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9일 화요일

피아노치는 여자(Die Klavierspielerin)



누구도 그녀 어깨에 손을 얹어주지 않고, 누구도 그녀의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 Keiner legt eine Hand an sie, keiner nimmt etwas von ihr ab.

여자는 자기의 여성을 찾아주고, 자기를 이끌어주며,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기 바랬다. 확실하다. 계집이 사내에게 몸을 맡긴다면, 저정도 희망은 바라보고 있어야 할 만하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성을 찾아준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분명 그녀는. 여자였다.), 나 또한 병자였다는 사실이다. 피아니스트를 보면 에리카가 이런 말을 한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지만 허영심이 없는 예외적인 남자 ein musikbegabter Ausnahmemensch ohne Eitelkeit

난 내가 이런 사내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 마음 깊이, 뼈속 깊이 썩어빠진 병은 못 본 채로 말이다. 내 병을 내가 이제 알게 되었는데, 난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난 나 자신도 극복을 못하고, 보다 모든 열정을 쏟을줄도 몰랐다. 그저 냉랭히, 무심하게, 내가 안다칠 정도로만 열정을 퍼부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에리카를 강간하지 못할 사내였다. 한 순간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한 적이 없건만, 나의 주인이 나인줄로만 착각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나이지 못했다. 결론은 그거다. 무슨 난리부르스를 치더라도, 내가 나이지 못하면 뭘 어쩔까. 물론 그게 뭐 어때서? 결국 아무 것도 없잖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정말. 병을 고치고 싶다. 사랑하면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거. 이미 이해하고 있다. 행복. 그 따위 몰라도 살 수 있어. 사랑. 사랑없인 못살아. 이대로는 못살아. 그냥 로보트로 살 수 밖에 없어. 아... 또 눈물난다. 무서운 책이다.

2008년 1월 23일 수요일

25번째 게시



이 찻집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용이 형이 안내해서 갔던 찻집이었고, 다시 간다면 왠지 찾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전주 공예박물관 뒷편의 동네에 구비구비 들어가다 보면 나온다. 온통 한지로 도배를 했기 때문에 대단히 특이한 집이다. 한옥이 비쌀 만하지. 고향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또 이런 곳을 알았담. 맹물형 덕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해도 될랑가.

아무튼 난 하동-구례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라고 하기는 좀 남사스럽고, 그래도 꾸역꾸역 사는 거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으려니 하고 있다. 일만이 날 구원해주리라.라고 사강이 말했지만, 구원 안받으면 어때? 어차피 비참해지려고 사는 삶일진대, 그냥 이대로 건강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지 뭐. 우디 할배처럼 수다쟁이가 될 깜냥도 없고, 100% 찌질하게 덤벼들 용기도 없고, 그냥 저냥 살아가는 나.

정말 보통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애잔한 수컷. 그것이 나. 바로 나.

2008년 1월 21일 월요일

화양연화(花樣年華)



내심 바랬다. 둘이 안되기를. 내심 바랬다. 둘이 잘 되기를. 이율배반이다. 이미 어떻게 되건 상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안 되는 것이 쿨하고, 되는 것이 찌질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2046의 무협지는 어정쩡한, '희미해져 간다'를 택하였다. 억지를 쓸까? 그렇다면 희미해질 것도 없을 텐데.

의지가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는 것일까? 신이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을 억지를 썼다가는 벼락을 맞으리라... 라고 H를 기다리면서 수첩에 적었다.

그 여자랑 결혼해버려. 그럼 내가 평생 진짜 사랑해줄께, 라던 외침이 귓가에 생생하다. 정말이지 그녀는, 사랑할 줄 아는, 그래서 사랑을 포기한, 여자.였다.

2008년 1월 16일 수요일

기술



국민은행의 천재 기사강수정의 남편 기사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금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이란 결국, 시간과 공간, 즉 4차원적으로 돈 넣고 빼기를 통해 유동성 수입을 올리는 '사기술', 내지 '연막술'이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근본이 다르듯, 금융 기술을 배운다 함은 사기꾼이 되려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먼저 잘 속이고 한 몫 챙기는지가 핵심이다. 그것을 곱게 포장한 수학식이 금융공학이다.

유동성이라 함은 유통에 필요한 수준만 챙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필요량을 알 수는 없지. 대공황이 유동성 부족때문이라는 궤변도 결국 경제가 돈이 아닌 생산력에 따른다는 단순한 진리를 역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런 금융사기술자들, 우짤긴데?

중요한 것은 결국 기술 뿐이다. 실제로 쓸 수 있는 기술 뿐이다. 18세기 조선의 남인계 실학자들이 농업을, 노론 시파(돈과 권세가 있는) 북학파들이 상업을 중시한 것이 다 이유가 있다. 농지천하지대본이 옳다라기보다는 농업이라는 근본적인 output이 꾸준하게 늘어나야, 그 다음의 상업이 있고, 그 위에 금융이 존재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조선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조선 화폐의 무용성이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은 일본 채권만으로 조선에서 상거래를 할 수 있었다.

