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7일 수요일

나에게 쓰는 편지



원래는 B에게 써준 것인데, 생각해 보니 이건 나에게 쓰는 글인 것이라. 여기에 적어 본다.



그렇게 긴 시간 다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출발을 맞이한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본다. 확실하지만 잡혀지지 않는 목표를 두고 언제나 허우적대던 나에게 편지를 써 본다. 매번 너를 죽이고 나만 쳐다보는 나에게 편지를 써 본다.

학교가 가르쳐준 것은 많다. 알려준 인연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학교는 나로부터 시간과 수고를 빼앗아갔다. 언제 돌려주겠다는 기약 없이 말이다. 그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아침을 헤매고, 수많은 새벽을 보내버렸다.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많이 울기도 하였다. 또 한 번의 성장 고통을 겪는 나에게, 학교에서 보낸 기나긴 세월은 나에게 아프지 않은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위안이 되는 것은 목표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무디게 보내온 끝에, 그것마저 신기루가 되었다. 무엇인지 말할 수 있되,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앞날은 모르는 것이지, 라고 위안해도, 위안이 될까? 계속 너를 죽이고 내가 살면 될까, 아니면 나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을까?

언젠가 이 편지를 다시 읽는다면, 내가 왜 이런 글을 써야 했는지 그대는 알까?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ハッピ- フライト(해피 플라이트)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중앙극장에는 심슨 인형을 뽑는 기계가 1층에 1대, 2층에 1대가 있는데, 이 영화를 기다리면서 인형을 하나 뽑아냈었다! 그리고는 E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이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하겠다. 비싼 선물이 아닌, 마음이 집중되어 생겨난 선물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도 그 때만의 의미였을까? 심슨 인형이 더 이상 인형이 아니게 된 것과, 갑자기 인형으로 다시 자리찾기를 한 것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바라보는대로 보이고, 느끼는대로 느끼니 그러하다. 순간 순간이 부질없어진다는 말이다. 어째서 '열정'이라는 것을 지닐까?

해피플라이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해피"하다. 순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은 "해피"해진다. 얼마나 실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 영화에서라도 행복함을 찾을까? 얼마나 남의 체온이 그리우면, 서로 사랑하게 될까? 행복이라는 단어를 늘상 생각해야 할만큼, 우리는 얼마나 불행할까. 이 모든 것을 알고서도, 순간의 마음 움직임에 따라 상대방을 죽여버리는 사랑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직성이 풀릴까.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불꽃 문화생활 4종셋트



등산->20세기 거장 사진전->뼈다귀 해장국->까페라떼 (까페 Après-midi).

와우. 충분한 문화생활이다. ㅎㅎ 다행히 우면산 등산을 해가지고,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사진전에 갈 수 있었다. 사진.... 다시금 수동 카메라를 지니고 다녀 볼까나? 자주 봐야겠다. 그리고,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걸.

2009년 9월 6일 일요일

Der Untergang



몰락에서 트라우들 융에가 했던 말이다. 원문을 알게 되어서 적는다.

„Und in dem Moment hab ich eigentlich gespürt, daß das keine Entschuldigung ist, daß man jung ist, sondern daß man auch hätte vielleicht Dinge erfahren können“

"그리고 그 때 전 깨달았어요. 용서가 안되어요. 젊다는 것은. 하지만 젊기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있겠죠."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박쥐



"제 눈에는 불쌍한 노총각으로만 보여요."

그 말이 맞긴 맞다. 불쌍한 노총각들이 신부들이지요. 그러나 신부들이 앞으로 결혼을 허락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가톨릭 교회 근간이 흔들릴 테니까. 게다가 태주에게는 신앙도 없다. 죽으면 다 끝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는 상현의 신발을 신었다. 아무 것도 믿지 않던 그녀가 믿은 건 그 신발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사실상, 인간 한 명의 개체에서 나온다고 설명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상현도, 태주도, 심지어 행복한복집 가족들 모두가 마음에 다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러니 인간 자체가 "불쌍한 노총각"일 따름이다. 첫 대사가 "당근이죠."라고 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차피 종교가 추구하는 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무신론(?)을 강조하는 것도 지나쳐 보인다. 그저 사랑 이야기로 봐주면 안될까.

2009년 5월 4일 월요일

똥파리



왜 제목이 똥파리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귀찮게 달라붙는 똥파리라서 그런가? 아, 그렇다면 똥파리가 가족이겠군. 뭐, 영화 관련 잡지는 물론 기사도 안보게 된지 꽤 오래라서 다른 사람의 해석은 관심 없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쎈 영화이고, 무척 슬프다.

