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8일 목요일

Emmas Glück



Les Invasions barbares라는 퀘벡 영화가 하나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면 간단할 수 있다. 한 노인 죽을 때의 이야기이니까. 행복한 엠마와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를 볼 때 생각난 영화가 이것이었다. 삶을 정리해보려는...이거나 하여간, 삶을 한 번 도피해 보려는 사내의 이야기이니까. (그러고보니까 승은누나의 도피.넷이 언젠가부터 접속 불능이다...)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돼지와 오리, 닭을 치는 한 여편네였다.

성을 알 필요도 없이, 둘은 (어쩌면 숙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사내가 여편네에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 자기를 도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 보면서 저리 되리라 예상은 빤하게 하고 있었는데, 막상 쳐다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아직은 기력이 있을 때, 사랑으로 충만해 있을 때, 그녀의 손에 죽는 것.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어차피 사랑과 죽음은 쌍으로 나다니는 존재이니, 그녀 손에 죽임을 당하는 건, 사내로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사내는 고백(?)을 할 때 아프다(krank)고 했었다. 마지막에 여편네는 사내를 찌르면서,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숫자를 세 준다. 사내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면서. 다시 한 번 쓰건데, 정말이지.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2008년 2월 25일 월요일

Juno



신기하기는 신기하다. 막연히 언젠가는 애를 낳겠지. 언젠가는 나도 아버지가 되갓지.라 생각했던 때는 꽤 된 것 같았지만 구체적으로 "아이"라는 존재를 정말로(!) 원하게 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맞다. 나, 정말 아이를 갖고 싶다.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내가 원한다. 로드맵도 있었다. ㅎㅎ 물론 '그 때'로 되돌아가서의 얘기이긴 하다. 나의 아이. 나를 닮을 아이.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 내가 키울 아이.

정말 애를 갖고 싶다. 지금도 여전하다. 내가 악마라면 그 애의 능력을 더 원하겠지만. 내 유전자를 내가 어떻게 다룰지가 더 궁금...하면 이게 더 악마일지도 모르것다. ㅎㅎㅎ 주노는 저리 간단하게 아이를 가져버렸는데 말이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럴지도 모르것다. 그냥 이래저래 결혼은 귀찮아지기만 하고 있고, 어떻게 아이와 '집'만 구할 수 없을까 잠시 고민해 보고나니, 역시 남자는 자라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든다. (뭐냐?)

27번째 게시

저녁, 오래간만에(밥 말리 팔찌를 샀던 그 때 이후 처음이었다) 이태원에 갔다. 모로코 식당이 있다는 정보때문(!)이었다. ㅎㅎ 과연, 정말 있다. 예전만 하더라도, 허잡한 이집트 식당과 파키스탄/인도 식당밖에 없던 그곳에, 드디어 제대로 된(?) 마록 식당이 생긴 건 기뻐해야할지, 아쉬워해야할지 모를 일이지만... 뭐, 일단 반갑다 생각하고 들어갔다.

시킨 음식은 따진과 케밥. 샤와르마는 팔고 있지 않았다. (실은 샤와르마가 제일 먹고 싶었는데.) 같이 간 H는 마록에 다시 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는데, 이거 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ㅎㅎ 조금 망설였었다. 물론 언젠가는 다시 가 보겠지. 지금은 아니에요. 예전에 친구 S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만약 당장 마록으로 다시 간다면 난 정말 미쳐버릴 거야.

대자연의 장엄함.따위는 바라지도 않았었다. 다만 날 자연이 용서해 주기를. 나를 자연이 받아주기만을 바랬었다. 그러나 난 오히려 마록의 자연에게 먹혀버렸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해도 좋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었다. 음식 먹는다고 뭐가 달리질까?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배반한 간첩이 고기를 뜯으며 스미스에게 말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 있으리?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우엘벡 대인의 말을 또 다시 인용하자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나머지를 다 이해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
Si je n'ai pas compris l'amour, à quoi me sert d'avoir compris les autres?

2008년 2월 21일 목요일

sing it back



Moloko이다. 말라코라 읽는 것이 정식일 텐데(러시아어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불리건 말건, 내게는 두 가지로 기억되는(수동형!) 노래다.

  1. VIVA Polska로 알게 된 댄스곡.
  2. 의외로 둘 다(!) 좋아하던 곡.

ㅎㅎ 노래 역시 자제력을 모른다. 끊임 없이 괴롭힐 곡이 될 것이 뻔할 뻔자. 어쩌겠나. 자주 하는 말이 되었는데, 뭐 이렇게 살다 되지것지.

