게다가 수동카메라는 거의 십 수년 만에 처음인지라 실수도 잦다. 그냥 날려버린 필름이 몇 통인지 모르겠다. (남기고 싶은 컷도 상당히 있는 필름들이다.) 그나마 위에 있는 강아지 사진은 좀 괜찮게 나왔다.
말 타러 갔을 때, 승마장에 나타난 강아지였다. 저 때는 내가 초점을 잘 못잡아서인지, 찍는 순간 흔들려서인지, 잘 못찍은 사진이 상당히 많았다. 최근에 현상한 필름 롤 두 개를 보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뭐 더 찍어봐야 알 것이다. (24컷이건 36컷이건 디카처럼 마구마구 찍어대는 버릇이 있다. ㅎㅎ)
ORO 찍은 건 현상을 해 주고 싶은데... 일단 필름을 다 쓰기나 해야지. ㅎ 수동의 맛을 아니, 절대로 DSLR로는 가기 힘들잖나 싶다.
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Eagle Eye

S호텔의 호의(!)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본 영화다. 이런 식의 음모론 영화라면 2001 오딧세이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별로 가능하지 않을뿐 아니라, 설사 기술적으로 가능하다손치더라도, 미국 재정이 그런 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긴 한데, 쌍둥이 형이 죽은 상황에서 동생과 함께, 똑똑한(?) 아들을 분 싱글맘을 택한 점이다.
당연히 물불 안가릴 인간을 찾은 것이다. 물론 어차피 물불 안가리게 될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렇게 되기는 하지만, 거기에 동기부여가 더 된 사람을 일부러 찾아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에너지란... 복수나 증오가 아닐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거에 여전히 분노할 수 있다면, 뭐 해탈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여담인데 거리 곳곳에 대한 CCTV 감시와 함께, 전면적인 생물정보 국가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생존제일주의의 시대가 올 테니까.
2008년 10월 7일 화요일
멋진 하루

멋진 하루를 같이 본 G는(!) 하정우보고 딱 나라고 놀린다. (놀린 것인가?) 하기사 내게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매사에 긍정적이며(정말로 그러하다!), 날 어떻게 말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고, 뺀질뺀질대는 것이 그러하다. 특히 말하면서 실실 쪼개는 것(!)은 내 단점이다. 언제나 장난식으로, 농담식으로 대처하기 때문이다.
뭐, 삶의 모토 중 하나가, 진실 속에 농담이, 농담 속에 진실(
in verità scherzando, scherzando e nella verità)이니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B도 알고 있더라. 나의 그 단점. 그러면 결국 껄렁껄렁함이 나라는 이야기인데, 아... 그래서 날 거부들 하셨나. ㅎㅎ
그리고 내가 꽤 염세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돌려 말하면, 정말 긍정적이기에 염세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염세와 긍정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으니 내게는 매한가지이다. 아니, 여기까지 말해놓고 보니 정말 캐릭터가 나와 닮기는 하였다. ㅇ_ㅇ
2008년 10월 4일 토요일
어떤 미소 (Un certain sourire)

한 인간 존재가 텅 빈 해변에서 텅 빈 바다를 마주하고, 잠자고 있는 사람 옆에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 라는 구절이 책 안에 쓰여 있다. 텅 비어있지는 않았지만, 바다를 응시했던 적은 있었다. "이 남자즞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의문을 받을 만한 사내였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읽은 사강의 책 중에서는 이 "어떤 미소"가 최고였다. "늦어도 11월까지는"과 같은, 사못 센 느낌이다. 신체기관에까지 그 싸늘함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절망스러운 상냥함"이란 구절도 좋았다. 극단적인 형용사를 좋아하는 나로서 당연하달 수도 있겠다만, 작년 이후 인간이 바뀐 나로서...가 더 적당하다 하겠다.
따라서 이 책은 함부로 추천 못한다.
2008년 9월 28일 일요일
파란대문

서비스 직이라는 것이 원래 제조업에 기생하는 산업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1차산업이 토대가 되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계층구조가 이른바 '경제'라는 것인데,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보통은 서비스직을 선호하게 된다. 마치 서비스직이 먹이사슬의 제일 끝에 있는 양 말이다. 물론 급여는 서비스직이 제일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았다면 자기가 종사하는 서비스직과, 실제로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서비스직이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 아니, 그 깨닫지 못함은 숙명일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돌아가니 말이다.
참 상징적인 것이, 몸을 팔아 대학교 학비, 새장여관의 생활비를 번다는 설정이다. 정말 그것 갖고 생활비가 될까라는 의문은 차지하고서라도, 서비스 산업 내의 계층 분화가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들어냈다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밑에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 위에도 누군가가 있다. 우리 밑이 고생한 만큼 우리가 편하고, 우리가 고생한 만큼, 윗분들이 편하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올라간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서비스 산업 따위 없어도 되는 것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즉, 서비스가 망하면 제조업으로, 제조업도 안 되면 결국 1차산업이다. 즉, 올라가는 것은 없다. 내려가는 것만이 있다. 그래서 이지은의 여대생 흉내는 흉내로 그칠 수밖에 없지만 이혜영의 이지은 도와주기는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력의 법칙만큼이나 당연하다. 올라갈 수는 없다. 내려가기만 가능하다.
그래서 둘이 같이 잘 지내게 되는 장면은 판타지인 동시에 실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여대생이 밑으로 내려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판타지임도 자명하다. 진실이기는 해도, 진실이 과연 의미가 있던가?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
2008년 9월 18일 목요일
45번째 게시