뭐, 욕 많이 나오면 쎈 영화랄 수 있겠고 ㅎㅎ, 슬픈 이유는 이게 비단 용역깡패 얘기가 아닌 거 같아서 그렇다. 가족의 문제야 크건 작건 누구나 갖고 있을 테고, 결국은 자기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줘서다. 조카 꼬마애가 대화가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애는 일방적인 애정 앞에 노출되었을 뿐이다. 그게 대화인가? 양육이자 보호이지.

도대체 대화, 대화란 게 무엇이기에 사람을 그리 비참하게 만들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우엘벡의 말이 정말 맞단 말인가? 그렇다면야 기꺼이 타인과의 대화를 그저 '데이터의 쌍방향 이동'이라 정의내려도 좋다. 기꺼이 허물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생에 한 둘이나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역시 결론은 사랑. 타인을 끌어들이자면 그 방법은 오로지 사랑 뿐이다.

2009년 5월 1일 금요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제목이 비키, 크리스티나, 마리아-엘레나였다면 별로 가오가 안섰을까 생각하면 흥겹다. 걍 바르셀로나로 처리하여서 마리아-엘레나와 후안 안토니오를 쌍으로 없애버린 센스에 감탄한다. 그러나 한국어 제목도 좋다. 어차피 내 남자가 되었다면, 내 남자의 물건(!?)도 나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들 이 한국어 제목에 대해 언짢게 생각하던데, 오히려 모든 관계의 축이 되는 "내 남자"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좋지 않을까? 그만큼 제일 현실적인(!) 캐릭터인 비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페넬로페 크루스의 영화다. "아내"도 나와 주어야 한다.

왠지 모르게 페넬로페 크루스도 세월이 갈수록 제값 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중반 이후, 나오자마자 화면과 모든 주목을 그녀가 빼앗아 가버린다.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에 먹혀버린 것이다. 우디 할배가 그것을 노리고 시나리오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이 영화가 얘기하고 있는 건, 남편과 아내의 쌩살 사랑 이야기.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우리들, 관객이다. 당연히, 내 남자의 아내도 좋다.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64번째 게시



짤방은 "Waking Life"의 한 장면, 실제로 에단 호크와 쥘리 델피가 나와서 찍었다.

짤방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텐데, 요즘 생활이 매우 편안해졌다. 일이야 뭐 늘상 있는 것이 있는 것이고, 특별히 많아지거나 적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다보니, "웨이킹 라이프"같은 영화를 봐도 딱히 뭐라 할 감상이 안생겨나는 모양이다. 뭐, 어차피 과거와 미래는 현재보다 뒷전이다. 지금 편안하면, 편안한 거이지. 지금의 행복, 만끽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생각도 안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생각 하는 것 자체가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 아닐까나. 사소한 것 하나가지고 얼마나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이렇듯 여리고 여린 인간. 사랑 하나 할 줄 알기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다. 김추기경도 그렇고, 웨이킹 라이프도, 숨기고는 있지만 결국 주제는 "서로 사랑하세요"~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여름의 조각들 (L’Heure d’été)



정말 누가 안보면 어디에든 갖다 버리고픈 가족이지만, 딱히 울분에 휩싸인 환경을 갖고 자라나지는 않았다. 나름, 올곧고 바르게 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을 뿐, 이라 하면 되겠다. 관심과 사랑이 무관심과 증오보다 더 악랄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런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따뜻하게 한 가족을 관조할 뿐이다. 어떻게든, 가족은 가족이니까.

그래서 참 뭐라 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피가 물보다 역시 진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게 부드럽게, 이렇게 별 문제 없이, 이렇게 따뜻하게 갈등을 돋보이게 만든 감독은 참 유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실적으로 저런 문제가 닥치더라도, 결론은 이 영화와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뿔뿔이 갈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굳이 세계화를 지칭하지 않아도 그러하다. 자식은 결국 부모와 떨어지라고 낳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따뜻한 동시에, 스산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손자/손녀 뻘 세대의 파티장면인데, 그것이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아서,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나타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여름은 가고, 또 다른 여름이 올 테지만, 그 해 여름은 지난 여름과는 다르겠지.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라질까.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Gran Torino



정말 최고의 "감상문"은 이것이다. 영어문장을 읽고도 내가 눈물을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으니까. 내가 만약 미국인이었다면, 당연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고집스런 아저씨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건데, 이스트우드가 딱 그 모델이다. 조용히, 고집스레, 완강하게 자기 할 일을 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도움따위는 상상도 못하는 그런 '보수주의자'야말로 우리를 지켜준다.

제아무리 '대안은 있다'고 설쳐대도, 설쳐댈 에너지 자체가 그런 사내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왜 인식하지 못할까? 과연 '만민평등'이 가당키나 할까? 우리는, 과연 어울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해 본다면, 도저히 미국인으로서 민주당을 지지할 수가 없을지 모르겠다.

