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3일 화요일

Death in Venice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영화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인 동시에, 지식에 대한 경멸. 아니, 이성에 대한 힐난이라 봐도 좋을 텐데, 루키아노 비스콘티의 이 영화나, 토마스 만의 책이나 왠지 모르게 둘 다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씩 다른 구성(가령 영화의 아센바흐는 작곡가이지만 책의 아센바흐는 작가이며, 영화에 나오는 알프레드는 책에 없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영화이건 책이건, 무대는 베네치아이다. 삼도천(三途川)이 흐르는, 베네치아이다.

사실 아센바흐의 미소년에 대한 사랑이라고 봐도 좋을 이 영화 내용만 보자면, 정말 내용이 없다. 그저 따라다니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시로코(제타건담의 팬이라면 이 단어를 잊을 수 없다)가 옮겨다 놓은 콜레라에 걸려 죽는 내용일 뿐이다. 뭐, 감히 사랑을 하였기 때문에 죽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엄밀히 말해서 아센바흐는, 도리를 저버렸다. 아름다움을 갈망하였으니.

그런데 과연 이런 사랑을 한다면, 아니, 설사 그 미소년이 소년이 아니라 소녀라 할지라도, 그것은 "용납"이 될 수 있는 성질일까? 나야 비윤리적인 사람이니 (비윤리는 반윤리와는 다르다) 어쩌겠수~뿐이지만 다수의견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윤리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다수 의견이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논리와 의의를 갖고 있다. 단순히 아름답다고 하여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음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뻔히들 아실 것이다.) 작품에서나 그런 것이 인정을 받는다. 내가 정작 흥미를 느끼는 것은, 실제로 아센바흐 되기가 얼마나 가능할까이다.

물론 영화 이상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센바흐 되기는 커녕, 과연 이것이 사랑일까 헷갈려 하다가 끝내기도 쉬운, 짧은 인생(Das Leben ist zu kurz!)이다. 결국 얼마나 '다수의견'에 얽매이느냐.가 요점이 되시겠다. 당연히 의견이고 자시고 간에 생각 없이, 윤리 없이 달려드는 것이 사랑이건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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