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8일 일요일

파란대문



서비스 직이라는 것이 원래 제조업에 기생하는 산업이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1차산업이 토대가 되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계층구조가 이른바 '경제'라는 것인데,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보통은 서비스직을 선호하게 된다. 마치 서비스직이 먹이사슬의 제일 끝에 있는 양 말이다. 물론 급여는 서비스직이 제일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았다면 자기가 종사하는 서비스직과, 실제로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서비스직이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 아니, 그 깨닫지 못함은 숙명일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돌아가니 말이다.

참 상징적인 것이, 몸을 팔아 대학교 학비, 새장여관의 생활비를 번다는 설정이다. 정말 그것 갖고 생활비가 될까라는 의문은 차지하고서라도, 서비스 산업 내의 계층 분화가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들어냈다함을 은연중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밑에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 위에도 누군가가 있다. 우리 밑이 고생한 만큼 우리가 편하고, 우리가 고생한 만큼, 윗분들이 편하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올라간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서비스 산업 따위 없어도 되는 것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즉, 서비스가 망하면 제조업으로, 제조업도 안 되면 결국 1차산업이다. 즉, 올라가는 것은 없다. 내려가는 것만이 있다. 그래서 이지은의 여대생 흉내는 흉내로 그칠 수밖에 없지만 이혜영의 이지은 도와주기는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력의 법칙만큼이나 당연하다. 올라갈 수는 없다. 내려가기만 가능하다.

그래서 둘이 같이 잘 지내게 되는 장면은 판타지인 동시에 실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여대생이 밑으로 내려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판타지임도 자명하다. 진실이기는 해도, 진실이 과연 의미가 있던가?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댓글 3개:

maria, Sa :

d군도 블로그에, 이 영화랑 '영화는 영화다' 를 비교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사람이지만, 그렇게 가까운 두사람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김기덕 감독 특유의 이분법으로 썼더군요.

이 같은 자기파괴적 이분법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기덕 감독은 현재까지 열다섯편의 영화를 만드셨삼. 뭐 알콩달콩한 글도 아닌데, 읽고나니 되게 울적.

Minbok :

그렇죠 뭐. 알고 나면, 보고 나면 더 이상 같아질 수 없는 세상. 김감독님 몰랏으면 걍 행복하게 살앗을 텐데요 ㅎㅎ

익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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