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 직이라는 것이 원래 제조업에 기생하는 산업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1차산업이 토대가 되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계층구조가 이른바 '경제'라는 것인데,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보통은 서비스직을 선호하게 된다. 마치 서비스직이 먹이사슬의 제일 끝에 있는 양 말이다. 물론 급여는 서비스직이 제일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았다면 자기가 종사하는 서비스직과, 실제로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서비스직이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 아니, 그 깨닫지 못함은 숙명일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돌아가니 말이다.
참 상징적인 것이, 몸을 팔아 대학교 학비, 새장여관의 생활비를 번다는 설정이다. 정말 그것 갖고 생활비가 될까라는 의문은 차지하고서라도, 서비스 산업 내의 계층 분화가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들어냈다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밑에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 위에도 누군가가 있다. 우리 밑이 고생한 만큼 우리가 편하고, 우리가 고생한 만큼, 윗분들이 편하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올라간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서비스 산업 따위 없어도 되는 것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즉, 서비스가 망하면 제조업으로, 제조업도 안 되면 결국 1차산업이다. 즉, 올라가는 것은 없다. 내려가는 것만이 있다. 그래서 이지은의 여대생 흉내는 흉내로 그칠 수밖에 없지만 이혜영의 이지은 도와주기는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력의 법칙만큼이나 당연하다. 올라갈 수는 없다. 내려가기만 가능하다.
그래서 둘이 같이 잘 지내게 되는 장면은 판타지인 동시에 실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여대생이 밑으로 내려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판타지임도 자명하다. 진실이기는 해도, 진실이 과연 의미가 있던가?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
2008년 9월 28일 일요일
파란대문
2008년 9월 18일 목요일
45번째 게시

명동의 '커피스토리'이다. 파란대문(그것도 무삭제판!)을 보고 들어간 다방에서 D군이 찍어 주었다. 저 때가 언제였더라. 저번 주 월요일인가 그럴 텐데, 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참 의욕이 안 생기고, 일은 많아지기만 한다. 맥주만 마셔댄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다음 주에 또 다시 협상 시작. 이번에는 여기 저기서 준비에 구멍이 뚫리는 느낌을 과장님이 받았나보다. 흠. 피곤해질 일이 많을 듯 싶다. 뭐 어떻게든 하긴 하겠지...요. 이번 주도 겁나게 바빠서 집에 오면 바로 곯아 떨어지고 있고, 혼나는 일도 많고. ㅎㅎㅎ 아. 좀 평안하게 살 수 없을까. 아무튼 괴롭다. 이유는 말하기 싫다. 일 때문만은 아니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44번째 게시

짤방은 Serge Leblon의 Goldfrapp 사진이다.
명절은 언제나 참 심심하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나마 영화도 보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시시하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 이 아니라 ㅎㅎ 그냥 다 세상사가 시시해져서.일 것이다. 출근해서 일 좀 했다가, 경복궁 가서 사진 몇 컷 찍고(프락티카는 여전히 어렵다), 바로 오로로 직행하였다. "어떤 미소"를 읽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쎄더라. "늦어도 11월에는"도 별 생각 없이 펼쳐들었다가 꼬박 그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눈이 아플 정도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로, 그 자리에서 다 앉아 읽어 해치웠다. 당연히, 책에는 줄과 내가 멋대로 느낀 문장(한국어와 불어)을 가득 적어 놓고 말이다. 위험한 책인가? 뭐, 심리를 있는 그대로, 아주 건조하게 써내려간다는 것은, 읽는 이의 편의와는 다르게, 대단히 쓰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더 가슴에 남는 책이 되는 모양이다.
전 같으면, 움베르토 에코의 새 책이 나와서 흥분하고 바로 사서 읽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시시해졌다. 나는, 변했다.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43번째 게시