꼭 봐야 할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 보고나서 이스트우드 멋지다 해도, 그건 공허한 감상밖에 못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6일 월요일

63번째 게시



가만. 이 고양이는 바둑이였나, 나비였나? 기억이 안난다. 제닥을 간 게 수십 번은 넘을 텐데;;; 하여간 찍사는 E.

낮에 살짝 덥다싶기도 했지만, 바람때문에 왠지 추운 일요일(저녁에는 한층 더 추웠다), 계속 걸어다니고, 끊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나 자신을 한 2~3 미터 위 상공에서 두둥~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답답하달까,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역시 생각하는대로 말을 내뱉으면 안되는 것일까?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을 해야 조금이라도 진정성이랄까, 그런 것이 보이잖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참 이중적이라는 얘기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깊숙이 생각하다보면, 모든 질문, 의문은 간단해진다. 극단화시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모든 것이 뻗어나오는 '뿌리'가 있다. 그 뿌리를 어서 찾고 싶다, 정도로 위안을 가지면 되겠다. 어쩌겠어. ㅎㅎㅎ

즐거웠다. 오늘 하루.

2009년 3월 30일 월요일

The Reader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결혼생활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었던 반면, 원작 소설은 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10대 중반에 그 엑기스를 알아버린 인생이라면, 당연히 평생 여운이 남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는 여자의 당당함을 봐버렸다. 괴로울 수밖에 없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옛날처럼 책을 읽어주는 것 뿐이다. 한 마디 편지 없이, 그저 묵묵히 테이프만 보내준다.

아마 여기에서 다들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나야 한나 슈미츠가 죄를 순순히 시인했을 때 흘렸지만 말이다. 인간들이 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참 위대해 보인다면, 이 영화나 타인의 삶을 권유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한 편 보면, 이건 뭐 완전 X된 인생이랄 수도 있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숭고하다, 고 하면 되겠다.

과연, 나는 자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자식이 생기긴 할까.

2009년 3월 26일 목요일

62번째 게시



드디어, 드디어 모로코 모임을 가졌다. H의 결혼식에 웬만한 이들 모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확실히 날짜를 정한 덕택이다. 구체적으로 날짜를 정하지 않으면 뭐, 만나기 정말 힘든 사람들이 가득하니, 다섯 명 모인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장소는 사진에 있는 S타워의 로쏘 비앙코(들어간 방도 저 방이었다). 희안한 이름이다. 빨강하양 식당.

하지만 사실, 그 시기 일들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심각한 일이 있어도 바로바로 태평스러워하는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내 대신 다른 이가 그것을 기억해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끊임 없이 계속 이 블로그질을 하는 이유도, 아마 그 "기억"을 최소한이나마 남겨두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부질 없는 짓이 될 테지만.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Låt den rätte komma in (렛미인)



렛미인을 보고 좋아한다면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쯤,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자기 자신은 피에 굶주리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피에 굶주리지 않고서야 사랑을 원할 자격이 없다. 상대방을 죽일 각오도 하지 않고서야, 그 사람을 얻을 자격이 없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그래서 아무나 못한다. 대학생 되면, 어른되면 알아서 여자 사귀고 결혼하고 한다던 어른들 말씀, 다 뻥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참이기도 하다. 대충 사랑하고 대충 결혼해서 잘만 살면, 유전자에 대한, 이 사회에 대한 의무는 다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피'는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피와 유사한 것만 있으면 그만이다. 끈적하고 끈끈하고 새빨갛고 기분나쁘기만 한 피를 갈구하는 이들은 내쳐져야, 정상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엘리"라고 읽던데(스웨덴어의 E도 러시아어처럼 "이에"인가?), Eli는 분명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이다. 사람의 피를 드셔야 살 수 있으며, 아예 성의 구분이 무의미한, 그런 분이시다. 그가 피를 원한다면, 나와서 드슈~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람의 선택이 아닌, 그 분의 선택이다. 어차피 피를 원할 정도의 사랑이라면, 그건 내가 택하는 것이 아닐 게다.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61번째 게시

옛 친구가 스스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한자어 문장을 보면 언제나 좀 오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뜻글자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딱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다. 언젠가(며칠 전이더라?) 갑자기 J와 J를 동시에 연락할 수 있었다. 참 우연찮은 일인데, 사실 단순한 안부인사라 하더라도 정말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앙금'이 남아 있어서겠지. 둘 다 잘 있다. 그럼 됐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정도 앙금이면 살아가는데 별로 불편은 없다.

만약 잘 있지 않다면?

