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자신의 딸을 버렸었다. 말을 바꾸기야 쉽다. 그녀는 딸의 수호천사가 되기 위해 딸을 떠났다. 금세 분위기가 바뀐다. 이러니... '윤리'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다. 선택에 선악은 없다. 조건에 따라 결정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건, 무엇으로 끝나건, 받아들이면 된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다 하면,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면 될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만약에 내가 네 애미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변하는 것이야 많지 않을지라도(?) 역시 안 알려주고 영원히 비밀로 묻혀두는 편이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다. 미학.이라는 단어는 미시마 유키오보다는 역시 오스카 와일드에 더 어울린다라고 하면 사대주의자가 될련가. ㅎ
그보다 꿈틀대는 번식욕과는 상반된다 할 수 있는, 아이를 버리고 싶은 욕구 또한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동시에 두 가지 욕구가 다 있는 것이다. 아이가 독일어를 말할까, 유태어를 말할까 궁금해 하여 아이를 홀로 키운 독일의 한 국왕이 생각난다. (물론 그와는 상당히 다른 욕구다.) 하지만 그 무엇도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이런 생각도 사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A good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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