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반 비행기였다. 무슨 배짱으로 네 시 반에 나갔는지 모르겠는데, 비도 오고 하니 좀 일찍 올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 시간 반이 걸린 공항에 들어서자,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이건 또 뭥미. 여차저차해서 탑승장으로 들어간 시각은 7:05. 휴.
생전 처음 맨 앞(물론 이코노미에서)에 앉았다.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매우 좋은 자리다. 이번 만큼은 비행기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거니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영화를 줄창 두 개(21과 히어로)를 봤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되려 눈만 피곤하다. 새벽 1시경, 호텔로 들어와도 마찬가지. (도대체 인도 직항 시간대는 왜이리 안좋은지 모르겠다. 나중에 출발하는 것도 새벽 1:10) 결국 동료들과 맥주 두 병씩(King Fisher!) 마시고, 피자 한 조각씩 먹어주시고 잠들었다. 겨우.
사실 비행기에서 잠을 안 자면 시차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그런 거에 휘둘릴ㅎ 내가 아니고, 그렇게까지 적응할 만한 시차도 여기는 없다. 도대체 뭘까. 왜 어두워지기만 하면...
좀 무서웠다. 내 정신이. 내 마음이. 내 삶의 자세가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생글생글 웃을 것이다. 활짝. 화알짝.
2008년 7월 27일 일요일
37번째 게시
2008년 7월 23일 수요일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그래. 이 장면이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 혼동을 일으켰었다. 아무튼 도시 안의 짐승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영화랄 수 있는데, 걸작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보다 더 무겁고 더 심각한 '미국' 영화는 많다. 모리꼬네의 음악도 짜증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화해를 되풀이하는 맥스와 누들스의 관계도 괴상하다.
다만 좋은 것은 역시나 시대 배경. 금주법이 있을 때이니 세계대전 전 이야기이다. 대공황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뭔가를 금지시키면 그것의 가격이 치솟게 마련. 이윤을 좇는 자본주의에 그러한 법률은 매우 잘 어울린다. 그리고 언제나 아지트를 수놓는 타마라 드 렘피카의 멋진 그림들이 돋보인다. 그러니까 스타일과 미술이 좋다는 의미다. 촬영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데보라가 춤연습하던 장면은 앞으로도 영원히 명장면으로 꼽힐 것이다. 제니퍼 코넬리의 미모도 한 몫하겠지만, 먼지와 발레복이 그렇게 조화를 잘 이루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아야 알 만하다.
그리고 인상깊은 점은 이탈리아인들의 힘. 감독부터 웬만한 배우들은 모조리 다 이탈리아계. 지금도 그러랴 싶긴 한데(요새야 워낙 러시아와 중국갱이 유명하니까), 마피아라는 건 단어가 이탈리아어이면서도 참 미국적이다. 미국 마피아가 아니면 왠지 마피아가 아닌 느낌마저 드는 것이 영화의 힘일까.
2008년 7월 21일 월요일
36번째 게시

아니, 필름포럼이 어떻게 바뀌었는고 하니(정확히 말하면 2층 상영장), MBC 미디어텍의 전용공연장이 되어버렸다.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댄서들이 우루루 내려오더니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같이 찍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댄서들이라 하더라도 과장된 표정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꼴을 보니 나는 심히 즐거워지지가 않는다...이지만 다 끝내고 피곤하게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그들을 보니 용서가 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걸.
여담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항상 내가 어제쯤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나는 두둥실 떠 다니는 유령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죽어도 이와 똑같을 것이다. 두둥실 두둥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도시는 물론, 아무런 변화 없이 일상을 계속해 나아가는 나의 친구들,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런 상상을 하고 나면 꼭 기분이 좋아지는데,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뭐, 존재의 의미까지 파고든다면야 그건 허무한 생각이 되어버릴 테고, 여튼 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즐겁다. 어차피 사랑하고난 뒤, 살에 대한 불안한 열정이 싸그리 사라진 마당에 그런 축축한 가정은 더 이상 축축하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늦어도 11월에는"도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도 그런 느낌을 갖고 썼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르트르가 구라친 것이다. 사랑하면, 삶의 열정이 식어버린다. 상상할수록,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8년 7월 20일 일요일
그녀에게 (Hable con ella)