명동의 '커피스토리'이다. 파란대문(그것도 무삭제판!)을 보고 들어간 다방에서 D군이 찍어 주었다. 저 때가 언제였더라. 저번 주 월요일인가 그럴 텐데, 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참 의욕이 안 생기고, 일은 많아지기만 한다. 맥주만 마셔댄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다음 주에 또 다시 협상 시작. 이번에는 여기 저기서 준비에 구멍이 뚫리는 느낌을 과장님이 받았나보다. 흠. 피곤해질 일이 많을 듯 싶다. 뭐 어떻게든 하긴 하겠지...요. 이번 주도 겁나게 바빠서 집에 오면 바로 곯아 떨어지고 있고, 혼나는 일도 많고. ㅎㅎㅎ 아. 좀 평안하게 살 수 없을까. 아무튼 괴롭다. 이유는 말하기 싫다. 일 때문만은 아니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44번째 게시

짤방은 Serge Leblon의 Goldfrapp 사진이다.
명절은 언제나 참 심심하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나마 영화도 보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시시하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 이 아니라 ㅎㅎ 그냥 다 세상사가 시시해져서.일 것이다. 출근해서 일 좀 했다가, 경복궁 가서 사진 몇 컷 찍고(프락티카는 여전히 어렵다), 바로 오로로 직행하였다. "어떤 미소"를 읽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쎄더라. "늦어도 11월에는"도 별 생각 없이 펼쳐들었다가 꼬박 그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눈이 아플 정도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로, 그 자리에서 다 앉아 읽어 해치웠다. 당연히, 책에는 줄과 내가 멋대로 느낀 문장(한국어와 불어)을 가득 적어 놓고 말이다. 위험한 책인가? 뭐, 심리를 있는 그대로, 아주 건조하게 써내려간다는 것은, 읽는 이의 편의와는 다르게, 대단히 쓰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더 가슴에 남는 책이 되는 모양이다.
전 같으면, 움베르토 에코의 새 책이 나와서 흥분하고 바로 사서 읽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시시해졌다. 나는, 변했다.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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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Henry Roy의 사진, Ibiza (2005)
금요일 저녁, H, H와 같이 포도주를 마셨다. (둘 다 H가 되었는데, 하나는 한씨, 하나는 황씨 ㅎㅎ) 미로스페이스 2층에서 마셨는데 뭐 대화 주제야 뻔하다. 뭔가를 알아버리면, 결코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같지 않다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에다가, 사랑의 비인간성, 배타성, 몰염치성(!)을 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둘 다 IT 업계 사람이므로 그 쪽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H(한)는 무엇보다 상당한 경력의 어두운 여인이라서인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H(활)은 '논리'를 따지는 남자답게 페이스가 말렸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ㅎㅎ
내가 하는 말중에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우엘벡의 말(어느 섬의 가능성에 나온다)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그 때 내가 했던 말은, 사랑한다면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였다. 일방적인 따라가기, 혹은 일방적인 리드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연인이 서로 벗고 눕는 것만이 벗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것. 속을 속속들이 벗으려면 무조건 명령내리거나, 무조건 복종밖에는 없다. (그래서 조제와 호랑이들의 테마가 바로 SM이었다고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즉, 아무리 세련된 문명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상황은 야만인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런 야만성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게다...라는 것인데, 뭐 나라고 얼마나 잘 알리오. 관계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나치게 자신감 있는, 걸걸한 나의 모습과 지나치게 벌벌떠는, 야들야들한 나의 모습이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난 인정하기 힘들다.
2008년 9월 8일 월요일
미치고 싶을 때(Gegen die Wand)

어렸을 때야, 처음부터 서서히, 서로를 알고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정석대로의(?) 사랑만 진짜가 아닐까 했었다. 그러다가, 순간적인(!) 사랑만이 진짜라는 점에 경도가 됐었고,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끝이 없을 주제이긴 하겠지만, 어차피 각자 나름대로, 자기 것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특이한 경험이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실, 사회의 소수자라 해도 차이는 없다. 물론 자신을 둘러싼 벽(die Wand)에 부딪혀가며 이뤄야하는 것이기에 약간 더 비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네들도 인간이기에, 별 수 없이 똑같다. (그래서 난 호모인 점만을 강조하는 동성애 영화는 매우 싫어한다.) 이것도 자신의 터키계 피를 강조했더라면 별로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터키계라는 것이 하나의 촉발, 그것도 유형적인 사랑의 촉발점이 될 수 있다면? 바로 거기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신선할 것이다.
그런데 뭐, 벽이 무너진들 뭐하나. 시벨이 가족을 지키는 설정으로 끝나는 것은 이해가 되면서도 불만스러운 걸 보니, 내가 아직은 뜨겁게 사는 모양이다..라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다.
2008년 9월 3일 수요일
Fukuoka