2008년 2월 19일 화요일

26번째 게시



토요일날은 비욕 공연장에 갔었다. 이런 공연장을 찾은 것은 실로 백 만년만의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여기 왜 갔을까? 따져보면 난 비욕의 팬이랄 수는 없으며, 오히려 비욕이 춈 오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평소게 갖고 있다. 게다가 일렉 계열 음악도 요새는 거의 듣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일렉보다는 어쿠스틱이 더 편하거든. 즐겨 듣는 밴드도 옛날 밴드들이 대부분이다. 블루스도 물론.

비욕의 음악에 들썩들썩 거릴 일도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끊은 표도 좌석표였다. 아마 내가 바랬던 것은 비욕의 비쥬얼과 배경음(!)이었던 듯 하다. 그 두 개를 합쳐야 비욕이 비욕답다 할 수 있것지. 게다가 아이슬란드의 민속풍을 나타내는 저 배경 밴드(?) 겸 합창단의 귀여움때문에 더 즐거웠다.

하지만 팬이 아닌 건 아닌 것. 1시간이 좀 넘는 짧은 공연이었고, 하루 종일 운전했던 나는 대단히 피곤했다. 인생같지 않은가. 계속 열심히 살다가 피곤에 빠진 인생. 1시간이 넘는 스펙타클이 있긴 했지만, 그것마저 빈둥빈둥 졸면서 보내버리고, 끝. 쎄라비.

2008년 2월 13일 수요일

빨간풍선(Le Voyage du ballon rouge)



이 영화는, 역시 짱깨 영화는 지루하다.라는 편견을 심화시켜준 공로가 있다. (까이에뒤시네마만 좋아할 영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보이는 잔잔함과 무탈한 생활. 풍선을 좇는 아이와 남편 친구때문에 골치 아픈 어머니. 아무런 사건이 없다는 것. 아무런 드라마가 없다는 것. 재미가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내 심리를 반영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가슴이 아픈 이야기이다. 얼마나 내가 재미 없게 살길래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풍선처럼 하늘을 떠돌면서, 풍선처럼 바람에 이리 저리 휘둘리면서, 풍선처럼 광팬(!)을 거느리면서 살고 싶긴 하지만, 결국 풍선은 풍선일 뿐이다. 결국은 공기가 빠져나가서 쭈글쭈글해질 것을 알고 있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나, 풍선의 실체를 알면서도 동경하는 내가 오버랩된다. 거울을 쳐다본다면야 아무런 표정이 없는데, 이게 참 쓸쓸하다는 것. 그냥 이렇게 살아도 시간은 흐르고, 남대문은 무너지고, 해는 솟는다.

하루, 하루, 아침에 가서 커피 마시고, 일하고, 결제하고, 점심 먹고, 약간은 졸다가, 다시 일하고, 저녁 먹고, 집에 오고.

감사해야 할 삶이다. 하지만 예전의 그 감사하던, 그 소중해하던 기운은 모조리 다 빠져나가버리고, 난 그냥 쭈글쭈글한 풍선이 된 마냥 푸념만 늘어놓고 앉아 있다. 해답없는 인생에 대책없이 나자빠진 상태로.

2008년 2월 11일 월요일

C.R.A.Z.Y.



퀘벡 영화이고, 독립 문제이고 다 관심 없다. 그게 무슨 대수일까? 알면 아는대로 안보이는 부분이 있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아도 이 영화가 보통의 평범한 영화는 아니긴 하다. 그 때문에 꽤 반응이 있었으리라. 무엇보다도 제일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가족을 느끼하지 않게(!) 다뤘기 때문이다.

가족은 정말 누가 안본다면 갖다 버리고픈 존재이다. 나로서도 마찬가지이다. 무한한 은혜(!)를 받았지만, 그것을 갚는 것이 무한한 부담감을 주는, 가족이다. 이놈의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를 모르고, 마냥 한 몸인줄로만 안다. Secretary의 주인공 아빠는 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라고. 딱히 한국이라서 나를 이렇게 옥죄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데, 난 왜이리도 삐져나가고 싶은 것일까.

다 네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라고 편리하게 생각해버린다. 자끄는 아버지와 화해(?)같은 것을 성공하는데, 내게 화해가 가당키나 할까? 조용히 버리고 말 테다...까지 결정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다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일진데. 어차피 늙거나 사고나면 다 죽는, 보잘 것 없는 생명체일 뿐일진데. 왜. 왜. 왜.

정말 싫다.라고 애같은, 10대 청소년같은 독백이나 하고 있다. 어찌 됐건 결국 문제는 나 자신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뭐,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갓지....라고 역시 편리하게 생각해버린다. 그래. 나 또한 이렇게 살다가 죽겠지 뭐.

