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눈에는 불쌍한 노총각으로만 보여요."
그 말이 맞긴 맞다. 불쌍한 노총각들이 신부들이지요. 그러나 신부들이 앞으로 결혼을 허락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가톨릭 교회 근간이 흔들릴 테니까. 게다가 태주에게는 신앙도 없다. 죽으면 다 끝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는 상현의 신발을 신었다. 아무 것도 믿지 않던 그녀가 믿은 건 그 신발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사실상, 인간 한 명의 개체에서 나온다고 설명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상현도, 태주도, 심지어 행복한복집 가족들 모두가 마음에 다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러니 인간 자체가 "불쌍한 노총각"일 따름이다. 첫 대사가 "당근이죠."라고 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차피 종교가 추구하는 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무신론(?)을 강조하는 것도 지나쳐 보인다. 그저 사랑 이야기로 봐주면 안될까.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박쥐
2009년 5월 4일 월요일
똥파리

왜 제목이 똥파리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귀찮게 달라붙는 똥파리라서 그런가? 아, 그렇다면 똥파리가 가족이겠군. 뭐, 영화 관련 잡지는 물론 기사도 안보게 된지 꽤 오래라서 다른 사람의 해석은 관심 없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쎈 영화이고, 무척 슬프다.
뭐, 욕 많이 나오면 쎈 영화랄 수 있겠고 ㅎㅎ, 슬픈 이유는 이게 비단 용역깡패 얘기가 아닌 거 같아서 그렇다. 가족의 문제야 크건 작건 누구나 갖고 있을 테고, 결국은 자기와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줘서다. 조카 꼬마애가 대화가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애는 일방적인 애정 앞에 노출되었을 뿐이다. 그게 대화인가? 양육이자 보호이지.
도대체 대화, 대화란 게 무엇이기에 사람을 그리 비참하게 만들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우엘벡의 말이 정말 맞단 말인가? 그렇다면야 기꺼이 타인과의 대화를 그저 '데이터의 쌍방향 이동'이라 정의내려도 좋다. 기꺼이 허물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생에 한 둘이나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역시 결론은 사랑. 타인을 끌어들이자면 그 방법은 오로지 사랑 뿐이다.
2009년 5월 1일 금요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제목이 비키, 크리스티나, 마리아-엘레나였다면 별로 가오가 안섰을까 생각하면 흥겹다. 걍 바르셀로나로 처리하여서 마리아-엘레나와 후안 안토니오를 쌍으로 없애버린 센스에 감탄한다. 그러나 한국어 제목도 좋다. 어차피 내 남자가 되었다면, 내 남자의 물건(!?)도 나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들 이 한국어 제목에 대해 언짢게 생각하던데, 오히려 모든 관계의 축이 되는 "내 남자"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좋지 않을까? 그만큼 제일 현실적인(!) 캐릭터인 비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페넬로페 크루스의 영화다. "아내"도 나와 주어야 한다.
왠지 모르게 페넬로페 크루스도 세월이 갈수록 제값 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중반 이후, 나오자마자 화면과 모든 주목을 그녀가 빼앗아 가버린다.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에 먹혀버린 것이다. 우디 할배가 그것을 노리고 시나리오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이 영화가 얘기하고 있는 건, 남편과 아내의 쌩살 사랑 이야기.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우리들, 관객이다. 당연히, 내 남자의 아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