짤방은 Henry Roy의 사진, Ibiza (2005)
금요일 저녁, H, H와 같이 포도주를 마셨다. (둘 다 H가 되었는데, 하나는 한씨, 하나는 황씨 ㅎㅎ) 미로스페이스 2층에서 마셨는데 뭐 대화 주제야 뻔하다. 뭔가를 알아버리면, 결코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같지 않다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에다가, 사랑의 비인간성, 배타성, 몰염치성(!)을 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둘 다 IT 업계 사람이므로 그 쪽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H(한)는 무엇보다 상당한 경력의 어두운 여인이라서인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H(활)은 '논리'를 따지는 남자답게 페이스가 말렸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ㅎㅎ
내가 하는 말중에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우엘벡의 말(어느 섬의 가능성에 나온다)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그 때 내가 했던 말은, 사랑한다면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였다. 일방적인 따라가기, 혹은 일방적인 리드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연인이 서로 벗고 눕는 것만이 벗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것. 속을 속속들이 벗으려면 무조건 명령내리거나, 무조건 복종밖에는 없다. (그래서 조제와 호랑이들의 테마가 바로 SM이었다고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즉, 아무리 세련된 문명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상황은 야만인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런 야만성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게다...라는 것인데, 뭐 나라고 얼마나 잘 알리오. 관계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나치게 자신감 있는, 걸걸한 나의 모습과 지나치게 벌벌떠는, 야들야들한 나의 모습이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난 인정하기 힘들다.
2008년 9월 8일 월요일
미치고 싶을 때(Gegen die Wand)

어렸을 때야, 처음부터 서서히, 서로를 알고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정석대로의(?) 사랑만 진짜가 아닐까 했었다. 그러다가, 순간적인(!) 사랑만이 진짜라는 점에 경도가 됐었고,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끝이 없을 주제이긴 하겠지만, 어차피 각자 나름대로, 자기 것이야말로 지상 최대의 특이한 경험이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실, 사회의 소수자라 해도 차이는 없다. 물론 자신을 둘러싼 벽(die Wand)에 부딪혀가며 이뤄야하는 것이기에 약간 더 비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네들도 인간이기에, 별 수 없이 똑같다. (그래서 난 호모인 점만을 강조하는 동성애 영화는 매우 싫어한다.) 이것도 자신의 터키계 피를 강조했더라면 별로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터키계라는 것이 하나의 촉발, 그것도 유형적인 사랑의 촉발점이 될 수 있다면? 바로 거기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신선할 것이다.
그런데 뭐, 벽이 무너진들 뭐하나. 시벨이 가족을 지키는 설정으로 끝나는 것은 이해가 되면서도 불만스러운 걸 보니, 내가 아직은 뜨겁게 사는 모양이다..라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다.
2008년 9월 3일 수요일
Fukuoka

라멘을 먹었던 곳이다. 라멘이 좋다. 뭐, 매일 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끔 먹으면 원기-_-가 솟아난다. 특유의 느끼함(?)때문에 못먹는 사람은 못먹을 테고, 그나저나 내 일본어도 여기서는 좀 역부족. 외국어로 볼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음식이다. 누가 뭐래도 음식이다. 그림이나 사진 없이 뭔가 생활밀착형(!) 외국인이 아니면 그게 뭔지 한참 궁리해야 한다. (그래서 사전을 가져갔지만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아무튼 먹니라 음식은 못찍었고. ㅎㅎ 나오면서 가게 사진이나 한 방 찍었다.
서울에도 잘 하는 라멘집이 몇 곳 있을 터인데... 촘 알아보고 다니면서 먹어야겠다. 역시 홍대 쪽으로 가야할랑가.
2008년 9월 1일 월요일
42번째 게시

짤방은 인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실 인도 시장바닥에 나갈 기회는 없다시피 하였다. 맨날 차(버스)로 이동만 하고, 협상하고 그랬으니까 말이다. 딱히 살 것이 없으니 뭐 흥정이고 자시고,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허나 인도는 인도이고... 앞으로 또 갈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잘 모르겠다. 하여간.
도대체가 내가 다 화날 정도인데, 왜이리 다들 B를 이용만 하려드는지 모르겠다. 이건 뭐 오랜 친구고 선후배고 하나도 없다. '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은 B에게 뭐라도 하나 잘 해 주는 것이 없다. 자기 할 일은 안 한 채 개념이 다들 없고, 책임감 강한 B는 이 사람 저 사람 챙겨주고, 또 자기 할 일은 자기 할 일대로 해야 한다. B가 착한 것도 있겠다만,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자 염치의 문제이다. 왜이리 다들 책임감이 없지? 왜이리 다들 염치가 없지?
방금도 N이 B에게 막말을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뻔히 상상이 간다. 왜이리 개념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했듯, 누구나 B 앞에서는 자신을 다 드러내고 마는 것이라서일까? 아. 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