라멘을 먹었던 곳이다. 라멘이 좋다. 뭐, 매일 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끔 먹으면 원기-_-가 솟아난다. 특유의 느끼함(?)때문에 못먹는 사람은 못먹을 테고, 그나저나 내 일본어도 여기서는 좀 역부족. 외국어로 볼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음식이다. 누가 뭐래도 음식이다. 그림이나 사진 없이 뭔가 생활밀착형(!) 외국인이 아니면 그게 뭔지 한참 궁리해야 한다. (그래서 사전을 가져갔지만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아무튼 먹니라 음식은 못찍었고. ㅎㅎ 나오면서 가게 사진이나 한 방 찍었다.
서울에도 잘 하는 라멘집이 몇 곳 있을 터인데... 촘 알아보고 다니면서 먹어야겠다. 역시 홍대 쪽으로 가야할랑가.
2008년 9월 1일 월요일
42번째 게시

짤방은 인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실 인도 시장바닥에 나갈 기회는 없다시피 하였다. 맨날 차(버스)로 이동만 하고, 협상하고 그랬으니까 말이다. 딱히 살 것이 없으니 뭐 흥정이고 자시고,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허나 인도는 인도이고... 앞으로 또 갈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도대체가 내가 다 화날 정도인데, 왜이리 다들 B를 이용만 하려드는지 모르겠다. 이건 뭐 오랜 친구고 선후배고 하나도 없다. '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은 B에게 뭐라도 하나 잘 해 주는 것이 없다. 자기 할 일은 안 한 채 개념이 다들 없고, 책임감 강한 B는 이 사람 저 사람 챙겨주고, 또 자기 할 일은 자기 할 일대로 해야 한다. B가 착한 것도 있겠다만,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자 염치의 문제이다. 왜이리 다들 책임감이 없지? 왜이리 다들 염치가 없지?
방금도 N이 B에게 막말을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뻔히 상상이 간다. 왜이리 개념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했듯, 누구나 B 앞에서는 자신을 다 드러내고 마는 것이라서일까? 아. 열나라.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41번째 게시

존이 다시 미국으로 갔다. 우연찮게시리 그의 방학기간과 내 휴가기간이 겹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매우 많이 만났다. 존때문에 알게 된 사람들도 많고 ㅎㅎ 다시 만나게 된 사람도 있다. 그가 월요일 밤이었던가, 나에게 항상 삶의 목적(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purpose가 목적이었던가, 목표였던가. 헷갈리네. 나의 삶에 대한 허무한 태도, 상관 않겠다는 태도를 고치려는 요량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신앙심마저 있으니 더욱 더 날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컨데, 막살고 있다. ㅎㅎㅎ 살아가는대로 살고, (작은) 목표가 생기면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안 되면 안되는가보다라고 편히 생각한다. 되면 되는기고, 안 되면 안 되는기고.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줄 알며, 나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성공이나 출세는 내 마음 속에 아예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살면 좀 오래 살려나? 내게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무슨 기대감을 갖는지 뻔히 알긴 한데...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생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비극일 테지만, 그것이 임무로 주어진다면 그것대로 수행하는 수밖에.
하여간 그렇다. 주어진대로 조용히 살고 싶은 이 마음. 그것이 나의 삶이다.라고 월요일 자정에 생각했었다. 만족한다.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다. 나는, 받아들인다. 조용히.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The Dark Knight

온갖 맨이 다 나와도, 배트맨이 그나마 낫구나. 조커도 그렇고 펭귄도 그렇고, 어쩜 동심을 찌르는 캐릭터(!)들만 악당으로 나올까? (그 이후의 배트맨들은 별로 기억이 안난다.) 그래도 그래도 팀 버튼의 배트맨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바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도 나쁘지는 않다. 무엇보다 태생부터가 어두워보이는 ㅎㅎ 크리스챤 베일이 나와서일 것이다. 아메리칸 사이코와 머시니스트에서 그에게 워낙 놀랐던 탓도 있으렷다. 마이클 키튼에 어울릴 배트맨은 그밖에 없다. 발 킬머나 조지 클루니가 싫진 않지만, 그들은 배트맨 재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순위가 마이클 키튼 -> 크리스챤 베일 -> 나머지 없음. 이렇게 되시겠다. ㅎㅎ
하지만 누구나 이 영화는 조커의 영화로 볼 것이다. 그럴 만하다.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이었다.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계획을 실행시키는 듯한 그의 행위(!)가 무척 자연스러워서이다. 조커만큼은 잭 니콜슨의 원래 조커 역할을 따라잡거나, 뛰어 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왜 죽었을까? 왜 조커 역할을 하면서 괴로워했을까를 생각하면 좀 그렇다. 그 또한 조커의 재목이 못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련가? 그 정도를 못참고 자신을 파괴해버리다니.
2008년 8월 22일 금요일
40번째 게시
아마 올해 초쯤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월 아니면 2월일 것이다. 때는 일요일이었고, 성은이와 그녀의 친구 현진과 같이 있었고, 사진은 성은이가 찍었다. 장소는 명동의 모 차집인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렇게 차를 먹고 나는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Oro로 갔겠지. 성은이 일행은 명동성당(!)으로 고고씽~ 원래는 성은이 블로그에 올라와 있던 사진(친구공개다)에서 내 부분만 잘라냈다.
그런데 표정이 참, 우수에 젖어있다고 하기에는 웃기고, 그렇다 해서 마냥 밝지만도 않은 상태. 계속 이어지고 있는 나의 상태를 잡아내는 것은 역시 남이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남들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왜 사는지 해답도 안 나오는 류의 고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역시 고민스럽게 생기게 되어 있다. 모르는 게 답. 뭔가(!?)를 알아 버리면, 그 이후의 삶은 결코 이전의 삶과 같지 않다.
2008년 8월 17일 일요일
미스트리스 (Une vieille maîtresse)

