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짤방은 역시 Christophe Kutner의 스페인판 보그, 2007년에 있는 사진이다. 모델은 누군지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최지배인과 저녁을 먹었다. 확실히 일이 좀 덜하고, 결혼을 준비할 정도가 되면 미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하면 될까나? 작년에 비해 대단히 예뻐졌다. ㅎ 아무튼 난 이 결혼 찬성일세. 만난 곳은 교회. 결혼하는 곳은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나때문에 내가 사는 동네 학교로 정했다고 한다.
농담도 여전하셔라. ㅎㅎㅎ 그녀와 내가 농담을 한 번 시작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갈 정도로 막장;을 치닫는다. 상상력이 모두들 대단하셔가지고 말이지. --; 어찌나 많았는지 기억이 다 나지 않을 정도. 뭐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거침이 없다. 물론 그런 것이 나와 "정말" 맞았다면 나랑 맺어졌을까?
그것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듯, 개인사도 가정은 무의미하다. 어찌됐건 시간은 정방향으로만 흐르니까 말이다. 결혼을 축하한다. 나도 과를 옮길지 모르겠는데, 업무관계가 아니라면 우린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60번째 게시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üten - Hanami)

즐겨 인용하는 것 중에,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말이 있다. 가족이란, 누가 쳐다보지 않는다면 몰래 갖다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정말 그 말이 맞다. 갖다 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니까. ㅎ 이 영화 속 부부의 자식들도 한결같이 부모에게 별 도움이 못된다. 정작 그들을 위로해 준 것은 딸의 여자애인과 일본의 한 부토 덕후 소녀였다. 남의 집 자식들이라는 얘기다. 좀 다른 비유이지만 엄친딸이나 엄친아가 부모를 위로해준다고 보면 되시겠다.
왜그럴까?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곧, 부모는 자식을 길러주는 것으로 끝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자식은 자식대로 그 다음 대의 자식에게 버림받을 운명이라는 얘기다. 얘네들이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유는 부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서다. 자기 자신의 감성을 만든 것도 결국, 유년기의 부모이기 때문이리라. 지독히 이기적인 존재, 바로 자식들이다. 이건 뭐 동서양이 다를 바 없다.
그냥 갖다버릴 수도 없고. 어쩌란 말이냐. 이 나를 제일 답답하게 하면서, 날 부양시켜주는 가족이란 존재들.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다시금 번식욕이 커져가고 있다.
2009년 2월 19일 목요일
59번째 게시

짤방은 Christophe Kutner의 스페인판 보그, 2007년에 있는 사진이다. 모델은 누군지 모르겠다. 과가 바뀔 수도 있는 통에 요새 좀 한가하기도 하고 해서, 페루와 GCC 쪽 협상 행정사항을 돕고 있다. 그런데 참 실망스러운 일이 한 가지 있어서 적어야겠다. 성질급한 것, 이라고 하면 되겠지. 왜그리 급한지, 준비를 하는 건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렇게 급하게 왔다리 갔다리 한다면 되던 일도 안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다 모르게 되어 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하지만 지금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세상에 정말 중요한 일은 없어, 라고 했는데 이걸 문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안된다. 실제 업무도 마찬가지라 봐야 옳다. 안되는 일은 안된다. 흘러가게 내비 두어도 괜찮다. 물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그런거라 이해해줄 수는 있겠다만, 많이 걱정된다. 실제 협상할 때 구멍 뚫릴 일이 훤하다.
일단은 숨을 가다듬고, 6하 원칙에 따라 차분히 생각하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을. 내 쭉 지켜보다보면, 이 사람은 승진하게 될 경우 아래 사람들이 고생하겠다 싶은 분들이 여럿, 아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지싶다.
2009년 2월 12일 목요일
58번째 게시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설날 때 방정리를 좀 하고 나서 몸이 어질어질해졌고, 급기야는 그주 금요일에 조퇴를 하는 상황까지 일어났었다. 방정리하면서 먼지를 마시는 바람에 감기가 촉진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여간 거의 2주일 동안 시달렸다. 지금은 좀 낫긴 한데, 기침이 아직 안떨어졌다. 그리고 병에 걸리면 확실히 나타나는 증상, 무지하게 피곤해진다. 쉽사리.
나이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쉽사리 피곤해지는 건 딱히 흥미로울 것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워낭소리도 제일 먼저 달려가서 봤을 텐데, 이제는 다 시큰둥하다. 낮술도 언젠가는 보겠지만, 걍 집에 오곤 한다. 주말에 뭐하지? 지난 두 주동안은 집에서 쉬기만 했었는데 이번주는 외출을 좀 해야 할까?
그냥 삶의 권태기 쯤으로 봐야할까보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말 하기가 참 어색할 정도로 멍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해 볼련다. 사실 자기를 제대로 아는 자 누가 있으리오? 충무공 난중일기도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차 있지 않던가. 아... 뭐든 힘을 좀 내고 싶다. 조만간 감기도 완쾌될 테니 더욱 더.
2009년 2월 8일 일요일
Barry Lyndon