가슴이 저린다, 정도로 마친다면, 역시 살아가는 데 별 불편은 없을 것이다. 이 주제는 여기서 끝. ㅇ_ㅇ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Watchmen



지금은 왓치맨의 원작을 읽고 있다. 영화를 보자마자 구입했으니, 참 바람직한 소비자라 할 수 있는 나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러했지만, 만화를 약 1/4쯤 읽었는데, 내가 만약 히어로가 되었다면 난 역시 코미디언이 되지 않았을까. 닥터 맨해튼은 역시나 너무 동떨어진 수퍼히어로이고, 나이트 오울은 너무 평범하고 착하며, 로어셰크는 내게 없는 야수성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역시 코미디언이다. 너무나 세상을 잘 이해하고 고의적으로 도덕과 거리를 두는 존재. 월남전에 갔더라면 그 힘을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변모하면서, 나중에는 적을 찾아가 꺼이꺼이 울고마는, 그런 캐릭터이다. 그런 존재만이 나의 호감을 살 수 있다. 동떨어진 수퍼히어로인 닥터 맨해튼과는 어울리거나 세계관을 나눌 수 있겠지만 그를 인간이라 하기는 좀 뭐하고, 나머지들은 로어셰크 정도만이 좋다. 아마 코미디언을 이해할 유일한 인간이 로어셰크일 것이다. 둘이 딱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그래서 처음부터 코미디언을 죽여버렸을까나? 이 만화가 의미하는 것이 상당히 많긴 한데, 그걸 다 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는 히어로의 힘이 없으니 참 다행이다.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타인의 취향 (Le Goût des autres)



취향이 없는 인간은 없다. 각기 다른 '취향'이 있을 뿐이다.

요 문장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행동으로는 절대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당연히 각자 자신의 취향이 바람직하다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는 점 또한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글이나 행동으로는 절대 그러하지 못한다. 이 영화가 그리도 칭찬을 많이 받는 이유는, 그러한 정황을 과장되지 않게 드러내서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더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야 세상이 굴러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편견이 있어야 세상이 굴러간다는 의미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갈라질 수 밖에 없어, 라는 말을 나중에 생각하면 참 웃기게 마련인데, 그런 유치한 말이라도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으리라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이래저래 "아이러니"야말로 인생일 텐데, 이런 걸 생각하다보면 창조주가 일거설기 대충대충 만들어놓은 인간세상이 실제로는 기가막힌 균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젖게 된다.

2009년 3월 8일 일요일

낮술



확실히, 회사를 다니다보면 점심 때 반주하기가 좀 껄끄럽긴 하다. 물론 술을 좋아하는 상사(가령 본부장 ㅇ_ㅇ)와 점심을 함께 한다면야 즐길 수 있을 텐데... 일 때문에 그러면 아니되겠지. 그래서 자주 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낮술이 그리울 때가 많다. 물론 주말에 낮부터 술마셨던 기억이 최근에 없지는 않지만.

그러고보면 나의 성격도 참 모순적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먼저 마시러 가자고 하지도 않으면서(물론 간헐적으로 그러긴 한다), 술마시며 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뭔가 머리가 좀 알딸딸해져야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들간의 기본적인 호감이나 신뢰감은 바탕에 있어야 하겠다.

갑자기 아주 예전에 했던 소개팅이 생각난다. 만난 그날 바로 술마시자고 제의했고, 술마시고, 헤어졌다. 보통 이런 경우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 자체로서는 참 재미있었다. 그럼 됐지 뭐. 술이 땡긴다. 이 영화보고나면 확실히 땡긴다.

2009년 3월 2일 월요일

국제경제법



과를 옮겼다. 이제는 정말, 정말 공부해야 할 때가 되었다. 막연히 판례만 알고있던 것에서 벗어나서, 그것이 왜 판례가 되었는지에서부터, 어느 조항이 왜 들어가고, 어느 조항이 왜 빠지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빠짐없이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이전에는 내가 분과협상에 들어가지를 않아서 공부를 좀 등한시 한 면이 있기도 했고, 제아무리 FTA가 WTO 규범을 기반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종의 '특수한 파생상품'격이라 별로 와닿지 않았던 면이 있어서인지 좀 그랬었다.

이제는 기본을 다시금 다져야 할 때이다. 대세가 FTA인 것이야 변함이 없다손 치더라도, WTO 분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향후 겁나게 일어나게 될 무역분쟁을 이해하기란 요원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몸이 오싹해질 정도다. 오늘도 저 그림에 있던 최승환 교수 책을 좀 보다가 왔다. 내가 이 책을 다시금 파고들줄이야. =_=

암튼, 책을 읽어서 기본부터 다지는 것은 공부가 안될 것이 뻔하고, 바로 판례로 넘어가야겠다. 이거 원 한 시라도 놀 수가 없네그랴.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60번째 게시



짤방은 역시 Christophe Kutner의 스페인판 보그, 2007년에 있는 사진이다. 모델은 누군지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최지배인과 저녁을 먹었다. 확실히 일이 좀 덜하고, 결혼을 준비할 정도가 되면 미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하면 될까나? 작년에 비해 대단히 예뻐졌다. ㅎ 아무튼 난 이 결혼 찬성일세. 만난 곳은 교회. 결혼하는 곳은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나때문에 내가 사는 동네 학교로 정했다고 한다.