사실 이 영화는 원전이 되는 소설이 있었다. 영화보다 소설이 더 나았으리라는 나의 글이 사실로 증명되는? 그런 느낌이 든다. 번역은 안 되어 있고, 작가도 좀 생소하긴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위대함(!?)을 더더욱 느낄 수 있다. 정말, 19세기란 참... (좀 이상하긴 한데, 영어권 소설은 왜 생소한 느낌이 들까?) '위험한 관계'가 정말 악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 맞고요...
사실 남자와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야 올바르겠지만, 남자의 부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어떨까? "지옥(L'enfer)"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내가 왜 당신에게 갔다가 그냥 방을 빠져 나왔는지 알아?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서야. 더더욱 비참하게... (그러고보니 이 또한 프랑스 영화) 미스트리스에 나오는 부인이 어떻게 유산을 했는지 S와 가벼운 논쟁을 벌였는데, 그 논쟁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기라. 실제로 유산이 될 정도로 밤에 싸돌아다닌 것도 있지만, 일부러 그것을 방조했다는 것. 아이를 죽여서 남자를 죽였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부인은 어떤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련지. (이 당시는 이혼이 그리 일반적이지 못 하였고, 영화 안에서의 성격상 그녀 또한 그를 못 떠났을 것이다.)
물론 사랑하겠지. 평생. 무엇을?
2008년 8월 12일 화요일
39번째 게시
이거 참... 한국에서 못 살 물건들을 보고도, 한국에서 구입할 경우를 이것 저것 따져보고 있다. 그거야 뭐 합리적인 구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더욱 더 묘한 점은, 그 좋아하는 음반도 보기만 하고 안산다는 점이다. 난 더 이상 일빠가 아닐까? ㅎㅎ (처음부터 일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와 책을 즐겨들 보는 일빠도 일빠는 그냥 냅두면 될 테지만, 일본이 고유가 대책을 잘 해 놓아서 문제가 없다는 식의 고등 일빠들은 참 대책 없다.) 꼭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니 값이 제아무리 싸다 하더라도(아이카와 나나세의 옛 CD는 6000원 정도밖에 안했다!) 좀 보고는 시큰둥하고 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미국 CD도 마찬가지다. 미국보다, 유럽보다 일본에 더 CD가 다양하게 많이 나와 있을 터인데, 이제는 봐도 별 구매 충동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음악도 이제 서서히 내 삶을 떠나가고 있는가!? ㅎㅎㅎ 그저 쉬고 싶다는 것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카드를 안갖고 나가서 그럴 수도 있고 말이다. ㅋ 암튼 써전올스타즈와 사토카즈요시 정도는 결국 사줘야 하잖나 싶기도 하다.
2008년 8월 7일 목요일
38번째 게시
요새는 심신이 "매우" 피곤하여 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에 깼을 때 잠시 기억했다가 이내 사그라들곤 한다. 그래도 다른 이들의 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응로 재밌다. 가령 오늘 들은 C의 꿈얘기도 그러하다. 최근의 촛불시위와 관련된 꿈도 있었고, 무너지는 빌딩에 갇혀 있다가 빌딩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는 꿈(내가 꾼 꿈도 이것과 매우 유사한 것이 하나 있다)도 있었다. 러시아 대사관 사람이 구해줬대나. ㅎㅎ
하지만 죽는 꿈도 있었다. 나도 그러하다. 24번째 게시에서 쓴 꿈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암흑, 무(無)로 돌아간다. 아마 실제로 죽어도 그럴 듯 싶다. 아무 것도 없음으로 돌아갈 뿐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같은 꿈이 몇 가지 있네... 다른 사람들도 혹시 마찬가지 아닐까 몰라.
그나저나 John Kim이 한국에 들어왔다. 역시나 껄렁껄렁 느끼함은 여전하다.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라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변한바가 없다. 잠시나마, 작년 봄의 느낌을 갖는다. 그와 함께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참... ㅎㅎ 이번에는 내가 바빠져서 그러기는 좀 힘들겠지만, 아무튼 좀 놀아주어야것다. 작년 봄. 여러 가지 사건이 생겨났었지. 암.
2008년 8월 3일 일요일
히어로 (HERO)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볼 생각조차 안 한 채, 계속 잠만 잤다. 워낙에 피곤해서였다. 아니 뭐 제대로 잠 못잔 채 강행군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다만 앞서 출발할 때는 잠도 안 잔 채, 영화를 두 편 봤었고, 그 중 하나가 21, 다른 하나는 히어로였다. 그 유명하시다는 키무타쿠를 영상으로 "처음" 본 영화인데... 드라마를 영화화시켰으니 어쩔 수 없겠다. 드라마 팬이 아니면 여간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다. (곧 개봉한다는 엑스파일도 마찬가지일랑가)
그런데 뭐, 일본 영화라서랄까. 역시나 그다지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실제로 법정에서 이런 식의 재판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 전혀 안드니까 말이다. 게다가 좋게 말하면 섬세하다고 해 줄 수 있는 일본식의 마음 씀씀이는, 나쁘게 말하면 뻘짓이다. 이것만 처리하면 끝이라는 생각때문일까? '정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또 작용한다고 생각할까? 그냥 김탁구씨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 생각하면 무리일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저 부산 장면이다. 싫지만, 싫기 때문에 좋은 저 동네는. 저 동네는 갔어도 가지 않았던 부산 동네이다. 청국장과 막걸리. 머리란 무릇, 기억 속에 술만 떠오르게 하지는 않는다. 이건 아무래도 하느님의 실수일 듯.
2008년 7월 27일 일요일
37번째 게시
7시 반 비행기였다. 무슨 배짱으로 네 시 반에 나갔는지 모르겠는데, 비도 오고 하니 좀 일찍 올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 시간 반이 걸린 공항에 들어서자,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이건 또 뭥미. 여차저차해서 탑승장으로 들어간 시각은 7:05. 휴.
생전 처음 맨 앞(물론 이코노미에서)에 앉았다.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매우 좋은 자리다. 이번 만큼은 비행기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거니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영화를 줄창 두 개(21과 히어로)를 봤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되려 눈만 피곤하다. 새벽 1시경, 호텔로 들어와도 마찬가지. (도대체 인도 직항 시간대는 왜이리 안좋은지 모르겠다. 나중에 출발하는 것도 새벽 1:10) 결국 동료들과 맥주 두 병씩(King Fisher!) 마시고, 피자 한 조각씩 먹어주시고 잠들었다. 겨우.
사실 비행기에서 잠을 안 자면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그런 거에 휘둘릴ㅎ 내가 아니고, 그렇게까지 적응할 만한 시차도 여기는 없다. 도대체 뭘까. 왜 어두워지기만 하면...
좀 무서웠다. 내 정신이. 내 마음이. 내 삶의 자세가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생글생글 웃을 것이다. 활짝. 화알짝.
2008년 7월 23일 수요일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그래. 이 장면이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 혼동을 일으켰었다. 아무튼 도시 안의 짐승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영화랄 수 있는데, 걸작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보다 더 무겁고 더 심각한 '미국' 영화는 많다. 모리꼬네의 음악도 짜증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화해를 되풀이하는 맥스와 누들스의 관계도 괴상하다.
다만 좋은 것은 역시나 시대 배경. 금주법이 있을 때이니 세계대전 전 이야기이다. 대공황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뭔가를 금지시키면 그것의 가격이 치솟게 마련. 이윤을 좇는 자본주의에 그러한 법률은 매우 잘 어울린다. 그리고 언제나 아지트를 수놓는 타마라 드 렘피카의 멋진 그림들이 돋보인다. 그러니까 스타일과 미술이 좋다는 의미다. 촬영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데보라가 춤연습하던 장면은 앞으로도 영원히 명장면으로 꼽힐 것이다. 제니퍼 코넬리의 미모도 한 몫하겠지만, 먼지와 발레복이 그렇게 조화를 잘 이루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아야 알 만하다.
그리고 인상깊은 점은 이탈리아인들의 힘. 감독부터 웬만한 배우들은 모조리 다 이탈리아계. 지금도 그러랴 싶긴 한데(요새야 워낙 러시아와 중국갱이 유명하니까), 마피아라는 건 단어가 이탈리아어이면서도 참 미국적이다. 미국 마피아가 아니면 왠지 마피아가 아닌 느낌마저 드는 것이 영화의 힘일까.
2008년 7월 21일 월요일
36번째 게시

