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8일 금요일

28번째 게시

드디어 맡았던 기사를 써서 보냈다. 목요일까지라고 했는데, 금요일 날 보냈으니.... 음. 그래도 기한은 지켰다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다. ㅇ_ㅇ 기사가 나오기는 나올랑가. 모르것다. 나오면 나오는대로, 안나오면 안나오는대로. 한국에 있을 때 나오면 좋것는데... 돈도 상관 없다. 그래도 받긴 받아야것지. --; 게다가 요새 하는 일도 많으셔서, 안그래도 부족한 잠에, 매일 매일이 몽롱하기만 하다.

사실 오늘도 중대한 걸 빼먹어서, "이렇게 신뢰성을 잃으면 안되지"라는 말까지 들었다. 아. 또 있지. 점심 때는 왜그리 말을 싸가지 없게 하냐는 질책도 들었다. 대충 뭐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진이 좀 안 좋다. 날이 원래 그런 날이었던가? 심지어는 탔던 택시마저 길이 막히는 통에 돈을 평소 때보다 많이 낸 하루엿지. 그리고 금요일. 다시 몽로옹~ 해지것지...

나 자신을 일부러 혹사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원래 잘 안 마시는 술이지만, 일부러 몇 잔씩 빠르게 들이키고, 어제는 담배도 한 개비 물었었다. 지속적으로 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안한다. 신기하다면 신기하달 수도 잇것는데, 머 피면 피는기고, 안 피면 안 피는거지. 요는 '혹사'다. 일부러 멀리 걷기도 하고, 일부러 일도 자청해서 맡는다. 그러고보니 오전에도 인턴이 할 일을 내가 자청해서 맡아 처리했었지.

혹사에서 쾌락을 느끼나? 그럴련지도. 느끼면 뭐 어떤가. 일만이 나를 구원해준다.를 계속 되뇌이고 있긴 한데, 구원은 개뿔. 일. 혹사. 노동. 인근알 발가벗기는 행위만이 날 숨쉬게 만든다.면 좀 위안이 된다.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Interview



나가면서 피에르와 카티야는 서로 무엇을 공감하는지 이야기 나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이었다. 나도 그렇다. 믿지 못하겠다. 아니, 일부러 애써서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다 흘러보내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감정을 닫아버렸다는 것일까? 그럴 것이다. 친구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은 친구가 아니며, 가족들과 같이 산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날 통제하려드는 인간들(?)일 뿐이다. 이런 상태라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말이 된다. 실제로, 피에르와 카티야는 서로 거짓말로 승부를 가렸다.

뭐, 어느 정도는 진짜가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다. 선수끼리 재미나게 놀았다는 걸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다가오면 다가오는대로, 다가가면 다가가는대로, 그저 시간은 흐르고, 나도 흐르고, 남들도 흘러가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나의 생활이 되어버렸다.

해탈? 아니면 절망의 나락에 선 고독? ㅎㅎㅎ 말을 꾸미는 건 부담스럽다. 어떻게 되든, 혼자 살아간다.가 정답이것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식본능은 꿈틀대지만.

2008년 3월 23일 일요일

Heaven knows, Mr. Allison



앨리슨은 수녀를 좋아했다. 어차피 고아 처지. 해병이 되어서 그나마 사회 소속감은 갖게 됐지만, 하필이면 떠 내려온 이 섬에, 이토록 아리땁고 젊은 수녀가 있을 게 뭐람. 날생선도 못먹는 이 편식쟁이 수녀님을 위해서라면, 음식을 구하러 직접 내려가는 것도 불사할 정도로, 일본군을 죽여야 해도, 자기가 죽을 수 있어도 해내고야마는 그는, 과연 해병이다.

하지만 뭣보다도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로버트 미첨이 보여준다는 게 괴롭다. 존 휴스턴 영화이니 으레 그러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세상을 혼자 살아낸 사내의 매력이란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일단 학교에서 뭔갈 배운 나이니, 나로서는 도저히 쫓아갈래야 쫓아갈 수가 없는, 그런 종류의 매력이다. 공자였던가? 예순이 되면 생각한대로 행동해도, 저절로 예를 지키게 된다는 것.

그냥 마음먹은대로 행동해도, 그저 애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 적당히 찌질대는 것조차 '계산'처럼 느껴질정도로 훌륭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2008년 3월 16일 일요일

밤과 낮



저 그림은 원래 라깡이 갖고 있다가 세상에 나온(오르세 미술관에 등장한) 꾸르베(Gustave Courbet)의 그림이다. 제목은 '세상의 근원(L'origine du monde)'. 정말 잘 지은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다 저 구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근원"이라 할 만하다. ('전쟁의 근원'이라 해서 자지를 그린 화가?인가 그런 작품이 있다곤 하는데 아직 못 보았다. 똑같겠지 뭐.) 하지만 근원이래봤자, 뭘 어쩌겠누? 그냥 쳐다보면 그만인 것을.

그러고보면 저 성남의 캐릭터는 여자와 자는 족족 아이를 낳고야 마는 강인한(?) 남자다. 전 애인이 무려 여섯 번의 낙태를 했노라 말하는 장면부터 그렇다. 사실 모든 여자들이 성남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내가 했다던 임신은 성남을 귀국시키기 위한 선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은영의 말도, 성남을 귀국시키지 않으려는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거짓말이건 아니건 간에, 성남은 팔씨름을 하는 족족 상대방을 이기고, 뭐 하나 딱부러지게 결정을 못내리며, 소심함을 기어이 바깥에 드러내고야 마는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홍상수 영화에서 이렇게 유쾌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또 있었으랴 싶을 정도다.