농담도 여전하셔라. ㅎㅎㅎ 그녀와 내가 농담을 한 번 시작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갈 정도로 막장;을 치닫는다. 상상력이 모두들 대단하셔가지고 말이지. --; 어찌나 많았는지 기억이 다 나지 않을 정도. 뭐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거침이 없다. 물론 그런 것이 나와 "정말" 맞았다면 나랑 맺어졌을까?

그것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듯, 개인사도 가정은 무의미하다. 어찌됐건 시간은 정방향으로만 흐르니까 말이다. 결혼을 축하한다. 나도 과를 옮길지 모르겠는데, 업무관계가 아니라면 우린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üten - Hanami)



즐겨 인용하는 것 중에,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말이 있다. 가족이란, 누가 쳐다보지 않는다면 몰래 갖다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정말 그 말이 맞다. 갖다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니까. ㅎ 이 영화 속 부부의 자식들도 한결같이 부모에게 별 도움이 못된다. 정작 그들을 위로해 준 것은 딸의 여자애인과 일본의 한 부토 덕후 소녀였다. 남의 집 자식들이라는 얘기다. 좀 다른 비유이지만 엄친딸이나 엄친아가 부모를 위로해준다고 보면 되시겠다.

왜그럴까?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곧, 부모는 자식을 길러주는 것으로 끝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자식은 자식대로 그 다음 대의 자식에게 버림받을 운명이라는 얘기다. 얘네들이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유는 부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서다. 자기 자신의 감성을 만든 것도 결국, 유년기의 부모이기 때문이리라. 지독히 이기적인 존재, 바로 자식들이다. 이건 뭐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그냥 갖다버릴 수도 없고. 어쩌란 말이냐. 이 나를 제일 답답하게 하면서, 날 부양시켜주는 가족이란 존재들.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다시금 번식욕이 커져가고 있다.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59번째 게시



짤방은 Christophe Kutner의 스페인판 보그, 2007년에 있는 사진이다. 모델은 누군지 모르겠다. 과가 바뀔 수도 있는 통에 요새 좀 한가하기도 하고 해서, 페루와 GCC 쪽 협상 행정사항을 돕고 있다. 그런데 참 실망스러운 일이 한 가지 있어서 적어야겠다. 성질급한 것, 이라고 하면 되겠지. 왜그리 급한지, 준비를 하는 건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렇게 급하게 왔다리 갔다리 한다면 되던 일도 안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다 모르게 되어 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하지만 지금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세상에 정말 중요한 일은 없어, 라고 했는데 이걸 문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안된다. 실제 업무도 마찬가지라 봐야 옳다. 안되는 일은 안된다. 흘러가게 내비 두어도 괜찮다. 물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그런거라 이해해줄 수는 있겠다만, 많이 걱정된다. 실제 협상할 때 구멍 뚫릴 일이 훤하다.

일단은 숨을 가다듬고, 6하 원칙에 따라 차분히 생각하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을. 내 쭉 지켜보다보면, 이 사람은 승진하게 될 경우 아래 사람들이 고생하겠다 싶은 분들이 여럿, 아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지싶다.

2009년 2월 12일 목요일

58번째 게시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설날 때 방정리를 좀 하고 나서 몸이 어질어질해졌고, 급기야는 그주 금요일에 조퇴를 하는 상황까지 일어났었다. 방정리하면서 먼지를 마시는 바람에 감기가 촉진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여간 거의 2주일 동안 시달렸다. 지금은 좀 낫긴 한데, 기침이 아직 안떨어졌다. 그리고 병에 걸리면 확실히 나타나는 증상, 무지하게 피곤해진다. 쉽사리.

나이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쉽사리 피곤해지는 건 딱히 흥미로울 것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워낭소리도 제일 먼저 달려가서 봤을 텐데, 이제는 다 시큰둥하다. 낮술도 언젠가는 보겠지만, 걍 집에 오곤 한다. 주말에 뭐하지? 지난 두 주동안은 집에서 쉬기만 했었는데 이번주는 외출을 좀 해야 할까?

그냥 삶의 권태기 쯤으로 봐야할까보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말 하기가 참 어색할 정도로 멍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해 볼련다. 사실 자기를 제대로 아는 자 누가 있으리오? 충무공 난중일기도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차 있지 않던가. 아... 뭐든 힘을 좀 내고 싶다. 조만간 감기도 완쾌될 테니 더욱 더.