아니, 필름포럼이 어떻게 바뀌었는고 하니(정확히 말하면 2층 상영장), MBC 미디어텍의 전용공연장이 되어버렸다.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댄서들이 우루루 내려오더니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같이 찍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댄서들이라 하더라도 과장된 표정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꼴을 보니 나는 심히 즐거워지지가 않는다...이지만 다 끝내고 피곤하게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그들을 보니 용서가 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걸.
여담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항상 내가 어제쯤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나는 두둥실 떠 다니는 유령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죽어도 이와 똑같을 것이다. 두둥실 두둥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도시는 물론, 아무런 변화 없이 일상을 계속해 나아가는 나의 친구들,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런 상상을 하고 나면 꼭 기분이 좋아지는데,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뭐, 존재의 의미까지 파고든다면야 그건 허무한 생각이 되어버릴 테고, 여튼 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즐겁다. 어차피 사랑하고난 뒤, 살에 대한 불안한 열정이 싸그리 사라진 마당에 그런 축축한 가정은 더 이상 축축하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늦어도 11월에는"도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도 그런 느낌을 갖고 썼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르트르가 구라친 것이다. 사랑하면, 삶의 열정이 식어버린다. 상상할수록,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8년 7월 20일 일요일
그녀에게 (Hable con ella)