제목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봐" 정도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영어제목인 "톡투허"가 그대로 나붙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하지만 "그녀에게"라는 제목만으로는 영화의 삘이 전달이 안된다. 하지만 제목같은 것은 사소한 일이고, 이 영화의 감독이 알모도바르인줄은 몰랐었다. 이 영화를 개봉했을 때 난 도대체 뭘 하고 안봤었지? 아... 한국에 없었을 때였던가?
게다가 내용도 전혀 모르고 봤지 말입니다. 두 명의 식물인간과 두 명의 남자, 갈라지는 두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역시나 오아시스와의 비교를 따지는 글도 있는 반면, 알모도바르의 섬세함에 놀라는 리뷰도 있다. 아무래도 영화이니까. 팔려야 하니까 이 영화가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은 오로지 감독의 역량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날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나였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간호사처럼 행동했을까, 아니면 저널리스트처럼 행동했을까?
아니면 둘 다일까? 둘 다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ㅎㅎ 다만 저널리스트 쪽이 더 가깝잖을까 싶은데, 좋은 영화와 책을 보고 눈물 흘릴줄 아는 적당한 속물이라서이다. 적당한 것. 제일 간편하되 제일 숨기고 싶은 바로 그 "적당함"이다.
2008년 7월 18일 금요일
35번째 게시
시간 낭비.라는 것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시간이란, 낭비하는 것일까? 깔끔하게 단절시키고 나면, 새로워질까? 친구.는 시간낭비일까? 시간과 낭비. 뭔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생각나는 두 단어가 참 에로틱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일까, 정확한 정의일까.
어떻게 보면, 치매도 참 좋은 병이다. 언제나 현재를 살아갈 뿐이니 말이다. H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게 잊혀질줄 아냐. 너 그놈이랑 이어지건, 안이어지건 평생 널 괴롭힐 거라... 그럼 과거가 아니고 현재가 되는 거네? 언제나 나와 같이 살아가는, 공기와 같은. 그림자가 되는 거네. 시간은, 현재에서 그 의미를 상실한다. 낭비해도 언제나 다시금 채워지니까.
그래서 시간을 다시 생각한다. 낭비를, 생각한다. 언제나 시간을 낭비하는 자세. 아무도 못잡는 시간을 감히 낭비한다고 하니 참 에로틱하잖나.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A good woman

그녀는 자신의 딸을 버렸었다. 말을 바꾸기야 쉽다. 그녀는 딸의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 딸을 떠났다. 금세 분위기가 바뀐다. 이러니... '윤리'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다. 선택에 선악은 없다. 조건에 따라 결정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건, 무엇으로 끝나건, 받아들이면 된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다 하면,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면 될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만약에 내가 네 애미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변하는 것이야 많지 않을지라도(?) 역시 안 알려주고 영원히 비밀로 묻혀두는 편이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다. 미학.이라는 단어는 미시마 유키오보다는 역시 오스카 와일드에 더 어울린다라고 하면 사대주의자가 될련가. ㅎ
그보다 꿈틀대는 번식욕과는 상반된다 할 수 있는, 아이를 버리고 싶은 욕구 또한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동시에 두 가지 욕구가 다 있는 것이다. 아이가 독일어를 말할까, 유태어를 말할까 궁금해 하여 아이를 홀로 키운 독일의 한 국왕이 생각난다. (물론 그와는 상당히 다른 욕구다.) 하지만 그 무엇도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이런 생각도 사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2008년 7월 7일 월요일
카페 뤼미에르 (珈琲時光)

역시 HHH는 나랑 안어울려 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역시 바꾸지 않았다. HHH는 남들에게 이용당하기 딱 알맞는, 그저그런 스타일리스트일 따름이다. 물론 이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밤 장면, 우산이 주요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언제나 빛이 빛나는 그런 환경만 고집스레 나온다는 점을 평가할 수는 있겠다만, 그놈의 잘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이 숨겨져 있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숨겨져 있어야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억지로 예술이랍시고 끄집어 내면 원래의 의미가 파괴된다. 아사노 타다노부 정도로 생긴 청년이 전철 소리를 취미로 녹음한다? 그것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삐거덕 삐거덕. ㅎㅎ 영화 속 부모가 요코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장면이 괜히 나오진 않았을 터이다. HHH도 양심은 있었겠지. 그 부모의 태도가 그나마 HHH를 봐 주는 관객들의 태도일 것이다. 근데 뭐 나같으면, 딸이 싱글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대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피를 받았다면 당연히 그럴 만 하니까 아이 낳을 생각을 했겠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장담은 못하겠다. 나 또한 비루한 존재이니까.) 여기서 유일하게 봐 줄 만한 요소는...
아무래도 빛나는 청년, 하지메(아사노 타다노부)일 듯. 그조차 요코에게 어쩔줄 몰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말 없이, 모든 것을 보담을 준비가 된, 가령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소설에 나오는 단 한 마디의 어구, "나를 도와줄 준비가 된 남자(un homme prêt à m'aider)"가 되었다는 인상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 둘 만의 드라마였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조용히 산다는 것. 매우 동경한다. 북악산 기슭이라면 그런 생활이 가능히라라는 것. 매우 확신한다. 누가 날 따라와주랴 하는 것. 그건 전혀 모르겠다.
2008년 7월 6일 일요일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On n'empêche pas un petit cœur d'aimer)