2009년 2월 8일 일요일

Barry Lyndon



이 영화는 큐브릭 영화답지 않게(?) 느리고, 역사물이며, 나레이션까지 군데군데 나온다. 물론 큐브릭 영화답게 허무한 유머가 나오며, 촬영이 그윽하다. (촬영하는 이들은 모두 큐브릭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러닝타임도 길다. 중간에 인터미션도 있다. ㅎ

결투 장면이 계속 되풀이 되어서 나올지는 막연하게 예상하긴 했는데, 따져보면 좀 흥미롭다. 아예 처음부터 배리 린든의 아버지는 결투에 져서 사망하였고, 그 후에 배리가 맞이하게 될 첫 번째 결투 상대인 잉글랜드군 장교 퀸, 늙어서 맞이하게 될 결투상대인 의붓아들 발링턴 공은 하나같이 겁쟁이들이다. 총 쏘기를 주저하고, 그나마 쏜 것도 빗나가고 그렇다. 마지막에서 배리 린든은 기꺼이 쏠 기회를 신사답게 주었고, 그에 따라 그는 불명예스러운 퇴각을 하게 된다.

하나도 어린이용 동화와는 맞지 않잖아? 린든이 극중에서 아직 어린이인 아들, 브라이언에게 자기의 무용담을 얘기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19명의 머리를 베었다. 아이에게 해 줄 만한 얘기는 못되지만, 아이는 천연스럽게도, 그 19명의 머리를 모두 가졌냐고 물어본다. 아니, 그것은 국왕의 것이란다. 얘야.

어떻게 보면, 바로 이런 뒤죽박죽,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위 사진만큼이나 축축하고 칙칙하며 어두운 세계가 바로 큐브릭이 보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아이즈와이드셧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었겠지. 뭐가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운명에 이끌려가는 것. 이러니 비극만 존재한다. 희극은 없다.

2009년 2월 4일 수요일

Be Kind Rewind



뭐 이터널 선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의 공드리를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씨네21의 모 평론가가 말했듯, 공드리는 가슴으로 상상한다. 가슴으로 상상한다... 이 얼마나 징한 말이련가. 가슴으로 살지도 못하는데, 상상만이라도 해야 하잖나? 가슴으로 얼마나 상상을 할지 상상도 안간다.

굳이 따지자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있겠다만(개인적으로는 수면의 과학이 더 좋았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딱히 생각나는 논리가 없다. 그냥? 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씨네마 천국의 분위기를 되살린 유일한 영화라고 하면 될까나? 제아무리 현실성이 없다고는 해도, 가슴이 따땃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렷다. 다만 아쉬운 건, 이것이 잭 블랙 덕분이 아니라는 점일 게다.

2009년 2월 1일 일요일

The Man From Earth



깜짝 놀랄 만한 반전(?) 장면이 마지막에 있긴 한데, 그것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할 정도(가령 유쥬얼 서스펙트나 쏘우)는 아니다. 줄거리상 연상할 수 있는 정도랄 수 있는데, 정말 놀라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가 90%라는 점이다. 일단 이야기가 재미가 있어야, 영화 자체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똥찬(하지만 왠지 콜롬부스의 달걀같다) 시나리오로 이정도 영화를 만들었으니 게임 셋이다.

정말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이 좋고 나쁜지의 구분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존 올드맨은 석가의 가르침마저 받았으니(현재의 불교는 불교의 힌두교화?), 더욱 더 '해탈'의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즉, 선악의 의미는 물론 무엇이 정의인가, 생사의 의미까지도 그저 넘어갔을 뿐인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 같은 작은 의미의 창조주(여기서 데미우르고스를 생각한다면 당신은 신화덕후)에 대한 집념 또한 이 영화 시나리오 집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리라.

아무튼 그의 일상이 보존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민등록번호제가 철저하지 않은 서양의 제도 덕택일 것이다. 동양에서야 철저하게 기록에 남겼으니(신라 때 민정문서 기억하시나?), 그런 사람이 기록 없이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듯.

2009년 1월 27일 화요일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법 (Prête-moi ta main)



이거 왠지 나의 미래가 될 것 같은 이야기이기도 한데 -ㅅ-; 확실히 돈으로 해결하면 편리하다싶은 생각이 든다. 어울리는 사람을 골라서, 만나게 해 주고, 한 석 달 정도 만난 뒤에 결혼 여부를 결정짓고, 블라블라블라. 이거 정말 쓰기만 해도 답답하다. 깔끔하게, 자본주의 사회 시민답게 돈으로 해결하면 좋겠다. 심지어, 사려깊게 데이트를 해 봤자 소용 없음을 알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그냥 남녀 붙여주면 지들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지.