제목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봐" 정도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영어제목인 "톡투허"가 그대로 나붙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하지만 "그녀에게"라는 제목만으로는 영화의 삘이 전달이 안된다. 하지만 제목같은 것은 사소한 일이고, 이 영화의 감독이 알모도바르인줄은 몰랐었다. 이 영화를 개봉했을 때 난 도대체 뭘 하고 안봤었지? 아... 한국에 없었을 때였던가?
게다가 내용도 전혀 모르고 봤지 말입니다. 두 명의 식물인간과 두 명의 남자, 갈라지는 두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역시나 오아시스와의 비교를 따지는 글도 있는 반면, 알모도바르의 섬세함에 놀라는 리뷰도 있다. 아무래도 영화이니까. 팔려야 하니까 이 영화가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은 오로지 감독의 역량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날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나였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간호사처럼 행동했을까, 아니면 저널리스트처럼 행동했을까?
아니면 둘 다일까? 둘 다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ㅎㅎ 다만 저널리스트 쪽이 더 가깝잖을까 싶은데, 좋은 영화와 책을 보고 눈물 흘릴줄 아는 적당한 속물이라서이다. 적당한 것. 제일 간편하되 제일 숨기고 싶은 바로 그 "적당함"이다.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35번째 게시
시간 낭비.라는 것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시간이란, 낭비하는 것일까? 깔끔하게 단절시키고 나면, 새로워질까? 친구.는 시간낭비일까? 시간과 낭비. 뭔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생각나는 두 단어가 참 에로틱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일까, 정확한 정의일까.
어떻게 보면, 치매도 참 좋은 병이다. 언제나 현재를 살아갈 뿐이니 말이다. H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게 잊혀질줄 아냐. 너 그놈이랑 이어지건, 안이어지건 평생 널 괴롭힐 거라... 그럼 과거가 아니고 현재가 되는 거네? 언제나 나와 같이 살아가는, 공기와 같은. 그림자가 되는 거네. 시간은, 현재에서 그 의미를 상실한다. 낭비해도 언제나 다시금 채워지니까.
그래서 시간을 다시 생각한다. 낭비를, 생각한다. 언제나 시간을 낭비하는 자세. 아무도 못잡는 시간을 감히 낭비한다고 하니 참 에로틱하잖나.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A good woman

그녀는 자신의 딸을 버렸었다. 말을 바꾸기야 쉽다. 그녀는 딸의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 딸을 떠났다. 금세 분위기가 바뀐다. 이러니... '윤리'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다. 선택에 선악은 없다. 조건에 따라 결정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건, 무엇으로 끝나건, 받아들이면 된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다 하면,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면 될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만약에 내가 네 애미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변하는 것이야 많지 않을지라도(?) 역시 안 알려주고 영원히 비밀로 묻혀두는 편이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다. 미학.이라는 단어는 미시마 유키오보다는 역시 오스카 와일드에 더 어울린다라고 하면 사대주의자가 될련가. ㅎ
그보다 꿈틀대는 번식욕과는 상반된다 할 수 있는, 아이를 버리고 싶은 욕구 또한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동시에 두 가지 욕구가 다 있는 것이다. 아이가 독일어를 말할까, 유태어를 말할까 궁금해 하여 아이를 홀로 키운 독일의 한 국왕이 생각난다. (물론 그와는 상당히 다른 욕구다.) 하지만 그 무엇도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이런 생각도 사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2008년 7월 7일 월요일
카페 뤼미에르 (珈琲時光)

역시 HHH는 나랑 안어울려 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역시 바꾸지 않았다. HHH는 남들에게 이용당하기 딱 알맞는, 그저그런 스타일리스트일 따름이다. 물론 이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밤 장면, 우산이 주요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언제나 빛이 빛나는 그런 환경만 고집스레 나온다는 점을 평가할 수는 있겠다만, 그놈의 잘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이 숨겨져 있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숨겨져 있어야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억지로 예술이랍시고 끄집어 내면 원래의 의미가 파괴된다. 아사노 타다노부 정도로 생긴 청년이 전철 소리를 취미로 녹음한다? 그것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삐거덕 삐거덕. ㅎㅎ 영화 속 부모가 요코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장면이 괜히 나오진 않았을 터이다. HHH도 양심은 있었겠지. 그 부모의 태도가 그나마 HHH를 봐 주는 관객들의 태도일 것이다. 근데 뭐 나같으면, 딸이 싱글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대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피를 받았다면 당연히 그럴 만 하니까 아이 낳을 생각을 했겠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장담은 못하겠다. 나 또한 비루한 존재이니까.) 여기서 유일하게 봐 줄 만한 요소는...
아무래도 빛나는 청년, 하지메(아사노 타다노부)일 듯. 그조차 요코에게 어쩔줄 몰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말 없이, 모든 것을 보담을 준비가 된, 가령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소설에 나오는 단 한 마디의 어구, "나를 도와줄 준비가 된 남자(un homme prêt à m'aider)"가 되었다는 인상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 둘 만의 드라마였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조용히 산다는 것. 매우 동경한다. 북악산 기슭이라면 그런 생활이 가능히라라는 것. 매우 확신한다. 누가 날 따라와주랴 하는 것. 그건 전혀 모르겠다.
2008년 7월 6일 일요일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On n'empêche pas un petit cœur d'aimer)

