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7일 월요일

카페 뤼미에르 (珈琲時光)



역시 HHH는 나랑 안어울려 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역시 바꾸지 않았다. HHH는 남들에게 이용당하기 딱 알맞는, 그저그런 스타일리스트일 따름이다. 물론 이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밤 장면, 우산이 주요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언제나 빛이 빛나는 그런 환경만 고집스레 나온다는 점을 평가할 수는 있겠다만, 그놈의 잘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이 숨겨져 있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숨겨져 있어야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억지로 예술이랍시고 끄집어 내면 원래의 의미가 파괴된다. 아사노 타다노부 정도로 생긴 청년이 전철 소리를 취미로 녹음한다? 그것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삐거덕 삐거덕. ㅎㅎ 영화 속 부모가 요코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장면이 괜히 나오진 않았을 터이다. HHH도 양심은 있었겠지. 그 부모의 태도가 그나마 HHH를 봐 주는 관객들의 태도일 것이다. 근데 뭐 나같으면, 딸이 싱글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대로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피를 받았다면 당연히 그럴 만 하니까 아이 낳을 생각을 했겠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장담은 못하겠다. 나 또한 비루한 존재이니까.) 여기서 유일하게 봐 줄 만한 요소는...

아무래도 빛나는 청년, 하지메(아사노 타다노부)일 듯. 그조차 요코에게 어쩔줄 몰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말 없이, 모든 것을 보담을 준비가 된, 가령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소설에 나오는 단 한 마디의 어구, "나를 도와줄 준비가 된 남자(un homme prêt à m'aider)"가 되었다는 인상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 둘 만의 드라마였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조용히 산다는 것. 매우 동경한다. 북악산 기슭이라면 그런 생활이 가능히라라는 것. 매우 확신한다. 누가 날 따라와주랴 하는 것. 그건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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