바로 이 생각을 하면서부터 우엘벡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남녀교제가 자유로워지자, 이른바 연애의 교환시장이 태어나고, 자유경쟁일 수밖에 없는 이 시장의 파레토 효율은 극단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매력남/녀가 후보군을 싹쓸이하는 것이다. 차라리 옛날처럼 아무 것도 모른 채, 강제적으로 짝지게 만들어주면 그나마 좀 독점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보이는 손'의 개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이 주는 짜릿함도 알기에, 쉽사리 사회가 그쪽으로 다시 변모하지는 않을 터이다. 아... 이거 참. 우째 난 이리 감정에 휘둘리게 되었는지. 이것 땜시 손해보는 게 많다. 기꺼이 즐기면서 말이다.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전체적으로 참 느끼하다. 당연히 칭찬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적의 하루키인지. ㅎㅎ 왠지 모르게 바이준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영화다. 말수가 적고 소심한 젊은 남자애가 너무 싫어서다. 당연히 그런 남자애 옆에는 능동적이고 이유없이 사랑을 베푸는 젊은 여자애가 꼭 나온다. 어쩜 이렇게 생각대로 흘러갈 수가 있을까?

오히려 가해자(?)로 나오는 친구와 그의 애인이 더 좋았다. 주인공의 가치(!)를 진작에 알아봤으니 말이다. 주인공의 여자친구만 안쓰럽다. 어차피 누구나 말하는 성장이라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양 치켜올리는 것이 너무나 느끼하다. 소통도 마찬가지. 인간은 커지지도 않고, 다른 인간과 대화도 불가능한데 그걸 포장시키려 하는 거이 예술가들.

언어는 최소한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그걸 자꾸 넘어서려 하면 보기 안좋다. 이 영화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뭐 한국인이라서 그렇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지만.

2009년 1월 21일 수요일

57번째 게시

아무도 없는 월요일 아침. 새벽에 잠을 설칠 일이 있어서 몸 뉘일 곳을 찾았다. 하지만 아침 공기가 좋다. 7시경의 공기였다. 경복궁 주변은 사람도 없지. 통인동 쪽이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정처없는 걷기가 시작되었다. 춥다. 시장 가까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사직공원까지 올라가버린다. 버스가 왔다. 번호를 안보고 탔다.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내렸다. 아. 여기에 모텔이 많지.

하지만 딱히 가고 싶지가 않다. 왠지 아침에 들이닥치면 실례가 될 듯 하다. 아니,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냥 이대앞으로 가로질러 나왔다. 종로 가는 버스를 탈까? 역시 번호를 안보고 탔더니, 시청 쪽에 가는 버스였다. 아. 중앙극장을 거쳐서 가네. 하지만 워낙에 이른 시간. 역시 아무도 문을 열고 있지 않다. 간간이 문을 연 스타벅스나 김밥집에도 역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 거나 하고 싶되, 아무 거나 하고 싶지 않은, 아무 데서나 환영받고 싶지 않지만 아무 데나 가고 싶은 이런 희안하기 짝이 없는 마음 상황은 아무래도 병환일까? 또다른 나에 대한 징후일까? 아무려면 어떠리~라 외친다 하더라도, 난 '물리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끊임 없이 먹고 마시며 잠을 잔다. 완전,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보다 위대할 때가 많으니 딱히 아쉽지 않다. 이것저것 다 제외해버리면 실제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나밖에 안나오는데, 그렇다면 핵심은 숨과 시간이겠군.

대체로 이런 정신을 가진 년놈들이, 김기덕을 좋아할 것이다. 분명.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56번째 게시

정작 oho~에는 변죽만 올리고 말았는데, 소봉의 결혼식 이후 오후에는 오로에서 수다좀 떨다가 저녁에 알비레오의 파워북 모임에 나갔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김정현 부장님(아직 부장님이신가?)이 한국에 오셔가지고, 아주 아주 오래된 사람들만 만난 것이다. 이들과 함께 한 것도 대단히 오래간만이다. 맥북 에어가 나올 때 보고 지금 보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럼 거의 1년만이네.

모인 분은 6명인데, 나와 나이가 같지만 자녀가 4명 있는(!) 성진이 빼고, 다 나보다 엄청 연배가 있으신 아저씨들, 다양한 직업군에 공통점은 두 가지였다. 맥과 애플을 좋아하는 아저씨.; 50대 친구인 보아 형님도 오셨으면 더 좋았을걸. 이러니 얘기꽃이 당연히 만발할 수밖에 없다. 일단 화제는 아이폰이 과연 한국에 나오느냐에서, 언제 나오느냐, 새로운 운영체제는 어떠하냐, 새로운 하드웨어는 어떠하냐 등등. 나의 이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왔다.

oho~에 썼듯, 내가 정상생활(?)을 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맥덕후 생활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의 좌장이신 알비레오님(닥터 윤!)께서는 또 하나의 취미생활, 천문관측이 있는데, 그것이 갑자기 마음에 확 들었다. 개인 천문대를 따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여름 쯤에 완공되잖을까 싶다.)