Je te pars. Je ne te reverrai jamais.
나 떠나. 이제 오빠 안 만날 거야.
B가 내게 전화로 했던 말이다. 그 때가 새벽 1시 반쯤 됐던가. 2시였던가, 그랬을 것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망설이거나, 선택하거나, 선택당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딱히 뭐라 말할지 전혀 몰랐고, 말을 굳이 해야할지도 생각이 안났다. 이유를 물어봐도 소용없겠지(Ça sera inutile de te demander pourquoi)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아무리 만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도대체... 아니, 이유를 따지는 것은 그만 두자. 계기는 있었겠지만, 하루 아침에 마음이 바뀌는 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 인간 때문이다. 하루 아침. 로마는 못세워도 만리장성은 쌓을 수 있는 영겁의 시간이다.
B를 원망한다. 소용없음을 알고서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끔씩 원망할 때가 있다. 어째서, 마주보지 않았을까. 어째서.라는 단어를 어째서 계속 생각할까. 망설이지 않고, 선택당하지 않고,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추한지, 얼마나 가당찮은지의 톡톡한 실례이다. 그래. 추하다. 사랑이 원래 추하다. 얼마나 추한지, 모든 매체가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심지어 크리스트교는 그것을 종교화시켜버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추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꽃보다 아름답다? 어림 없다. 얼마나 꽃보다 추하면 그런 노래가 나왔겠나.
추한 나이다. 엔트로피가 끝없이 증가하듯, 사랑이 추해지는 것도. 막을 수는 없다. 추한 것은, 아름답다. 실성한 제인이 주교와 얘기하다...라는 예이츠의 시에 나오듯이.
2008년 7월 4일 금요일
34번째 게시

며칠 전, 두 귀가 모두 "울리게" 들려서 회사 근처의 이빈후과에 갔었다. 고막에 염증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이 역시 "울리게" 들린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랬더니 감기증세가 생기면 귀로 갈 때가 있다고 한다. 아... 내가 그동안 너무 피곤하게 살았던가? 이어폰을 잘못 꽂았던가? 아무튼 병원에서 약을 준다. 식후 30분에 먹으라면서 3일치나 준다.
그런데 일하다가 보니 까먹게 되더군. 안먹었다. (지금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이따 출근하면 버려야지.) 근데 그 다음 날 바로 낫는 거라. 어차피 항생제 쪼가리가 들어 있을 테니 안 먹는 게 낫겠다 싶어 계속 안 먹고 있고, 내 귀는 다시 정상이 되었다. 이 비슷한 얘기를 S가 하더라. 자기가 일하다가 쓰러질랑말랑해서 제일병원을 갔었는데, 멀쩡하다고 나오고, 삼성병원을 갔었더니 심각하다고 나왔다고 한다. 음. 역시 아픈 것이 맞긴 맞았는데, 쉬었더니 나아졌다고 했던가.
지금 그 말을 종합해 보면, 제일병원이 낫다는 얘기잖수? ㅎㅎ 사실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될까? 병세를 모르면, 걍 스트레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면 만사형통. 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익히 잘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증거로 드러나고 보니, 역시나 할 수밖에. 약은 소용이 없다. 모든 약은 프로작이다. 쓸모가 있는 약은 마약 뿐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랑가.
약에 대해 노닥거리다 보니, S는 약장사를 하겟노라 대범하게 선언한다. 자기 후임을 소개하며 떠난 S. "저 이제 약장사 할래요." 물론 농담인 건 아는데, 그런 농담이 통하니 S가 참 좋다. 하지만 과연 그는 나의 헤아릴 길 없는, 뼛속 깊은데까지 박혀버린 공허함을 알련가. 그것까지 바라볼 용기가 있을까. 물론 그런 것까지 알아볼 '타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혼자이니까.
그러니까. 어찌됐건, 어느 방향으로 보건, 약은 쓸모가 없다. 따지고보면, 마약도 결국은 쓸모가 없지. 모든 약은 뽕이다.
2008년 6월 30일 월요일
젊은 날의 초상