공황.과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난다고 볼 때(A-프라임마저 무너지면 삽시간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될 수많은 '금융 전문가'들과 MBA들은 뭘 하고 먹고 살꼬? 뭘 하든 기술을 배워야 했을진저.

2008년 1월 14일 월요일

24번째 게시



꿈.

한 마을에 있었다. 구례와 비슷한 곳이었는데, 갑자기 고딕식 성당(?)이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를 포함, 주민들이 우루루 몰려갔다. 동굴 비슷한 곳이었는데, 과연 들어가 보니 뭔가 성당 비슷한 것이, 정글 속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상당히 특이하다. 휘어진 모습의 건물이었는데, 하나는 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나 있었다. 사람들은 역시나 우루루 몰려갔고, 난 바위 위에 그냥 앉았다.

"여기서 보면 더 좋은데 뭐하러..."

그런데 갑자기 입구쪽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게 오른쪽. 나를 포함, 모두들 왼편으로 피해갔다. 상당히 높이가 있는 쎄멘 벽이었지만 그럭저럭 점프해서 피신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왼편에서도 끝에서 물이 마구 쏟아져 내려온다.

왼편에는 창문이 있었다. 꽤 높았는데, 사람들이 손을 대어 주며 나보고 올라가서 도망치라고 한다. 창문으로 몸을 뺐다. 나타난 것은 하늘 높은, 상공이었다. 라퓨타 섬에서 공중 다이빙이라도 해야 하나? 날개 비슷한 곳을 간신히 잡았는데, 계속 추락한다. 결국 암흑. 죽은 거다.

여기서 잠이 깼는데, 정말 한기가 솟아 올랐다. 스산했다. 추웠다.

2008년 1월 13일 일요일

아름답다



김기덕의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포스터와 스틸 몇 장만이 나와 있는 지금, 2월달까지 기다리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모르겠다. 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는 '한성별곡'의 시전행수. 이천희이다. 대왕세종에서는 장영실로 나온다.

...라는 객관적인(?) 정보 외에, 김기덕 감독 영화는 참 각별하고 절절하다. '비몽'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특성(!)대로라면, 벌써 촬영을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을 때 쯤 나올려나? 그의 "숨"은 정말... 너무 아픈 내 과거와도 연결된다.

2008년 1월 9일 수요일

Joyeux Noël



1월 4일, 씨네큐브로 이 영화를 보러 갈 때였다. 김사무관님과 우연히 1층에서 같이 만나서 걸어나갔다. 금요일 밤인데 뭐하러 가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이런 질문할 때 내가 으레 하는 답변은 '정말로 알고 싶으세요?'이다. 그걸 두 세 번 묻고 나면, 진짜 대화(!)가 시작하거든. ㅎㅎ 하지만 그래도 친분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그런 대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이것 저것 말장난하기가 귀찮아져서, 솔직히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데이트냐고 또 물어보신다. 영화 볼 때는 혼자 많이 보는데요. 원래 그래요.

사실 수다쟁이 블로거들(!)은 대부분 영화를 혼자 보니까 굳이 썰을 풀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이 Joyeux Noël 같은 경우는 내가 즐겨 보는 장르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나는 그날 왜 이 영화를 보러 갔을까? 어째서 나는, 영화를 볼까?

이 역시 답변은 알지만, 뭘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2008년 1월 6일 일요일

Annie Hall



뭔가를 알고 있다면, 뭔가를 느낄 줄 안다면, 이것 저것 떠들어대는, 교양떠는 것들 모두가 천해 보이게 마련이다. 이 단계를 뛰어 넘으면 그냥 laissez-faire가 되는데, 이 때는 이것 저것 떠들어대는, 교양떠는 것들이 존경스러워진다. 근데 단계가 높아지면 좋은 것인가? '좋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러니 저너리 계산기를 두둘겨 보면, 단계를 거치며 생각하는 것이 인생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찌 됐건 '남들처럼', 혹은 '성공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그렇게 사는 편이 마음도 놓이고, 부모도 좋아하며, 물질적으로 안락해지기 쉽다. 자식들도 올바로(?) 클 것이다. 그것이 별 것 아닌 진실이다. 모두들 그것을 위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며, 돈을 번다.

그런데... 그게 안된다. 언제부터 이리 비뚤어졌을까? 언제부터 이리 쓸쓸해졌을까? 언제부터 이리 허무해졌을까? 정말 B의 말대로 내가 그동안 사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그녀'를 정말 사랑했어서일까?

나박이 코멘트에서, 직업에 참 안어울리는 사람이라 말했었다. 안어울리긴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다닐 만큼 영악하기도 하다. 그것이 나이다. 우디 할배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건만, 그 할배는 그걸로 장사도 할 줄 안다. 정말 부럽다.

2008년 1월 2일 수요일

The hottest state



Rabat is where it all went down...

"순간"이었을까? "순간"으로 치부해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역시 제일 뜨거운 순간. 그 순간을 잊을 순 없겠지. 옆으로 치워버릴지엉정. 여행은, 여행은 그 "순간"을 앗아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