사실 나 자신이 천문 관측을 하고 싶진 않은데, 저 천문대만큼은 정말 가보고 싶다. 일종의 '별장'을 갖고 싶은 나의 뿌리깊은 욕구를 반영하는 마음가짐이랄 수 있겠다.

2009년 1월 14일 수요일

다찌마와 리



2000년에 나왔던 다찌마와리 단편을 본 곳은 학교 동아리방이었다. 당연히 친구들, 선후배들과 같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봤었고,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만 난다. 간단히 표현하면 과장된 촌스러움, 그것이다. 그 주제가 8년만에 나온 극장판에도 있긴 하다. 그러나 8년동안 나도 변하고, 감독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다. 김구 선생을 드러내면 위험해지는 시기가 되기도 하였고. (웃음)

그래서 재미가 별로 없다, 고 하면 좀 불공평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재밌게 볼 사람들은 재밌게 볼 테고, 나야 뭐 인생이 피곤해졌으니 시큰둥, 이라 하면 되겠다. 독립운동을 희화화시킨 것이 한 편으로는 재밌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운 점도 있다. 그런데 나와는 별개로, 이런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라고 하면 변명이 되겠지. 재밌되 재미 없는, 이건 순전히 내 탓이다.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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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긴 사람들을 만났다. 이 분들은 내가 04년 5월, 처음으로 봤을 때 만난 분들이다. 오늘 모인 분들은 권군, 조작가, 애닉, 나 요렇게 네 명인데(여기에 코멘트 올리시는 분들이 알고 있는 그 "조작가"와 다른 인물임), 이렇게 모인 게 5년만이다. 이야. 5년이다, 5년. 그런데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물론 5년 전에는 더 많은 이들이 모였었지만, 그동안 누군가는 애를 낳고, 누군가는 잠적하고 ㅎ 그리 되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어색하지 않은 것.이겠다.

물론 과거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고,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 뒷담화(!)가 빠질 수 없다. 5년 전 그 때처럼 뭐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이야기하느라 시간 다 보냈다. 택시비 아꼈으면 내가 모아놓았을 돈이 얼마일지 모르겠다. ㅋ

이 양반들을 5년 뒤에 또 만나게 될까나? 그건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앞서서, 미투데이 사람들은 앞으로 얼마를 더 보게 될까? 아멜리 노통브가 "아담도 아니고, 이브도 아니고"에서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었다고 말하건데, 좀 다른 뉘앙스이긴 하지만 나도 그러하다. 아니 뭐 노통브가 했던 말 그대로의 뉘앙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관계를 "일부러" 끊는 경우가 극단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구태여 왜 그러려 하는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워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여리지.

2009년 1월 4일 일요일

내겐 너무 이쁜 당신 (Trop belle pour toi)



어떤 여자가 좋겠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듯 예쁜 여자가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런 걸 어찌 하랴. 하지만 그것이 답이면서 답이 아님 또한 알고 있다. 예쁜 걸로 밀어부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영화도 그것을 강조하려고 만든 것 같긴 한데, 사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니다. 사랑에 방황하는 남자는 어느 여자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여자는 떠난다. 그게 더 나은 보호자 및 안식처라 할지라도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냥 누구의 잘못도 아니리라고 자기 위안만 하면 끝이다.

그것을 과장되게, 연극처럼 포장한 이 영화가 꼭 보아야 할 명작 축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리, 같은 것은 모를수록 약이요 진리이다. 알면 다칠 수밖에 없고, 당장이 아니더라도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거 안다고 해서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다. 세상에 알고나서 너무 고통스러운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랑.

2009년 1월 1일 목요일

54번째 게시



키노트 발표를 처음으로 하였다. 이야. 이거 너무 떨렸다. 리허설이라도 한 번 하고 했어야 할 텐데 사전에 아무런 연습 없이(사실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발표를 하려니 참 막막했다. 다행히도 큰 사고는 없었고, 대충(?) 끝내기는 했는데, 훨씬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때문에 괴롭다. 준비한 내용을 100% 한 것도 아니었고, 왠지 이 양반들이 다 아는 걸 하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괴로웠다.

그래도 뭐 어쩌랴. 이제는 끝.

오래간만에 꽤 큰 민간 기업의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았다. 물론 덕후들의 회사(!)라는 점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분위기는 공공 기관보다 훨씬 나았다. 이게 뭐 남의 떡은 언제나 크게 보이는 법이라서일 수도 있겠다만, 왠지 느껴지는 자유로움에 있어서는 역시 민간 부문이 한 수 위이다. 물론 썰렁한 오피스 개그는 어딜 가나 똑같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올까? 프리젠테이션을 할 날이 또 올까? 오긴 올 텐데, 내 업무의 성격상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보니, 내 인물의 성격하고도 맞지 않다.

나한테 맞는 것이 몇 가지나 있으리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