일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대학 때의 여자, 첫사랑이었던 여자, 구원자로서의 여자다. 그리고 셋 다 주인공을 떠난다. 아니, 주인공이 떠났다고 봐도 좋겠다. 그러면 남는 것이 무엇이리? 글 좀 쓰게 될 재주라도 남게 될까?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누구나 키보드를 치면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펜만 들면 뭐든 쓰거나 그려낼 수 있다. 그런데 누구는 저런 개고생을 하며 쓰고, 누구는 편안히 계산기를 두들기며 쓴다.
S에게 난 위험한 글을 읽기는 해도, 절대 쓰지는 못하리라 말 했었다. 내가 재주가 없어서? 아니다. 누가 쓰건 쓰는 건 쓰는 거다. 다만 내게 작용하는, 끊임 없이 작용하는 평형추가 글을 방해한다. 자신을 찔러대는 것도 한계는 있을 테고, 그녀를 찔러대는 것도 마찬가지의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설 만한 깜냥이 없지 않을까.라고 뭉뜽그려 생각하고만다.
그렇다면 어째서 글을 쓰면 위험해질까.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 다르게 말해보자면, 어째서 사랑을 하게 되면 위험해질까.를 논해도 좋을 게다. 그야 말쑥한 문명인을 그야말로 야만인으로 바꿔버리는 게 사랑이니까. 그야말로 맞춤법을 아는 괴물을 만들어버리는 것이 글이니까 그러하다.
내가 참 처량하다. 연민을 느낀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 그냥. 그냥 보낼 수는 없어. 내가 갈께. 바로 내가 했던 말.
2008년 6월 25일 수요일
Auf der anderen Seite

인터뷰나 리뷰 기사를 찾아보면 하나 같이 감독이 원래 3부작을 계획했으며, 사랑(Liebe)과 죽음(Tod), 그리고 악마(Teufel) 3부작 중 두 번째인 "죽음"을 그린 영화가 이 "천국의 가장자리"라고 한다. "악마"를 그린 영화는 아직 안 나왔다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가 유독 뒷모습을 자주 내비치는 이유도 그런 데에 있을 것이다. 파뜨리스 르콩트의 영화가 늘상 위에서 촬영한 기법을 쓰는 것을 방불케 하는데, 이 영화는 아예 소제목까지 노골적으로 "죽음"이다.
Lottes Tod
Auf der anderen Seite
세 번째 소제목은 "죽음"이 아니지만, 죽음을 추모하는 광경이 길게 길게 나온다. 위에 올려 놓은 사진도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다. 예테르의 죽음을 나름 추모하는 알리의 뒷모습이다. 그리고 워낙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죽어버리는(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것 때문에 더 인간적이다. 사실 대단한 사건이나 사고로 죽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을 게다. 모두가 다, 급작스럽게, 허무하게, 예기치 못한 일로 죽어버린다. 남는 이들은 그저 조용히 변치 않는 자연이나 바라보는 편이 낫다.
그만큼 항상 우리 옆을 죽음이 떠돌아다녀서가 아닐까나. 사실 사랑과 죽음이 항상 곁에 붙어지낸다던 나의 옛 로그(!)가 생각나는 밤이다. 거울의 앞뒷면으로 본다면, 사랑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항상 붙어 다니잖을까 싶다.
아마 노아의 방주에도 같이 탔겠지. 그래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무런 희망도 감정도 사라진 지금, 그저 차갑게 경계선을 계속 살 뿐이다.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I'M NOT THERE

극중에서 아르튀르 랭보가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사라지기 위한 일곱 가지 규칙이다.
- 비옷을 입은 경찰관을 신뢰하지 말 것.
- 사랑과 열광을 주의할 것. 둘 다 일시적이고 빠르게 사라짐.
- 세상이 걱정스러운지 물어보면 묻는 이의 눈을 깊게 쳐다볼 것. 다신 묻지 않을 것임.
- 진짜 이름을 절대로 말하지 말 것.
- 자기 자신을 보라고 하면, 절대로 보지 말 것.
- 아무 것도 이해 못하는 이에게는 아무 말도 말 것.
-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말 것. 어차피 엉뚱한 해석이 붙어서, 평생 쫓아다니기 때문임.
그런데 뭐, 사라진다 한들 호기심만 더 키우게 마련이다. 밥 딜런도 결코 사라진 적이 없으며, 랭보는 뻔뻔스레 시를 훗날까지 남겼다. 괜히 흔적을 없애려 하는 것도 가오잡는 거에 불과하게 비쳐진다는 얘기다. 쓸모 없다. 그렇다면 랭보가 말하는 저 장면은 밥 딜런을 잘못 해석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밥 딜런은 아무도 아니며, 이 영화는 밥 딜런이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사람들이 밥 딜런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영화다. 어차피 밥 딜런은 창조주처럼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제각기 해석하는 꼴이 참 재밌구나,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관객에게 불편한 영화가 이 영화다. 단순히 음악 영화로만 봤으면 좋을 것을. 하지만 드러내면 드러낸대로의 의미가 있겠지.
아무튼 누구나 밥 딜런이 될 수 있다.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에 대한 모두의 투쟁. 각각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모두가 갖고 있다.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하면, 그것은 축복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