이 영화는 큐브릭 영화답지 않게(?) 느리고, 역사물이며, 나레이션까지 군데군데 나온다. 물론 큐브릭 영화답게 허무한 유머가 나오며, 촬영이 그윽하다. (촬영하는 이들은 모두 큐브릭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러닝타임도 길다. 중간에 인터미션도 있다. ㅎ
결투 장면이 계속 되풀이 되어서 나올지는 막연하게 예상하긴 했는데, 따져보면 좀 흥미롭다. 아예 처음부터 배리 린든의 아버지는 결투에 져서 사망하였고, 그 후에 배리가 맞이하게 될 첫 번째 결투 상대인 잉글랜드군 장교 퀸, 늙어서 맞이하게 될 결투상대인 의붓아들 발링턴 공은 하나같이 겁쟁이들이다. 총 쏘기를 주저하고, 그나마 쏜 것도 빗나가고 그렇다. 마지막에서 배리 린든은 기꺼이 쏠 기회를 신사답게 주었고, 그에 따라 그는 불명예스러운 퇴각을 하게 된다.
하나도 어린이용 동화와는 맞지 않잖아? 린든이 극중에서 아직 어린이인 아들, 브라이언에게 자기의 무용담을 얘기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19명의 머리를 베었다. 아이에게 해 줄 만한 얘기는 못되지만, 아이는 천연스럽게도, 그 19명의 머리를 모두 가졌냐고 물어본다. 아니, 그것은 국왕의 것이란다. 얘야.
어떻게 보면, 바로 이런 뒤죽박죽,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위 사진만큼이나 축축하고 칙칙하며 어두운 세계가 바로 큐브릭이 보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아이즈와이드셧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었겠지. 뭐가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운명에 이끌려가는 것. 이러니 비극만 존재한다. 희극은 없다.
2009년 2월 4일 수요일
Be Kind Rewind

뭐 이터널 선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의 공드리를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씨네21의 모 평론가가 말했듯, 공드리는 가슴으로 상상한다. 가슴으로 상상한다... 이 얼마나 징한 말이련가. 가슴으로 살지도 못하는데, 상상만이라도 해야 하잖나? 가슴으로 얼마나 상상을 할지 상상도 안간다.
굳이 따지자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수면의 과학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있겠다만(개인적으로는 수면의 과학이 더 좋았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딱히 생각나는 논리가 없다. 그냥? 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씨네마 천국의 분위기를 되살린 유일한 영화라고 하면 될까나? 제아무리 현실성이 없다고는 해도, 가슴이 따땃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렷다. 다만 아쉬운 건, 이것이 잭 블랙 덕분이 아니라는 점일 게다.
2009년 2월 1일 일요일
The Man From Earth

깜짝 놀랄 만한 반전(?) 장면이 마지막에 있긴 한데, 그것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할 정도(가령 유쥬얼 서스펙트나 쏘우)는 아니다. 줄거리상 연상할 수 있는 정도랄 수 있는데, 정말 놀라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가 90%라는 점이다. 일단 이야기가 재미가 있어야, 영화 자체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똥찬(하지만 왠지 콜롬부스의 달걀같다) 시나리오로 이정도 영화를 만들었으니 게임 셋이다.
정말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이 좋고 나쁜지의 구분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존 올드맨은 석가의 가르침마저 받았으니(현재의 불교는 불교의 힌두교화?), 더욱 더 '해탈'의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즉, 선악의 의미는 물론 무엇이 정의인가, 생사의 의미까지도 그저 넘어갔을 뿐인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 같은 작은 의미의 창조주(여기서 데미우르고스를 생각한다면 당신은 신화덕후)에 대한 집념 또한 이 영화 시나리오 집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리라.
아무튼 그의 일상이 보존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민등록번호제가 철저하지 않은 서양의 제도 덕택일 것이다. 동양에서야 철저하게 기록에 남겼으니(신라 때 민정문서 기억하시나?), 그런 사람이 기록 없이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