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8일 화요일

GIA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졸리(!)와 실제 모델, 지아 카란지가 서로 정확히 닮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직후라면, 닮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물론 어차피 죽은 사람을 살려 놓은 영화이니, 유사성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지아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어째서 그녀의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는지이다.

난 정확히 무엇을 보았을까? 지아?


그러고보니 박지아 씨 이름이 본명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ㅎㅎ 본명이 아니면 또 어떤가. 그러면 더 좋다. 어차피 먹고 살기 위해 얼굴을 팔고 이름을 팔았으니, 제아무리 약에 취했다고 해도 나름대로 행복했을 것이다. 분명. 문제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남겨진 자들의 몫. 무척 까다롭다. 개인적인 호불호로 몰아가면 뭐든 간단해지지만, 그 '개인'이 당사자가 될 수 밖에 없다면, 더 이상 간단해질 수 없다. 물론 호쾌하게, 팩토리걸에 나온 '퀸'처럼 상대하면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겨진 자의 죄는 무엇일까? 평가하려 해서 죄일까, 아니면 돌봐주려 해서 죄일까?

뭘 어떻게 해도 의미가 없는 삶이니, 폭주나 극단적인 결정이 난무해도, 돌봐준다는 것. 받아준다는 것. 사랑하는 것. 축복일까, 저주일까?

남겨진 자들은 그 만큼 고통을 더 느껴야 할 테니, 제멋대로 살다간 매력 있는 신인류를 떠받들어 주어야 제맛이다. 남겨진 자. 괴롭다. 피동형 동사. 괴롭다. 괴롭다만은 능동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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