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그녀 어깨에 손을 얹어주지 않고, 누구도 그녀의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 Keiner legt eine Hand an sie, keiner nimmt etwas von ihr ab.
여자는 자기의 여성을 찾아주고, 자기를 이끌어주며,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기 바랬다. 확실하다. 계집이 사내에게 몸을 맡긴다면, 저정도 희망은 바라보고 있어야 할 만하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성을 찾아준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분명 그녀는. 여자였다.), 나 또한 병자였다는 사실이다. 피아니스트를 보면 에리카가 이런 말을 한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지만 허영심이 없는 예외적인 남자 ein musikbegabter Ausnahmemensch ohne Eitelkeit
난 내가 이런 사내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 마음 깊이, 뼈속 깊이 썩어빠진 병은 못 본 채로 말이다. 내 병을 내가 이제 알게 되었는데, 난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난 나 자신도 극복을 못하고, 보다 모든 열정을 쏟을줄도 몰랐다. 그저 냉랭히, 무심하게, 내가 안다칠 정도로만 열정을 퍼부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에리카를 강간하지 못할 사내였다. 한 순간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한 적이 없건만, 나의 주인이 나인줄로만 착각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나이지 못했다. 결론은 그거다. 무슨 난리부르스를 치더라도, 내가 나이지 못하면 뭘 어쩔까. 물론 그게 뭐 어때서? 결국 아무 것도 없잖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정말. 병을 고치고 싶다. 사랑하면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거. 이미 이해하고 있다. 행복. 그 따위 몰라도 살 수 있어. 사랑. 사랑없인 못살아. 이대로는 못살아. 그냥 로보트로 살 수 밖에 없어. 아... 또 눈물난다. 무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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