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나는 논리놀이가 있다. "당신이 아름다워서 당신을 범했다."의 대우 명제는 무엇일까? "당신을 범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아름답지 않다."이다. 논리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문장이다. 실제로도, 과연 그러하다고 말할 만하다. 어차피 마음의 아름다움 따위야 박수 쳐주면 사라진다. 열 명이, 만 명이 박수를 쳐도, 그 때만 반짝하고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에 반해 몸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그 몸이 죽으면 다른 몸으로, 그 '운명'이 피신해 갈 따름이다.
애써 부정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 아닐련지. 어차피 먹어야 살고, 싸야 살고, 때가 되면 죽어야 할, 평범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있지만, 아직까지(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아름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의 근원은 염색체 분열과 우성생식이다. 인간은 호모 아니무스(움직이는 영장류)에 다름 아니다. 사랑따위 뭐가 그리 시끄러운지. 자꾸 자기가 동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하다보니 사랑도 탄생했을 듯 싶다.
극중 은영과 같은 사람은 당연히 없다. 자기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결국은 '살기 위해' 어느 정도 물러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아름다워서" 아무 때나 "당신을 범했다"도 불가능해진다. 돈으로 해결하든, 여러 감언이설을 하든, 어떻게든 범하고야마는 게 사내들의 유전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름답다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똑같다는 것. 그나마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답게, 그 여자를 범하면서 자기도 일부러 죽었다. 변해봐야 딱 그 정도라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이 아름답다는 예기치 않게 대단한 여성주의(?)랄 수도 있겠다.
2008년 3월 12일 수요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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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대단한 여성주의 맞습니다. 아마도 여성주의를 하기 위해서 김기덕 대신 전재홍이 총대맸을지도요. ^^;; 따라서 두 감독을 억지로 차별화하자면, 김기덕 보다는 전재홍이 '처벌' 쪽에 훨씬 가깝고, 역시 '처벌' 의 문제를 다루려면 여성주의로 가야했을 걸요. 김기덕은 처벌보다는 '득도(빈집)' 혹은 '자폭(활의 할배처럼)' 쪽에 가까우니까요.
박찬욱 싸이보그 임수정의 무차별 총기난사 장면과 전재홍 아름답다 차수연의 권총씬은 참 달라도 너무 다르더군요. 으흐흐...
이야! 그새 달아주시다니. ^ㅁ^
맞아요. 그래서 박찬욱이 참 느끼합니다. 어떻게든 그 영화를 볼 사람이긴 하지만;;
근데 참 의외인게, 전재홍씨 약력만 보면 된장남;에 가까워뵈던데. 어찌 감화가 되었는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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