2008년 2월 9일 토요일

Secretary

변호사: It's your behavior.
리: What about my behavior?
변호사: It's very bad.



여자는 사춘기 시절 때부터 끊임 없이 자해를 해 왔다. 대사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속에 있는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이 아무는 과정을 또 눈으로 확인해야만 안심을 하는, 그런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엄마나 여동생 등)이 보기에는 놀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자살로 발전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요양원으로 보내버리고, 부엌의 칼을 숨겨 놓았다.

하지만 자해를 반복하는 이들은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딱, 그 정도만 하기 때문이다. 자해하는 이들의 자제력은 상당히 높다. 자신의 동맥이 어디 있는지 더 잘 안다. 물론 이것이 마조히즘의 또 다른 형태인가? 하면 할 말은 없다. 어차피 사랑다운 사랑을 한다면, 누구나 SM을 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을 제일 잘 드러낸 영화 중 하나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일 것이다. 어차피 일방적인 사랑밖에 없다. 사랑받기만 한다면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돔(지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 그 또한 SM이다. (정확히는 펨돔이라 해야겠지만.)

사실 리의 성향을 하드코어(!)로 말하자면, 피아니스트의 에리카와 마찬가지이다. 그녀를 강간해 주어야, 달리 말해서, 그녀의 엉덩이를 쳐 주어야 그녀가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매력이 될지, 마력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남자들은 으레 멍청하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할리 만무하다. 그저 그런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끝낸 신대륙 감독이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뭐, 피아니스트만큼 심각한 소설은 아닐 테니 넘어가도 되겠다.

2008년 2월 7일 목요일

맨하탄(Manhattan)

Why is life worth living? It's a very good question. Um... Well, There are certain things I guess that make it worthwhile. uh... Like what... okay... um... For me, uh... ooh... I would say... what, Groucho Marx, to name one thing... uh... um... and Wilie Mays... and um... the 2nd movement of the Jupiter Symphony... and um... Louis Armstrong, recording of Potato Head Blues... um... Swedish movies, naturally... Sentimental Education by Flaubert... uh... Marlon Brando, Frank Sinatra... um... those incredible Apples and Pears by Cezanne... uh... the crabs at Sam Wo's... uh... Tracy's face...




삶은 어째서 살 만할까? 매우 좋은 질문이다. 음... 살 만하게 해 주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 지젝? 에... 움베르토 에코와 미셸 우엘벡. 음... 아멜리 노통브와 허수경. 나의 딴따라, 글쟁이, 환쟁이 친구들. 김기덕 영화들, 옛 영화들... 놀랍기만 한 애플주식회사. 아름다운 여자들. 그래... 그녀의 얼굴...

트레이시는 아이작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좀 가져보라 권유하였다. "You have to have a little faith in people." 믿음을 갖고 싶지 않다. 하느님은 안좋은 것만 만들어냈거든. 물론 그녀를 내 앞에 쑤욱 갖다 대놓고서는, '이래뵈도 내가 이런 애를 하나 만들기는 했지"라고 하면 내가 질 수밖에 없겠지.

사실, 삶이 살 만한 제일 큰 이유는, 삶이 살 수 없는 것이라서.이다. 아직 야만인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오르가즘은, 삶의 고통일 터이다.

2008년 2월 3일 일요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Le Mari de la coiffeuse)



내가 바로 꿈꾸던 삶이 이것이었다. 친구는 커녕 형제와 가족도 필요 없이 근근히 살아가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서 살아가는 쓸쓸한 생활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을 이렇게 완벽하게 재현시킨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점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분명 좋아했을, 영화다.

영화 자체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남자가 뭘 하며 사는지 알게 뭐람. 오로지 중요한 것은 별 것 없는 과거와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사랑 뿐이더라.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바라는 것도 전혀 없으며, 오로지 몸만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마음의 통교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 것 자체가 불필요해야 사랑 아닐까 몰라. 몸은 워낙 정직하니까....라 생각하면 족하다.

인생 간단하다. 거 간단한 문장이다. 실제 영화에서 아버지가 한 대사는 다음과 같다.

인생은 간단해. 뭔가를 얻기 위해 간절하게 바라면 돼.(La vie est simple, il suffit de désirer très fort quelque chose pour l'obtenir.)

과연,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 오고 가는 손님들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앞으로 어떤 노년을 맞이하게 될지 뻔히 알게 되었으니, 그 전에 죽는 편이 깨끗한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다. 소망하지 않으면, 어찌 이룰 수 있으리오. 다만... 아이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그녀 역시 아이들이라면 사랑해줄 수 있었으리라.

사내와 여자가 춤추던 장면은 영원히 못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