사실 짜증이 나는 인물이라 말 안 할 수 없건만, 원래 홍감독 영화에 그런 남녀들이 가득하니(남자 뿐만이 아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뭐라 하기도 그렇고, 결국은 세상의 근원이나 한가롭게 쳐다보면서, 성남의 꿈 분석이나 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삼시 세 끼 다 먹고 잘 살아가는 블로거들의 임무다.

하는 족족 애를 만든다... 설사 거짓이라 할지라도 너무 부럽다. ㅎㅎ

2008년 3월 12일 수요일

아름답다



재미나는 논리놀이가 있다. "당신이 아름다워서 당신을 범했다."의 대우 명제는 무엇일까? "당신을 범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아름답지 않다."이다. 논리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문장이다. 실제로도, 과연 그러하다고 말할 만하다. 어차피 마음의 아름다움 따위야 박수 쳐주면 사라진다. 열 명이, 만 명이 박수를 쳐도, 그 때만 반짝하고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에 반해 몸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그 몸이 죽으면 다른 몸으로, 그 '운명'이 피신해 갈 따름이다.

애써 부정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 아닐련지. 어차피 먹어야 살고, 싸야 살고, 때가 되면 죽어야 할, 평범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있지만, 아직까지(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아름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의 근원은 염색체 분열과 우성생식이다. 인간은 호모 아니무스(움직이는 영장류)에 다름 아니다. 사랑따위 뭐가 그리 시끄러운지. 자꾸 자기가 동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하다보니 사랑도 탄생했을 듯 싶다.

극중 은영과 같은 사람은 당연히 없다. 자기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결국은 '살기 위해' 어느 정도 물러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아름다워서" 아무 때나 "당신을 범했다"도 불가능해진다. 돈으로 해결하든, 여러 감언이설을 하든, 어떻게든 범하고야마는 게 사내들의 유전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름답다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똑같다는 것. 그나마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답게, 그 여자를 범하면서 자기도 일부러 죽었다. 변해봐야 딱 그 정도라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이 아름답다는 예기치 않게 대단한 여성주의(?)랄 수도 있겠다.

2008년 3월 9일 일요일

Emmas Glück



죽어버려.와 죽지마.

정말 반대되는 의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농담조로 "그것이 네 인생이야~"라 하면서, 죽음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뭐 이래 살다가 뒈지지 않갓어?"라고 하면서 말이다. 농담조가 아니군. 다 진담이다.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니것지. 그냥 있는 그대로, 날 걸로 말할 뿐이다. (그래서 오해도 참 많이 받는다. 절대 친해질 수 없는 놈이란 평도 많이 받고. -- 사실이긴 하지.)

뭐, 그것이 진실 아니겠나? 어차피 다들 죽을 목숨들인데,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말지어라. 책임? 그게 뭔데? 자연스러움? 그게 뭔데? 날 사랑했으니 죽어버려. 내가 사랑하니 제발 죽지 마. 다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 죽일 놈의 사랑. 왜 그렇게 말했는지 고민해도 소용없는 게, 둘 다 진심 맞아서이다. 게다가 난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통곡하고 있다. (진짜다.)

소용없다. 이 말이 이렇게 날이 섰을 줄이야. 소용이 뭔데?라고 하면 뭐, 뜻은 뻔할 뻔자다. 이대로의 삶이 계속된다면, 살아가는 편이 그나마 더 비참해질 터이다. 그러니 살아야 하것지. 죽지 마. 날 비참하게 놔두면 돼. 찌질한 놈. 평생 찌질하게 살라지 뭐. 엠마가 죽이는 돼지만도 못한 나. 돼지는 고기라도 제공하지. 난...

2008년 3월 1일 토요일

아름답다



사내들이야 어차피 40년 이상 생식이 가능하렷다. 게다가 우성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렷다. '아름다운' 수컷이 아니니, 아름다워지려 하렷다. 그래서 참 못났지만, 가련하기도 하다. 그나마 달랑 남아있는 체면은 지키고 싶을 테고. ㅎㅎ 일단은 들이대고 싶어하고, 계집을 정복하고 싶어한다. 이유는? 아름다워서.

사랑의 정의따위는 관심 없다. 타고난 계집의 얼굴과 몸에 따르는 대가가 이토록 운명적이라면, 이 년은 영원히 사랑을 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건 말이다. 친구도 없고 계속 혼자일 수밖에. 남는 건 주변을 맴돌 사내들밖에 없다. 물론 젊을 때 뿐이라면 나름대로 위안이 될 수 있을 거라.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사연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다.

물론 그래도 한 사내, 괜찮아 보이는(하지만 속은 다를 바 없을) 한 사내와 사랑을 나눌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남자라는 족속이 본능상 어쩔 수 없다. 아름다운 여자는, 그것도 배운 게 많고 아는 게 많다면 사랑을 할 수가 없으리라. 결국 그놈의 정체를 알아차려버릴 테니 말이다. 사내는 나뒹굴 수 밖에 없다. 생명이나 바치면서 여자를 저주해야겠지.

역시 아는 게 병일랑가. 차가운 눈물만 심장 속에 고여 있다.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