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적으로 참 느끼하다. 당연히 칭찬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적의 하루키인지. ㅎㅎ 왠지 모르게 바이준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영화다. 말수가 적고 소심한 젊은 남자애가 너무 싫어서다. 당연히 그런 남자애 옆에는 능동적이고 이유없이 사랑을 베푸는 젊은 여자애가 꼭 나온다. 어쩜 이렇게 생각대로 흘러갈 수가 있을까?
오히려 가해자(?)로 나오는 친구와 그의 애인이 더 좋았다. 주인공의 가치(!)를 진작에 알아봤으니 말이다. 주인공의 여자친구만 안쓰럽다. 어차피 누구나 말하는 성장이라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양 치켜올리는 것이 너무나 느끼하다. 소통도 마찬가지. 인간은 커지지도 않고, 다른 인간과 대화도 불가능한데 그걸 포장시키려 하는 거이 예술가들.
언어는 최소한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그걸 자꾸 넘어서려 하면 보기 안좋다. 이 영화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뭐 한국인이라서 그렇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지만.
2009년 1월 25일 일요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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