Je te pars. Je ne te reverrai jamais.
나 떠나. 이제 오빠 안 만날 거야.
B가 내게 전화로 했던 말이다. 그 때가 새벽 1시 반쯤 됐던가. 2시였던가, 그랬을 것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망설이거나, 선택하거나, 선택당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딱히 뭐라 말할지 전혀 몰랐고, 말을 굳이 해야할지도 생각이 안났다. 이유를 물어봐도 소용없겠지(Ça sera inutile de te demander pourquoi)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아무리 만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도대체... 아니, 이유를 따지는 것은 그만 두자. 계기는 있었겠지만, 하루 아침에 마음이 바뀌는 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 인간 때문이다. 하루 아침. 로마는 못세워도 만리장성은 쌓을 수 있는 영겁의 시간이다.
B를 원망한다. 소용없음을 알고서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끔씩 원망할 때가 있다. 어째서, 마주보지 않았을까. 어째서.라는 단어를 어째서 계속 생각할까. 망설이지 않고, 선택당하지 않고,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추한지, 얼마나 가당찮은지의 톡톡한 실례이다. 그래. 추하다. 사랑이 원래 추하다. 얼마나 추한지, 모든 매체가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심지어 크리스트교는 그것을 종교화시켜버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추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꽃보다 아름답다? 어림 없다. 얼마나 꽃보다 추하면 그런 노래가 나왔겠나.
추한 나이다. 엔트로피가 끝없이 증가하듯, 사랑이 추해지는 것도. 막을 수는 없다. 추한 것은, 아름답다. 실성한 제인이 주교와 얘기하다...라는 예이츠의 시에 나오듯이.
2008년 7월 4일 금요일
34번째 게시

며칠 전, 두 귀가 모두 "울리게" 들려서 회사 근처의 이빈후과에 갔었다. 고막에 염증이 생겼다는 의사의 말이 역시 "울리게" 들린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랬더니 감기증세가 생기면 귀로 갈 때가 있다고 한다. 아... 내가 그동안 너무 피곤하게 살았던가? 이어폰을 잘못 꽂았던가? 아무튼 병원에서 약을 준다. 식후 30분에 먹으라면서 3일치나 준다.
그런데 일하다가 보니 까먹게 되더군. 안먹었다. (지금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이따 출근하면 버려야지.) 근데 그 다음 날 바로 낫는 거라. 어차피 항생제 쪼가리가 들어 있을 테니 안 먹는 게 낫겠다 싶어 계속 안 먹고 있고, 내 귀는 다시 정상이 되었다. 이 비슷한 얘기를 S가 하더라. 자기가 일하다가 쓰러질랑말랑해서 제일병원을 갔었는데, 멀쩡하다고 나오고, 삼성병원을 갔었더니 심각하다고 나왔다고 한다. 음. 역시 아픈 것이 맞긴 맞았는데, 쉬었더니 나아졌다고 했던가.
지금 그 말을 종합해 보면, 제일병원이 낫다는 얘기잖수? ㅎㅎ 사실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될까? 병세를 모르면, 걍 스트레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면 만사형통. 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익히 잘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증거로 드러나고 보니, 역시나 할 수밖에. 약은 소용이 없다. 모든 약은 프로작이다. 쓸모가 있는 약은 마약 뿐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랑가.
약에 대해 노닥거리다 보니, S는 약장사를 하겟노라 대범하게 선언한다. 자기 후임을 소개하며 떠난 S. "저 이제 약장사 할래요." 물론 농담인 건 아는데, 그런 농담이 통하니 S가 참 좋다. 하지만 과연 그는 나의 헤아릴 길 없는, 뼛속 깊은데까지 박혀버린 공허함을 알련가. 그것까지 바라볼 용기가 있을까. 물론 그런 것까지 알아볼 '타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혼자이니까.
그러니까. 어찌됐건, 어느 방향으로 보건, 약은 쓸모가 없다. 따지고보면, 마약도 결국은 쓸모가 없지. 모든 약은 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